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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부부도 예를 갖추고 부모·자녀도 서로 존중하라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07 06:31:10
 
▲ 최문형 동양철학자‧작가‧성균관대 교수
인간은 사회적 계약을 맺어 생존을 유지해 왔다. 친척인 포유류나 영장류 역시 사회성이 발달했다. 하지만 인간의 장기적 계약은 훨씬 치밀하고 지속적이다. 찰스 다윈 이래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아 수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그중 인간 진화 과정에서 유력하게 꼽히는 것은 계약이다. 
 
인간의 우수한 지능은 옛날 일을 꽤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따라서 상대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개체인지의 여부를 가려내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두뇌에 저장한 데이터의 도움으로 인간은 서로 간에 현명한 의사결정과 약속을 할 수 있었다. 약속들이 모여서 규범과 법이 되고 인류의 발전이 가능해졌다.
 
진화적으로 볼 때 사회체계는 주요 생물집단을 따라 매우 다양한 특수화와 복잡성을 나타내며 반복적으로 출현한다. 개미와 벌 같은 사회성 곤충, 인류 이외의 포유류들 그리고 인간은 각기 나름대로 특유한 사회생활의 기본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방금 말한 집단의 순서는 보다 원시적이고 오래된 생물 형태로부터 보다 진보되고 최근에 출현한 집단으로 나열된 것이다. 그런데 결속(cohesiveness)·이타성 그리고 협동성 등 사회적 생존을 위한 주요 성질은 이 순서를 따라 감퇴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진화는 개체의 체계가 더욱 정교해짐에 따라 오히려 지연된다. 하등동물의 경우는 신체적 유합성이 높지만 사회성 곤충부터 인간까지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회구조상 본질적으로 척추동물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높은 사회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이기성을 줄임으로써가 아니고 과거를 참작하고 미래를 계획할 지능을 획득함으로써 척추동물의 오랜 역사의 속박을 깨뜨렸다. 인간은 오랫동안 기억되는 계약을 맺고 여러 세대에 걸쳐서까지 장기간 상호 이타행위를 수행하여 이득을 얻는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직관적으로 혈연선택을 도입하고 있다. 인간 사회는 협동성에서 곤충 사회에 가깝고 의사소통 면에서는 곤충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생명의 역사상 10억 년에 걸친 사회진화의 하향적 경향을 오히려 역행했다.
 
사회성 척추동물의 주 목표는 사회 내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장 가까운 혈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배열을 달성하는 데 있다. 척추동물의 혈연관계가 필요로 하는 세련됨과 개별화는 강화된 의사소통 체계·집단 동료들에 대한 보다 정밀한 인지와 적합한 반응·학습 및 특이한 개인행동과 전통에 대한 보다 큰 역할·사회 내의 유대와 패거리 형성을 통해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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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동물은 사회성 곤충까지 포함한 대부분의 곤충보다 기본적 과시를 적어도 2·3배나 더 많이 사용한다. 또한 학습을 빨리 할 수 있어서 이들이 얽혀 살고 있는 관계들 속에서 일어나는 급속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 사회성 척추동물 역시 집단 체제로 성공이나 실패 어느 쪽이 될 것이냐에 따라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전통이 생기고 그 전통은 같은 사회 안에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지게 된다.
 
발달된 의사소통, 개개인에 대한 인지, 그리고 행동변화 가능성의 증대라는 척추동물 나름의 자질은 또 다른 중요한 성질을 출현시켰다. 그것은 사회 내의 이기적인 버금집단의 형성이다. 짝 지은 쌍·아버지와 자식집단·형제자매의 모임과 기타 가까운 혈연자들의 모임 그리고 비혈연성 개체들의 패거리조차 이기적인 버금집단을 형성하여 그들 각각의 고유성을 잃지 않고 사회 내에 존재할 수 있다.
 
진화론 시각에서 볼 때 가족은 이기적인 버금집단의 특정 형태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가족은 비교적 오랜 기간 대표적인 버금집단으로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나이든 부모를 돌보는 효 문화는 세계적 관심을 받기도 했다. 자식을 향한 무조건의 헌신 또한 돋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의 가족이 돌풍을 맞이했다. 가족 간 문제와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패륜 범죄와 자녀 유기는 세대 간 책임을 유기한 사건이다. 저출생과 고령화·가치관의 급격한 변화로 가족 구성원 간에도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있다. 구성원이 고작 4명인 핵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져 각각 1인 가족으로 살기도 한다. 가족 안에서도 이해관계를 따지는 버금집단들이 마구 생겨난다. 그렇다면 가족이 살아남는 법은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에 역행할 수는 없지만 가족 또한 그에 맞추어 적응할 수는 있다. 해답은 서로 간에 간격을 두는 일이다. 부부 간에 서로 손님 대하듯 예를 갖추는 것,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자녀 사이에도 선을 지키고 존중하는 것 등이다. 변화하는 사회환경에서 연착륙하려면 가족 간 관계를 고민하고 모색해야 한다. 그래도 가장 편한 사이가 피를 나눈 사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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