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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미 연방정부 공무원이 되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졸지에 육체노동을 하는 중소 백화점 점원에서 미국 연방정부의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신분이 바뀐 것은 물론 이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뜻밖의 인물들을 만나 교류하기도 하며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또 한 번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사실 이 모든 게 내가 조지 부시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보낸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훗날 제41대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조지 부시라는 인물에게 편지를 쓴 것은 지금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돈키호테와 같은 엉뚱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엉뚱한 시도를 그저 한번 해 본 게 아니라 매 순간 성실하게 임하며 해냈기 때문에 미 연방정부의 공무원으로 CIA에 근무하게 되는 현실적 결실을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성실함은 나와 함께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느라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내 존재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잃지 않기 위한 간절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능력을 인정받다
CIA로 첫 출근을 한 날에는 보안 관계 교육으로 시간을 보냈다. 교육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누구에게든 단순히 연방정부 직원으로 행세할 것 △매일 출퇴근할 때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길을 동일한 루트를 사용하지 말고 수시로 바꿀 것 △같은 사무실의 직원일지라도 사무실 밖에서는 서로 아는 체하지 말 것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자료나 서류는 절대로 개인이 소지할 수 없으며 사무실 밖으로 지참하지 말 것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밀에 속하는 정보는 죽은 후에라도 함구할 것 등이었다.
첫날에 출입증이 발급되었고 사무실 출입 요령에 대해 반복 연습을 했다. 출근해서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까지 가는 데는 다섯 번의 보안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그 절차는 공개할 수 없다.
사무실에는 직원 몇 명이 있었고 나의 입사를 환영해 주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고 날이 갈수록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나는 동료 직원들과 북한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그것을 내가 작성하는 보고서에 반영했다. 그러자 과장과 분석관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노동당과 정부의 조직·기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상호관계, 특히 대남 공작기구의 편성과 그 활동 실태·해외 공작 활동·해외 공작원들의 상이한 소속과 그들의 공작 대상을 비롯해 그들이 사용하는 전용 은어와 약어 등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것이 상관들을 놀라게 한 것이다.
내가 입사하면서 우리 기관의 대북 공작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해외 출장을 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약 20년에 걸쳐 CIA의 공작국(DO·Directorate of Operations) 내에서 우리 부서가 최우수 대인(對人) 첩보 수집 기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나는 존 M. 도이치가 제17대 중앙정보국장으로 있을 때 ‘대인첩보 수집 우수 요원(Exceptional Human Intelligence Collector)’이라는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처음 표창장을 수여받은 날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해서 표창을 받게 된 건지 스스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조국과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하늘에서 기특하게 보신 결과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로도 더 열심히 노력하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정부 기밀 사항은 기억을 금지한다
나는 1976년 6월부터 2000년 2월까지 23년 8개월간 미국 CIA에 재직했다. 하지만 어디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밀에 속하는 사항이라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 그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CIA 근무한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하는 무언의 약속이었고 지엄한 규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공개된 사건이나 기밀 제한에 속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 내용을 일부 회고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기억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들을 기록할 뿐,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
우선 2000년 2월29일 내가 은퇴하던 날 제18대 미 중앙정보국장 조지 J. 테넷으로부터 받은 감사장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미국 연방정부 내 모든 정보기관의 수장으로서 귀하가 이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한 공적을 인정하며 미국 정부의 높은 이상과 전통을 지키고 이제 명예롭게 은퇴하게 된 것을 축하하는 바이다.”
미국 정부의 보배라는 파격적 인정
내가 40년 가까이 미국 연방정부에 재직하는 동안 세계는 동·서 냉전이 극에 달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서로 치열하게 대립했다. 그 시기에 나는 은밀히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니면서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해치는 많은 역사적인 대형 사건에 개입하여 목숨을 걸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모두 합해 24개 국가에서 일하면서 미국 정부가 민감한 국제관계 속에서 높은 이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그때 보여 준 능력과 열성으로 14개의 공적 훈장(Exceptional Performance Award)과 수많은 표창장을 받았다.
미국에 입국하기 전에는 서울 대방동에 있는 미 502군사정보단에서 심문관으로 근무하며 (1958-1974) 450여 명의 북한 귀순병과 귀순 민간인 그리고 간첩들을 심문했다. 1968년 청와대 기습을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특공대의 한 명으로 생포된 김신조와 1971년에 북한 조종사 박순국을 심문할 때 보여 준 기량을 한·미 양국 정부로부터 높이 평가받기도 했다.
나는 조지 부시 당시 미 중앙정보국장이 특별 예외로 직접 채용했고 그 후 북한 전문가로 활약했는데 그것이 우리 기관 내에서는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지원하기 위한 활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 우리 기관과 미국 의회·한국 정부로부터 특별한 주목을 받았으며, 때로는 서울의 주요 일간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했고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축하를 받기도 했다.
장기간 해외근무를 하고 있을 때 나의 상관들은 나에 대한 연례 근무 평가서에서 내가 주재국 정부와의 연락 업무에서 주역을 한 점을 높이 평가했고 특히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며 역사 교범이라고 치하해 주기도 했다.
나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워싱턴 본부에 돌아가서 근무할 동안에는 국무성과 국방성, 그리고 미국국가안전보장국(National Security Agency·NSA) 및 미국 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FBI)과의 북한 문제에 대한 대외 협력으로 우리 기관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공을 세웠다. 덕분에 진실로 높은 수준의 기품과 재치를 발휘한 미국 정부의 보배라는 과분한 칭찬을 받기도 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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