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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특검의 ‘구속영장 기각률 90%’를 마치 ‘무죄 90%’처럼 호도한다. 영장만 기각되면 무슨 면죄부라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이다. 그러나 영장 기각은 무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진짜 무서운 건 영장 기각이 아니라 기소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2024년 기준 검사가 기소한 사건 가운데 무죄가 나온 비율은 0.91%. 다시 말해 100건 중 99건은 유죄가 선고된다는 뜻이다. 한 번 기소되면 ‘유죄게임’이 자동 재생되는 셈이다. 이 구조에서 구속영장 기각이 주는 의미는 미미하다. 오히려 “일단 불구속으로 재판 받아보시오” 정도의 행정적 조치에 가깝다.
판사도 영장을 쉽게 발부하지 못한다. 짧은 심문으로 피의자의 일생을 뒤흔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당장 도주나 구속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인신을 구속하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당연하고 필요한 신중함이다. 영장 기각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일단 재판서 다퉈 보라’는 절차일 뿐이다.
지옥문에 들어선 건 피의자다. 기소된 순간부터 피의자는 이미 유죄게임판 위에 올라간 셈이다. 법정에 서기 위해 변호사를 구해야 하며 그 변호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단언컨대 사실상 유죄인 게임에서 돈과 명예, 시간만 낭비될 백해무익일 뿐이다.
10년 전 국회에 진출한 인권변호사에게 “재판 1회 출정에 200~300만 원은 기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권변호사도 저럴진대 지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여기에 성공보수라는 주식으로 치면 ‘스톡옵션’ 같은 기묘한 제도까지 존재한다.
무죄가 날 확률이 1%도 안 되는데도 그 1%를 팔아 돈을 더 받는 구조라니 법률시장은 철저히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이다. 변호사가 유죄게임에 참여하려는 건 정의가 아니라 오직 돈 때문이라는 걸 서초동에 가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10% 부가가치세도 피의자에게 떠넘기는 게 대한의 변호사다.
그러니 구속영장이 발부되든 기각되든 피의자 입장에선 “올라도 미치고 내려도 미친다”는 어느 증권사 광고 카피처럼 괴로운 건 매한가지다. 심지어 피의자가 얼마나 악질적으로 행동했으면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나 프레임까지 씌워지면 옴짝달싹 사면초가다.
이번 순직해병 특검도 마찬가지다.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 10건 중 법원이 받아들인 것인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단 한 명뿐이었다. 구속영장은 90%가 기각됐지만 기소는 무려 33명에 이르렀다. 그중 상당수는 고위직 인사들이다. 조작 기소가 아닌 이상 영장 기각을 근거로 “특검이 무리했다”고 말하는 건 반쪽짜리 이해다.
영장은 최소한의 필요성 판단일 뿐이고 기소는 혐의가 재판정에서 다퉈질 만큼 구체적이라고 특검이 판단했다는 뜻이다. 수사기관이 150일간 압수수색 180회, 참고인·피의자 조사 300명 이상을 거쳐 기소를 결정했다면 그건 영장 기각과 무관하게 하나의 무게감을 가진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특검 영장 기각률’에만 집중해 정작 중요한 ‘기소의 실질’을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됐다고 “봐라, 죄 없다!”라고 외치는 건 소가 웃을 일이다.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하는 게 법원이다. 기소된 순간부터 99% 유죄게임은 시작된 것이다.
구속영장 기각은 무죄 인증이 아니다. 특검 재판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권력을 남용한 자들이 예외 없이 법의 심판을 받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법치주의가 회복되는지다. 즉 특검의 기소가 빠짐없이 이루어졌는지가 핵심이지만 이를 짚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갈 길은 먼데 본질을 외면한 소음만 무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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