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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끌벅적하게 첫눈이 왔다. 이번 겨울 눈이 비교적 늦게 방문한 탓일까? 청명했던 오후여서 ‘설마 오늘 폭설이 올까?’ 했는데 단 몇 시간 만에 푸짐한 잔칫상처럼 눈이 왔다. 천둥으로 폭죽까지 울리면서. 그날의 긴급재난문자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집을 막 나서려다 확인하곤, 차를 운전하는 대신 지하철을 이용한 나는 행운아였다. 뉴스를 보고 많이 놀랐다. 밤새 도로 한 가운데 버려진 차량들, 곳곳의 교통사고, 쌓인 눈으로 진입이 힘든 제설차와 경찰차들, 고속버스에서 내려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 소식이었다.
나의 지인도 장충동에서 분당까지 3시간을 운전해서 귀가했다고 했다. 그런 힘든 상황 속에 포근한 소식이 있었다. 빙판 언덕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트럭을 밀어준 시민들, 터널에서 미끄러져 발이 묶인 승용차들을 차례차례 돌려준 청년들, 하교길 학교 앞에서 꼼짝 못하는 차를 도와준 여학생들, 오토바이로 배달하던 분들이 자기 일을 뒤로 하고 운전자들을 도와준 영상이었다. 얼어버린 길에서 차량의 후미를 밀어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하면 차가 뒤로 미끄러질 수 있어서 목숨을 걸 각오여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천사들은 꿋꿋했다. 낭패한 이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 도왔다. 그들의 표정에는 자신의 위험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달려들었을 뿐이다. 사상가 맹자는 그런 마음을 ‘불인인지심’ 즉 ‘참을 수 없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 상황을 보고 달려가 그 아이를 구하는 사람을 예화로 들어, 생명을 구하는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음’이다. 이 마음을 ‘측은지심’이라고도 설명했다.
맹자는 이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그는 ‘시비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을 말하면서 이 네 가지 마음은 사람의 팔다리처럼 태생적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의 팔다리를 사지(四肢)라고 하는데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라면 양 팔과 양 다리를 어떻게 쓰는지 배울 필요가 없다. 경우에 따라 반사적으로 팔과 다리의 기능을 활용한다. 아기들은 월령이 늘어가면서 배밀이를 하고 보행기를 타고 혼자 서고 걷는다.
맹자가 보기에 인간의 마음도 똑같은 경우다.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사지를 자동적으로 사용하듯이 우리의 네 가지 마음도 자동적으로 발현된다. 우리가 상황에 따라 관절과 신경을 적절하게 활용하듯 우리의 타고난 마음도 그렇게 작동한다. 폭설이 온 세상을 멈춰놓았던 그날 밤의 풍경은 맹자가 옳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참을 수 없는 측은한 상황’들이 눈 앞에 클로즈업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머릿속을 순간정지 시켰다. 아무 생각없이 그 안타까운 상황에 자신을 던져 넣었다.
운전자가 누구인지 무슨 차량인지, 길이 얼마나 미끄럽고 위험한지. 자신은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사이가 없었다. 그분들은 온전한 사체(四體)처럼 건강한 마음을 지닌 분들이었기에 마음을 어떻게 쓰는지, 온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순백의 첫눈은 우리에게 감동과 정겨움도 선물해 주었다. 천사들의 마음과 행동은 2025년 한 해를 감사함으로 마무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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