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 방송에서 모델 배정남은 자신을 키워준 하숙집 할머니를 찾으며 “훌륭한 사람 못되어도 바르게 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배정남이 모델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꽤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한 말에 내가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배정남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TV에서 이따금 그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알게 된 몇 가지 일화―외로웠던 유년기, 부모의 이혼―들을 통해 나도 모르게 그가 살아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고, 그가 살아온 삶과 그가 느끼는 감정이 나에게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학을 전공한 필자는 문학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지만 비문학 책들도 그 사이에 틈틈이 끼어서 읽는데, 심리학이나 마케팅을 다룬 책부터 제4차 산업혁명을 다루는 전문적인 책들에서도 공감을 다룬 글을 보게 된다. 지금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기다리는 시대가 아니라 생산자가 소비자의 성향과 기호를 예측하여 미리 다가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화의 기술을 다룬 책들을 보면 언제나 상대의 감정을 존중하는 데에서 대화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이것은 단지 대화에서 뿐 아니라 토론과 협상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이다. 누구나 상대로부터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으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사실 관계는 상대를 존중하는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리더는 혼자 있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예전처럼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래야 보이지 않는 소비자나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도 필요한 것이 바로 공감능력이다.
우리가 공감이라는 말은 가끔씩 쓰지만 그 공감을 알고만 있지 실제로 내 감정을 상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표현하거나 상대의 말에 내가 공감하려고 집중하는 것은 서툴다. 상대의 감정에 집중해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공감해주었는데 서먹했던 관계가 뜻밖에도 잘 풀린 경험이 있다. 다들 살아온 삶의 폭이 넓지 않고 협소한 상식이란 세계에 갇혀 살기 때문인지 시간에 쫓기게 되면 짜증이 나기 쉽다. 누구에게나 끌리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순간순간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놀랍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을 찾아보니 어떤 상황이건 상대의 공감을 너무나 잘 이끌어내었다.
살아 보니 사람들이 똑똑한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득의 기법을 배우기보다 상대의 상황을 아는 공감이 먼저인 것이다. 다들 전달할 내용을 빼놓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비언어로 전해지는 메시지는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상대의 시선과 눈빛을 먼저 읽기 때문이다.
꽤 오래 전에 나온 톰 피터스의 책 『초유량 기업의 조건』에 보면 중요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우량 기업으로 선정된 60개 기업이 20년 뒤에 10개만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그걸 CEO와 연결 지은 부분이 나온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CEO가 유명잡지의 표지모델이 되거나 자서전을 출간할 때라고 한다.
사업이 잘 되어서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은 누구나 부러워하고 또 당연한 일 같지만 저자 피터스는 바로 남보다 내가 한 발 앞서 있다고 여기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겸손한 태도를 잃게 되고, 그것은 공감이나 사업 전반을 읽는 시야를 방해하는 것으로도 이어진다고 여긴다. 진짜 끌리는 사람이 되려면 힘을 주어 자신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양파에 자주 비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나 자신도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로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은 페르소나일 것이다. 가면인 셈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가르쳐주었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라는 가르침이었다.
자신을 바로 볼 줄 알고 올바로 행동하는 것에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 공감 능력도 생긴다.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뽑아야 할 사람들은 자신을 잘 관리하고 국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공감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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