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명 요진건설산업 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일본인 교사가 그의 키가 작다며 되돌려 보냈다. 이어 집안 살림까지 어려워져 학교에 다니지 못했는데 열두 살 되던 해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밥도 먹여주고 학교도 보내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후 원불교 보육원에서 생활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조차 학비가 없어 급사로 일하며 학교에서 먹고 자야만 했다. 그러던 중 최준명 회장의 성실한 모습을 지켜본 중학교 교감 선생님이 그가 공부에 전념하도록 수업료를 대신 내줬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최 회장은 중·고등학교를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1950년대 후반 그는 미군 발주 공사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건설사 ‘동성상공’에 입사를 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공부했다. 최준명 회장은 대학교 졸업 후 건설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운 뒤 1970년대에 동성상공에 현장소장으로 재입사했다.
동성상공은 미군 발주 공사를 맡고 있었으므로 미군과 소통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의 현장소장이 영어를 잘하지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이에 최 회장은 밤잠을 줄여 영어공부를 했고 감독관에게 물어볼 내용을 종이에 적어 외우기도 했다. 이는 미군 감독관의 신뢰를 받았고 동성상공은 다른 건설사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던 중 최준명 회장이 현장소장으로서 현대건설과 동두천에 주둔한 미 7사단 막사를 짓고 있었는데 어느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찾아와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정주영 회장이 경쟁사 현장소장을 스카우트하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현대건설이 미군 감독관으로부터 “왜 같은 현장에서 동성상공보다 작업 속도가 30%나 뒤처지느냐”는 지적을 받았던 것이다. 그가 정주영 회장의 눈에 들면 앞으로 건설업계에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 제안을 거절했다.
최준명 회장은 이후 1976년 자본금 600만원으로 요진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미군 용역·발주사업 등을 늘려나가며 회사를 키웠다. 2008년 현재의 요진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요진은 ‘임금 요(堯)’에 ‘많을 진(溱)’을 합쳐 세상의 왕처럼 널리 떨치겠다는 포부로 지은 이름이다.
2000년대 들어 요진건설산업은 중견 건설사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제대로 된 브랜드가 하나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판 ‘롯폰기힐스’라고 불리는 일산의 랜드마크 ‘일산 요진와이시티’를 짓는다. 일산 요진와이시티는 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 주거브랜드 ‘와이시티’ ‘와이하우스’ 등과 일산의 쇼핑몰 ‘벨라시타’ 등을 건설하며 현재는 매출 2000억원대의 중견 건설사로 거듭났다.
이달 1일에는 서울 용산구 국방시설본부에서 진행된 ‘2020년도 우수업체 감사패 수여식’에서 ‘우수 시공업체’로 선정돼 감사패를 받았다. 이번 수여식은 국방부 국방시설본부에서 발주한 시설공사 및 기술용역 전반에 대한 2020년도 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다. 요진건설산업은 국방시설본부 대미사업과가 발주한 미극동공병단(FED) 전체 현장 시공업체 중 최우수 업체로 평가받았다.
한편 최준명 회장은 ‘사람을 키우는 사업이 가장 큰 사업’이라는 신념으로 한국 보육원을 비롯해 학교법인 휘경학원을 운영하면서 1998년부터 전남 영광군에 ‘요진 어린이 선행상’을 통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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