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수도권 주택 시장 안정화 정책 일환으로 분양가상한제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다수의 주택 사업지가 분양가상한제 규제에 발목이 잡혀 사업에 진척을 이루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공급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자 결국 정책방향을 수정한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업계 안팎에서는 급작스러운 정책노선 변경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과 같이 집값이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 규제를 완화 할 경우 상당수 아파트의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 또 다른 집값폭등 현상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별공급 물량도 크게 줄어 자금 여력이 부족한 20·30대 실수요자의 피해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의 왜곡 현상은 여러 가지 규제가 복합돼 발생한 결과인 만큼 하나의 규제를 해소해선 오히려 기존에 없던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규제완화 효과를 보려면 대출규제, 재개발·재건축 규제 등 다양한 규제를 동시에 해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급에도 잡히지 않는 집값…이제 와서 민간에 도움의 손길 청하는 정부
정부는 서울·수도권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 확대에 전력을 쏟고 있다. 부족한 주택 수급 맞추기 위해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를 샅샅이 훑어가며 신규 택지를 끌어 모았으며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공공재개발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등 새로운 공급방안도 줄줄이 쏟아냈다.
이러한 노력에도 집값 상승세가 멈추질 않자 결국 정책기조에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제해오던 민간개발을 활성화해서라도 공급을 늘리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우선적으로 손을 댄 것은 분양가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30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올해 말까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관리제와 분양가상한제 상 불합리했던 부분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부동산업계 안팎에선 그동안 인위적인 분양가 규제로 인해 ‘올스톱’ 되다시피 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공급을 늘리겠다는 의도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세부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재 분양가 상한제 유형별로 적용돼 오던 주변 시세반영 비율을 약 5~10% 정도를 더 올려주는 안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등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해당 시·군·구 분양가 심사위원회에서 분양가를 심사하는데 지자체마다 인정 항목과 심사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다만 통상적으로 공공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역은 주변 시세 대비 약 65~70%가 적용되고 있으며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단지는 60~65%, HUG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가 적용되는 단지 70% 이상으로 책정되고 있다.
유력안은 공공택지를 제외한 민간택지와 HUG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 단지에서 시세 반영율을 5~10% 가량 더 올려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 단지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 대비 65~70%, HUG 고분양가 사업장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 대비 70~80% 정도까지 올라올 수 있다.
HUG는 지난달 29일 가장 먼저 고분양가 심사제도의 일부 개선안을 확정 발표했다. 분양가 책정 시 단지의 규모와 브랜드 등이 유사한 인근 사업장의 평균 시세를 반영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그동안 인근시세 산정기준을 인근 준공 20년 이상 된 모든 아파트 사업장을 조사했던 것을 감안했을 때 당초 예상대로 분양가가 약 5~10% 오를 것이라 보고 있다.
“돈줄 막히고 집값 올랐는데 이제 와서 공급 늘린다고 무슨 의미 있겠나”
여론 안팎에선 정부의 이번 조치를 두고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식 대책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민간 공급 물량을 늘려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규제가 남아 있어 시장을 안정화시키기엔 부족한 측면이 많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20·30청년세대와 무주택자의 반응은 더욱 예사롭지 않다. 집값이 크게 오르고 돈줄까지 막힌 상황에서 분양가가 9억원이 넘을 경우 중도금 대출이 금지되고 특별공급 물량도 배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4786세대의 일반분양 물량이 나오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이러한 정부의 정책 변화 등을 고려해 분양가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지난해 7월 HUG가 3.3㎡당 2978만원의 분양가를 제시하자 조합원들이 분양을 무기한 미뤘다. 지난해 말 자체적으로 실시한 용역에서 나온 적정 분양가 3.3㎡당 3650만원에 비해 턱없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올해 주택가격이 더욱 오르면서 현재는 조합 내부에서는 3.3㎡당 3700만원~4000만원 선의 분양가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분양가가 3700만원이 넘을 경우 둔촌주공아파트 분양분 중 84㎡ 1237세대의 분양가는 9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만약 분양가상한제 기준이 완화돼 4000만원 이상 선이 될 경우 전용 39㎡, 49㎡, 59㎡ 등 중소형 평형대 아파트의 분양가도 9억원이 넘게 된다. 서울 내 다른 지역 아파트도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민 장수훈 씨는 “이렇게 분양가 상한제 규제 완화를 할 거였으면 애시당초 쓸 때 없는 규제를 도입하지 말고 집값이 오르기 전에 빨리 분양을 할 수 있게끔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분양가 규제로 공급이 막히고 집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은 상황에서 다시 규제를 해소할 경우 결국 피해는 무주택 실수요자의 몫이 될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인중개사 이재성(30대) 씨는 “끝까지 가지 못할 분양가 규제를 도입해 시장 왜곡을 만든 것도 모자라 분양가 상승으로 인한 풍선효과가 뻔히 나타나는 현재 상황에서 규제 완화를 시사하는 것은 정말 ‘아마추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며 “안 그래도 자금여력이 부족한 20·30세대가 청약 시장에서 배제 받는데 특공 물량까지 줄어들게 되면 그들이 갈 곳은 정말 없어진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특별공급, 대출 등 각종 규제를 방치한 채 분양가 규제만 해소하는 것은 더욱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와 같이 지가가 많이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 규제를 완화할 경우 서울의 중형 아파트는 대부분 9억원이 넘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렇게 되면 가점 경쟁력과 자금여력이 낮은 20·30 무주택자와 신혼부부는 작은 평형대 또는 공공주택, 임대주택 등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정부가 다른 규제들을 남겨둔 채 분양가에만 손을 대는 것은 정부가 주는 공공임대 아파트에 대한 호응도를 이끌어 내기 위한 꼼수나 다름없어 보인다”며 “진정으로 시장 안정화를 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도록 대출, 특별공급 등의 규제도 함께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