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건축 공사비를 둘러싸고 건설사와 조합간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미국의 금리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크게 상승해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합은 이에 대해 인플레이션 여파로 개개인의 가계 부담이 늘면서 분담금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미 삽을 뜬 기존 시공현장에서는 공사비 검증을 위해 연일 한국부동산원(부동산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전국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공사비 검증 요청이 급증하는 가운데, 앞서 택지비(토지) 검증 투명성 제고를 위해 조직을 확대한 바 있는 부동산원의 어깨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수주전부터 공사현장까지 ‘공사비’에 관심 쏠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사업으로 불린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3개월 넘게 공사현장이 멈춰선 상황이다. 앞서 4월 15일 공정률 52%, 골조 공사가 20층 정도 마무리된 상태에서 급격한 자재 값 인상으로 공사비 갈등이 불거지면서 공사가 전면 중단됐다. 서울시가 중재자(코디네이터) 3명을 파견해 10여 차례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2016년 공사비 2조6000억원 규모로 계약됐지만 2020년 기존 1만1106가구였던 가구 수가 1만2032가구로 늘어나면서 공사비를 3조2000억원으로 약 5600억원 증액하는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완공되면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를 넘어 국내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가 되는 셈이다.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은 공사비 증액 등 9개 쟁점 사안을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시공사업단 측은 2020년 2월 둔촌주공 재건축 실착공 후 2년 이상 공사비를 못 받았다며 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의 외상 공사를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간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보증한 약 7000억원의 사업비 대출조차 조합의 사업 추진 지연으로 현재 대부분 소진됐다. 아울러 올해 8월 말이면 대출 만기가 도래하는 상황이라고 시공단은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 조합은 이전 조합과 체결한 5600억원의 공사비 증액 계약이 부동산원의 감정 결과를 반영한 총회를 거치지 않았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조합장이 해임된 당일에 증액 계약이 맺어져 적법하지 않은 계약이라는 것이다. 다만 기존계약 금액을 포함한 전체 공사비를 부동산원에 재검증받자고 일부 협의가 이뤄진 상태다.
이런 와중에 공사비 증액 계약 무효를 주장하던 김현철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장이 17일 ‘조합장직을 사임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조합원들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측은 빠른 시일 내에 조합장 대행 체제를 출범하고 사업을 정상화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조합이 협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조합 내 조합 내 이사 및 대의원 구성은 그대로여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다른 대형 사업장인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 통합 재건축 사업) 역시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을 통한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조합이 요구한 계약상 설계변경으로 2017년 체결한 공사비 1조1277억원에서 공사비가 약 10% 이상 증액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 사업장은 최근 공사비를 올려달라며 파업 카드를 꺼내든 철근콘크리트업계와 극적으로 협의해, 추후 부동산원 공사비 검증 결과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주전에서부터 공사비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일대 12만5797m²에 2029가구 및 부대복리시설을 짓는 ‘부곡2구역 재개발사업’ 시공사로 GS건설이 최종 선정됐다. 부곡2구역은 최근 원자재 등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책정 조건이 주목을 받는 핵심 사업장이었다.
상대 건설사였던 포스코건설은 예정 공사비 약 7424억원과 함께 2024년 12월까지 공사비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확정공사비’ 전략을 내세웠다. GS건설은 공사비를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포스코건설보다 약 1000억원이 적은 6438억원을 제안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합원들은 조합설립인가 단계인 부곡2구역 재개발사업이 갈 길이 멀어 2024년 이후 공사비가 인상될 가능성이 남아있는데다, 당분간 물가 상승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 시작가가 낮은 것이 유리할 것이라 판단해 GS건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된다.
공사비 검증 요청 급증에 조직 확대, 적정 분양가 산정 여부 ‘관심’
이처럼 전국의 크고 작은 사업장에서 공사비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앞서 택지비 관련 조직을 개편·확대한 바 있는 부동산원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원은 택지비 검증절차 개선방안의 일환으로, 택지비평가서 검토검증위원회(이하 택지비 검증위)에 외부 전문가를 최대 20명까지 영입하는 등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원 택지비 검증 제도는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상한제 택지평가액을 시세보다 매우 낮게 책정하고 산정근거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부동산원은 현실과 부합하는 분양가를 통해 정비사업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새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개편에 발맞춰 조직을 신설·확대했다.
분양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택지비의 향후 산정 기조에 눈길이 모아지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분양가 요소인 공사비 검증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부동산원에 접수된 정비사업장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는 14건으로, 작년 상반기 9건 대비 55%가량 증가했다. 반기 기준으로도 2020년 첫 제도 도입후 최다 기록이다.
글로벌 경기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영향이 단기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닌 만큼, 공사비 검증을 의뢰하는 기존 사업장뿐 아니라 현재 걸음마 단계에 있는 사업에서도 검증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 증가 폭이 추후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늘어나는 공사비 검증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객관성도 높이기 위해 부동산원의 선제적인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공사비 검증 업무 효율성 제고를 위해 올해 상반기 공사비검증부 내 검증1팀과 2팀을 신설했고, 하반기에도 꾸준히 인력을 증원하려 하고 있다”면서 “증원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국토교통부 정책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원 검증 차원을 넘어, 새 정부가 6.21 부동산대책을 통해 밝힌 것처럼 좀 더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분양가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집값이 오르는 요인 중 공급 부족이 큰 문제로 꼽히고 있고 원자재 가격도 상승하고 있는 만큼 여러 관점에서 접근해 분양가 문제를 개편해나가는 과정이라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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