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신(29·사진) 디자이너는 영국 유학 후 귀국해 아동복 브랜드 ‘피폴라키즈(PiPOLA KiDS)’를 론칭했다. 어린 시절 안나 수이 패션쇼를 보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던 학생이 현재 국제 패션계가 주목하는 신인으로 우뚝 섰다. ⓒ스카이데일리
“해외에서 인정받은 실력을 맘껏 발휘해 기존 아동복과 다른 영국적 감성을 넣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의 눈에 맞춘 디자인으로 좀 더 재밌고 아기자기한 아동복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예신(29) 디자이너는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국내 명문 대학을 다니다 창의적인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어 영국으로 건너갔던 그는 그 곳에서 유망 여성복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다시 돌연 귀국해 현재는 기존 여성복 디자이너가 아닌 아동복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했죠.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안나 수이 패션쇼를 보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중학교 졸업 후 예술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시절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또래의 모습을 보고 외국 유학을 가고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된 후 고등학교에서 디자인 전공을 선택해 패션, 산업, 섬유 등 전반적인 디자인 공부에 매진했다.
“중학교 시절 유학을 가고 싶다고 얘기하자 부모님께서는 우선 국내 유명대학에 진학하면 보내주겠다고 하셨어요. 이 말을 듣고 매일 밤 10시가 넘도록 그림을 그리며 계속 꿈을 키워나갔죠. 어떻게든 빨리 입학하기 위해 학교 공부도 놓지 않았습니다. 수시전형에 합격하면 수능시험을 볼 때까지 시간을 아낄 수 있겠다고 판단한거죠”
자타공인 노력형 인재, 국내 명문대 뒤로한 채 ‘유학길’ 선택
밤낮없이 노력한 김 디자이너의 간절함은 결국 결실을 맺었다. 수시 전형을 통해 이화여대 섬유예술학부에 입학한 것이다. 국내 명문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사실보다 해외 유학길에 오를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이 더 컸다던 그는 입학과 동시에 유학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했지만 결국 영국행을 결심했습니다. 패션쇼에서 볼 수 있는 창의적인 여성복 패션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죠. 미국은 상업적 패션 디자인이 주를 이뤘던 반면 영국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패션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를 배우기 위해서였죠”
▲ 미국과 영국을 두고 어느 곳으로 유학갈지 고민했던 김예신 디자이너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국행을 택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영국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London College of Fashion)’에 입학한 김 디자이너는 유학 초기 어려움을 딛고 가장 창의적인 학생으로 선정됐다. ⓒ스카이데일리
그가 영국에서 입학한 곳은 세계 패션스쿨 랭킹 5위 안에 드는 ‘런던 컬리지 오브 패션(London College of Fashion)’이다. 김 디자이너의 실력을 알아 본 입학 담당자는 곧장 유학 올 것을 권했다.
하지만 부푼 꿈도 잠시 타지에서 또 다른 고생이 시작됐다. 김 디자이너는 영국 땅을 밟고 처음 3~4개월 간 어학연수를 했다. 이후 학교에 정식으로 출석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이때 그는 특유의 영국식 억양을 이해하지 못해 진도를 따라가지 조차 못했다.
“1학년 1학기 때 교수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과제를 못해 간 적도 있어요. 이런 어려움을 말씀 드리자 과제 내용을 쪽지에 적어주셨는데 이마저도 필기체 글씨라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식 입시교육 스타일에 맞춰져 있는 제가 영국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따라가기도 힘들었어요. 한국에서는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보며 많이 연구했죠”
의지의 한국인, 국제 패션대회 ‘입상’ 세계 찬사 한 몸에
어려움의 연속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타지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노력한 그는 1년이 지나 2학년이 되면서부터 점차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러 학생들 가운데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제가 다녔던 학교는 영국인들이 절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로 가득했죠. 한 번은 수업 중에 교수님이 저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어요. 방학 동안 제가 해 온 과제를 보고 말씀하신 거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학생들이 열심히 하긴 하지’라며 칭찬하더라고요”
이후 김 디자이너는 자신에게 터닝 포인트가 된 패션쇼에 참가하게 된다. 학교 학생 중 상위권 성적의 학생 28명만 참가 할 수 있는 졸업 작품쇼인 ‘프레스쇼’에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글로벌 트렌드 정보 회사인 WGSN이 주최하는 국제 패션 대회에서 학교장 추천으로 출전해 ‘가장 창의적인 학생 졸업작품’에 선정됐다.
“이 패션쇼가 성공의 계기가 됐습니다. WGSN 패션쇼에서 상을 받고 신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잡지사 인터뷰와 화보 촬영 요청 등이 연달아 들어왔죠. 이후 1년에 3명만 선발해 쇼를 개최해 주는 패션스카우트 런던패션위크 스폰서십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 샐프릿지 백화점에서 매년 진행하는 ‘신진 패션 재능인 어워드 전시’ 16인에 뽑혀 백화점 쇼윈도우에 전시하기도 했죠”
졸업 이후 그는 ‘Yeashin’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자신만의 디자인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했다. 꽃신을 리폼하는 등 60년대 영국식 스타일에 한국식 디테일을 혼합한 디자인을 선보여 해외 패션계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한국적 디자인 바탕에 프랑스 루이 15세 시대의 장식 로코코 양식을 결합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화려함 ‘극찬’ 속 문득 회의감, 실용성 갖춘‘ 아동복 디자이너’ 출사표
▲ 김예신 디자이너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중 실용적 의상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세계적 찬사를 받았던 그는 그간 해외에서 쌓아올린 커리어를 뒤로 한 채 귀국해 새로운 영역인 아동복 디자인에 도전장을 냈다. 사진은 SS14 런던패션스카우트쇼에서 백스테이지에 있는 모델들에게 워킹 순서를 알리고 있는 김예신 디자이너 [사진=김예신 디자이너]
하지만 창의적 요소들로 넘쳐나는 패션쇼를 계속 하던 그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실용성이 없는 의상이 무슨 소용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창의적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차츰 많은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김 디자이너는 그동안 쌓아온 많은 커리어를 뒤로 한 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이후 그는 여성복 디자이너를 고집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개성 강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여성복이 살아남기 힘든데다 이미 여성복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주변 지인의 추천으로 여성복 위주의 작업 대신 아동복을 택했다. 1년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친 후 지난해 국내 아동복 브랜드인 ‘피폴라키즈(PiPOLA KiDS)’를 론칭한 것이다.
“피폴라키즈는 1960년대 영국 의상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여러 디테일 요소와 다양한 색상을 결합했어요. 그동안 제가 추구해왔던 스타일이기도 하죠. 여성복에 한 디자인적 요소를 아동복에 적용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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