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사야 40 : 28>
요즘 이른바 ‘미투(Me Too)’운동이라는 바람이 불면서 세상이 야단법석이다.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화계, 교육계에 이어 정치계까지 확산되더니 급기야는 종교계까지 그 불똥이 옮겨 붙었다.
그동안 제왕의 지위를 누리던 종교계의 갑질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고, 유명인일수록 비난이 높아지고 색에 청렴하지 못했던 종교인들이 민낯을 보이면서 추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일시어색(一施於色)’ 참으로 간단한 한 구절을 실천하지 못하다가 당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미투’는 우리 사회 가부장적 권력구조에서 발생한 권력형 성폭력을 근절하려는 운동이다.
양성 평등적 조직 문화를 지향하는 ‘시대정신’이자 성 평등이 결핍된 민주주의를 완성하자는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투는 역사의 변곡점이 될 만한 사회 현상이기도 하다.
확산되는 제2민주화 운동 미투, 속수무책 종교계
신성하고 거룩해야 할 종교계까지 봇물 터지듯 이어지는 미투 현상은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갑질인 권력자가 자신의 힘을 무기로 타인의 존엄을 해치는 행동은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재물과 색과 직위에 청렴하다면 성직자로서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천주교 사제의 성폭력 사건 폭로로 촉발된 종교계 미투 폭로는 개신교, 불교 등 종교 전반에서 잇따르고 있다.
종교계에 따르면 천주교 신부 성폭력 사건 폭로에 이어 개신교에서는 목사로부터 10년 전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 신도의 폭로가 나왔다. 3년간 목사의 성폭력에 시달리면서 낙태까지 했다는 피해자의 주장도 나왔다.
불교계에서도 한 익명 게시판에 수년 전 조계종 유명사찰의 스님으로부터 성폭행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한 여성은 사찰 종무원으로 일하면서 성희롱과 성추행당한 경험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기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대형교회 목사들이 여 성도들에게 성추행·성폭행을 하고 심지어는 낙태까지 시킨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충격의 파장이 커져가고 있다.
지엽적인 말이지만 신학교에서 신학지식 교육만 시키고,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인성교육이나 윤리교육을 배제한 결과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갑 질 성직자들(권력)은 반성하기보다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설령 교단에서 징계를 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동안 성직(출가)자에 의한 성범죄는 대부분 은폐되거나 축소돼 교리(계율)상의 처벌은 물론 사회법으로도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다.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방패삼아 잘못을 은폐하거나 축소시켜 왔던 것이다. 크고 작은 성범죄가 비일비재했던 종교계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일부 피해자는 성직자(가해자)가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 및 성희롱을 일삼았음에도 성직자를 ‘영적인 아버지’라 생각해 이를 다른 성도에게 알리거나 신고할 생각을 못했다고 진술하는 등 성직자에 대한 존경심과 신뢰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이유로 성직자의 성추행 및 성희롱 행위를 피해자들이 계속 참아왔던 것이다.
성폭력 사실 드러나도 인생 망가지는 건 이제 피해자 아닌 ‘가해자’
종교계 역시 오랜 세월 성폭력 피해자는 마땅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다. 피해자가 도리어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피해자를 보호 못한 사회(성소.聖所)가 도리어 피해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잔인하고 뻔뻔한 시대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묵인의 대가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성역이 없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악마가 돼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와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폭로의 대상이 된 사람의 부도덕성을 정죄하려 들고, 즐겁게 개탄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권력(힘)을 무기로 약자의 자발적 헌신과 복종으로 포장된 악행을 저지르거나 방관하고 있다.
그래서 너나없이 위선자이고, 공범이다. 최소한의 염치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이러니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종교계도 미투에서 자유로운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제 성폭력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인생이 망가지는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
검찰도, 문화예술계도,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쑥대밭이 됐다. 교수들이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면서 교직을 내려놓았고, 연예인의 경우 드라마에서 하차 했고 심지어는 다 찍은 영화조차 폐기되었다.
또 어떤 연예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성직자들, 교계나 사회법으로 징벌을 받기에 앞서 스스로가 부끄러움을 알고 자리에서 내려와 속죄하는 마음으로 성직을 떠나야 한다.
신도(중생)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과 하늘은 속일 수 없지 않는가. 그런 성직자의 설교(설법)을 듣는 신도들은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남성의 욕구 본능라고 변명하지말라 성직자이기에 용서를 구해도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설픈 설교(설법)가 아니라 경청이다. 피해자들의 참혹한 증언을 새겨듣고 가해자(성직자)들의 죄 값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게 터무니없는 ‘괴물’(성직자)을 길러낸 우리 사회(교회. 사찰)가 뒤늦게라도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도덕성·윤리성 없는 성직자가 종교(신학)적 성취만으로 평가받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필자가 주장해온 ‘인성이 실력’이라는 추상적 명제가 현실로 다가온 것 같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향한 미투는 종교계에서 더 치열하게 계속돼야 한다. 과연 미투 운동에 떳떳하게 나설 성직자가 얼마나 될까. 그럴 자신이 없으면 성폭행이나 성추행한 사람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양의 탈을 쓰고 가슴 졸이는 늑대 같은 성직자(性織刺)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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