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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상황에서 빛나는 인간의 숭고함

스카이데일리 칼럼

박선옥기자(sobahk@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10-18 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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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옥 부장 (국제부)
지난 주말 초대형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강타해 수 십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가옥 수 천채가 침수되는 등 막대한 피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태풍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인 미야기현 마루모리에는 마을이 온통 휩쓸려온 진흙에 덮여 있었다. 항공 촬영한 사진에는 마을 사람들이 진흙바닥에 큰 글씨로 쓴 ‘물과 음식’이 필요하다는 긴급신호가 보였다.
 
제19호 태풍 하기비스로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물폭탄처럼 쏟아져 일본 내 200여개의 강이 범람했고 강 제방이 무너져 마을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산사태와 같은 토사붕괴와 돌풍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강 범람과 차량 추락 등으로 인해 실종자가 대거 발생했다.
 
태풍이 물러가고 마을을 잠식했던 물이 빠져나간 후에 사망자 통계가 더 늘어났다. 물이 빠지면서 실종됐던 사람들이 사망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13일 기준 10명이었던 사망자 통계는 16일 75명으로 늘어났다. 실종자 16명을 포함하면 90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태풍 하기비스와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 당국과 언론에서는 피해규모를 알리면서 인명피해를 앞세워 보도한다. 그만큼 어느 누구든 한 사람의 생명이 고귀하다는 보편적 진실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태풍 재난 앞에서 일부 인간의 생명이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저울질 끝에 배척 당한 일이 발생해 일본 국내에서도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초강력 태풍 하기비스가 수도권을 강타하던 날 지역 대피소로 피난하려던 노숙자가 문전박대를 당한 일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노숙자 두 명이 도쿄(東京) 다이토(台東)구 구립 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들어가려 하자 대피소 관리 직원은 이들에게 주소와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하지만 노숙자들에게 일정한 주소가 있을 리 없었고 주소가 없다고 하자 담당 직원은 이들의 입소를 거부했다. 지역 구민을 위한 대피소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 이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거부당한 노숙자들은 밤새 강풍과 폭우 속에 방치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주소 없는 노숙자는 태풍 피해를 당해도 된다는 것이냐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더욱이 도쿄도 히노(日野)시의 한 하천 부근에서 노숙자로 보이는 남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비판은 더 거세졌다. 결국 해당 지역 구청장이 “대응이 불충분해 대피할 수 없었던 분들이 있었던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이번 사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와 관련해 “각 대피소는 피난하는 모든 재난 피해자를 적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향후 방침을 전달했다.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일본에서 대피소를 관리하는 담당자는 이번에 빗발쳤던 여론의 질타를 교훈 삼아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의 대피소 관리 담당직원은 관리기록 기준을 준수하는 일과 한 인간의 생명을 비교했을 때 어느 편에 무게를 둬야할지 평소에 학습할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인간의 생명 보다는 규칙을 더 비중있게 생각하도록 훈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뜻하지 않은 재난이 닥쳤을 때 평소 충분한 연습을 통해 대비되어 있거나 바람직한 선례가 숙지되어 있어야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
 
재난을 다룬 영화 ‘타이타닉’은 목숨이 오가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수많은 군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선장은 수효가 부족한 구명정에 어린이와 여성을 우선적으로 태울 것을 명령한다. 나머지 성인 남성들은 차디찬 바닷물에 남겨진다. 어린이와 여성에 생존의 우선권을 부여한 선장의 선택은 평소 “버큰헤이드 호의 전통”으로 불리는 바람직한 선례를 숙지함으로써 위기 상황에서 발현된 것이다.
 
1852년 2월, 대영제국의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 호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해역에서 암초와 충돌했다. 배에는 630여명이 타고 있었으나 단 3척 뿐인 구명보트에 탈 수 있는 인원은 180명에 불과했다. 사령관은 전 대원을 갑판에 집결시킨 후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환자를 먼저 구명보트에 승선시켰다. 450명의 젊은 군인들과 장교들이 침몰해 가는 배의 갑판에 남았다. 사령관은 줄 맞춰 정렬한 부대원들에게 떠나가는 구명보트를 향해 “차렷, 경례” 명령을 내렸고 이들은 그런 모습으로 배와 함께 바다에 가라앉았다.
 
사령관의 최후의 선택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재난의 상황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먼저 구조한다는 원칙의 매뉴얼로서 “버큰헤이드 호의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다. 이 선택은 자력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약자를 우선 구조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생존율을 높이고자 하는 확률적 판단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자력 생존능력이 높은 사람도 생존할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약자에게 생존권을 양보하는 결단은 산술적인 확률로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오로지 희생이라는 가치를 선택한 인간의 숭고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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