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부의 열쇠 시즌2’···부국부민(富國富民)의 길

책임의 존재 일구며 존엄성에 사활 건 이타적 자아

[대한민국 번영의 지혜<38>]-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 책임의 행복(2)

살아야 할 이유 ‘채움과 비움’···상호 길항·교란·유도 원리 속 행복의 실체

공익가치 키우는 책임의 이타성···무한 본성 따를 때 행복한 자존감 제고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3-03 00:02:52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 ⓒ스카이데일리
[전편에 이어]
 
Q. 책임의 행복을 위해 욕심을 내면서 비워야 한다는 논리가 모순 아닌가
 
A. 욕심은 강한 의지를 내는 에너지다. 책임의 확장을 위해서는 두려움에 맞서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소유의 욕심은 절제해야 할 에너지이지만 책임의 욕심은 궁극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소유의 욕심은 책임의 욕심을 위해 비워야 한다. ‘채움’은 살아야 할 이유가 돼야 하고 ‘비움’은 그 채움을 위한 지속하기 위해 대칭적이지만 하나로 존재해야 한다. (125쪽 : 이타적인 에너지가 인력과 척력을 통해 무한값으로 교류된다. 이것이 삶의 동력이고 에너지이며 살아야 할 이유가 되고 행복감을 창출해 낸다) 채움과 비움은 이기론(理氣論)의 조화 원리와 빛의 원리처럼 상호 길항하며 강한 힘을 만들어낸다. 상호 밀어내고 당기며 유도하는 길항의 속도가 빠를수록 강한 힘을 낸다. 섞일 수도 없지만(불상잡·不相雜) 분리할 수도 없는(불상리·不相離) 상극의 조화가 빛의 전기·자기 상호유도처럼 채움과 비움의 교란법칙에도 적용된다. 이 에너지 원리가 책임의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실체다. (125쪽 : 에너지 가치는 무형의 기쁨과 자아의 완성이라는 영역에 미치는 힘이다)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행복감이다. 그 기쁨의 실체가 책임 속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한 책임의 본성은 자아의 완성과정이다. 무한성은 완성을 이루는 과정의 법칙인 동시에 그 과정이 전체의 완전성을 띠는 것이라고 했다. 채움과 비움의 대칭성·상보성·상대성을 통해 지향해 가는 무한책임 본성은 전체 상황들을 하나의 다발로 볼 때 확인되는 사건의 섭리를 따른다.
 
Q. 채움과 비움이 ‘상극의 조화’를 통해 행복을 발산하는 무한 본성을 가졌다는 근거는
 
A. 채움과 비움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대칭·함수·시간이 존재를 규정짓는다고 했다. 채움과 비움 역시 마찬가지다. 상호 대칭적이고 함수값을 가지면서 시간이 관여하는 것을 무한성이라고 보면 된다. 그 무한성이 타자를 지향하는 책임의 이타성으로 쌓일 때 공익의 가치라는 결실을 맺는다. 부가가치 결실을 만드는 중심에 설 때 공익에 기여하면서 자아를 완성해 가는 궁극의 행복에 빠진다. (128쪽 : 공익의 가치는 결속의 무한가치를 창조하는 폭발력을 지녔다) 공익의 가치를 기반으로 한 책임의 행복이 얽힌 사회는 결합에너지가 강력하다. 일회성의 가치는 아무리 결실이 많아도 강하다고 하지 않는다. 지속성이 강할 때 강함이 발산된다. 결속의 무한가치가 실현되는 원초적 에너지가 책임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채움과 비움이 작동한다. 무한성이 갖는 극한값은 ‘같다’와 다름없는 ‘수렴’이라고 했다. 무한성 자체가 곧 얽힘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적으로 자연수 같은 유한성 좌우에 있는 극한값이 같을 때의 얽힘 현상이다. 네트워크 내 특정 개인은 유한성이지만 그 개인을 둘러싼 상황들은 극한값으로 둘러싸인 무한성이다. 유한성과 무한성의 공존 속에서 얽힘이 실현된다. 채움과 비움 또한 개별적으로는 유한성이지만 대칭성·상보성·상대성을 통해 무한성으로 존재한다. 행복을 발산하는 채움과 비움의 하나같은 에너지 원리는 본질적으로 ‘무한 본성’이란 말과 같다.
 
Q. 무한한 변수로 인해 책임이 방해를 받으면 무한책임의 본성 실현이 가능할까
 
A. 변수는 고난과 고통의 다른 말이다. 예측불허의 변수들이 수많은 사건으로 시시각각 닥친다. 하지만 이 변수가 신성이 깃든 창조의 씨앗이라고 했다. 창조는 책임의 행복을 실현하는 척박한 지름길이다. 힘들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첩경이 창조다. 창조는 사건을 만드는 이면의 상황들이 지배한다. 매순간 ‘상황의 다발’을 본 결과들이 ‘다발의 상황’이 된다. 전자의 다발을 후자의 다발이 포괄한다. 상황을 다발로 보는 평행한 노력이 빚은 다발의 상황들이 진정한 평등이라고 했다. 채움과 비움 역시 무한 변수를 마주하면서 나아가 평등을 타는 원리가 있다. (136쪽 : 변화는 자연의 조화와 맥을 같이하고 그 변화 물리량이 거의 모든 창조와 생명유지의 신성으로 존재한다)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채움과 비움의 존재를 규정짓지 못한다. 빛이 시공간을 변형시켜 절대속도를 갖는 것과 같이 채움과 비움 또한 변수를 기반으로 책임이란 빛을 낸다. 변수는 확정된 개인의 운명이 네트워크 내 상호작용으로 인한 무한분기로 정해지지 않은 운명이라는 ‘운명의 이중성’ 중심에서 역할을 한다. 변수는 특정한 상황과 불특정한 상황을 공유한다. 마치 0차원으로 부르는 ‘점’의 본질이 특정한 점이면서 임의의 점이라는 수학적 이중성의 원리와 유사하다. 점은 시공간의 위치가 특정됐지만 부분이 없다는 측면에서 특정되지도 않았다. 이 또한 유한성과 무한성의 공존이다. 무한 변수가 바로 ‘상극의 원리’를 탄다. 책임 본성은 무한 변수 속에서 무한한 성질을 갖고 태어난다.
 
Q. 변수가 차별을 잉태하는 불평등의 근원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고윤석] ⓒ스카이데일리
 
A. 무한성은 연속이고 유한성은 불연속이다. 만물은 불연속의 성질로 인간의 오감에 인지되지만 연속이 불연속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채움과 비움 간 상극의 조화가 지속성을 띠는 것이 무한 본성의 연속성이다. 연속은 채움과 비움의 속성을 모두 갖고 있지만 불연속은 비움의 속성을 간과한다. 연속인 다발의 상황들은 매순간 일어나는 사건의 변수들을 녹이고 포용하지만 불연속은 그렇지 못하다. 불연속은 이념주의처럼 완성을 주장한다고 했다. 완성은 변수를 포용하지 않고 오히려 배격한다. 배타성이 강한 불연속성은 결국 변수를 차별과 불평등으로 간주한다. 단절적인 불연속성은 함수값(유한)과 극한값(무한)이 동시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존재와 부존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파동성은 이미 수없이 증명된 원리다. 특정한 점과 임의의 점이 동시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연속성이라고 했다. 변수를 차별 또는 불평등이라고 보는 눈은 절대불가침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151쪽 : 에너지는 파동성이기 때문에 재단이 불가능하다)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 소립자의 근본은 양자화 된 파동성이다. 공간에 꽉 찬 에너지 연속성이 수많은 입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파동성은 재단이 불가능한 자체가 원리다. 이는 모든 변수에 대해 평행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연과 생명에 평등이 되는 힘이다. 변수는 무한확률이라고 해석해도 좋다. 확률이 극한값을 가질 때 유한성을 드러낸다. 이를 차별이나 불평등이라고 보는 것은 몽상이다.
 
Q. 차별을 보는 눈을 바꾸기 위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는 의미인지
 
A. 성찰은 네트워크 내 타자와의 이타적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이다. 성찰을 지속적으로 할 때 차별을 보는 눈이 바뀐다. 차별의 본질은 이기심·시기심으로 유발되는 특성이 강하다. 차별에 대한 불평등 의식이 강할수록 네트워크와 단절을 선택한다. 이기심·시기심은 나날이 더 커진다. 끝내 고립계로 빠지면 모든 게 차단되고 만다. 차별을 보는 지혜는 네트워크 내에서 에너지를 주고받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가늠된다. 신성의 눈을 갖는 다면 열린계에, 지혜를 추구한다면 닫힌계에, 지혜를 멀리한다면 고립계에 각각 있는 상태다. 사건이 아닌 다발의 상황들을 사건으로 보는 지혜가 높아질 때 열린계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성찰의 기본 조건이다. 무소유의 소유가 소유라고 했다. 불평등 속 평등이 평등이라고 했다. 무소유의 소유가 더 큰 소유를 안겨주고 불평등 속 평등이 더 큰 평등을 가져다준다. 전자는 순환을 통해, 후자는 양심을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163쪽 : 성찰은 타인의 선택에 의한 삶이 아닌 주체적 삶의 조건이다) 성찰은 이타적인 바탕에서 주체적인 자기모습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양심적으로 평등을 느끼고 또한 실천해 간다. 모든 책임을 늘 자신으로 돌린다. 반면 고립계에서의 삶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불행을 불러들인다. 에너지와 물질의 교류가 없는 죽은 시공간 속에 갇힌 형상이다. 차별을 차별로 보지 않으려는 강인한 성찰만이 닫힌계를 탈출할 수 있다.
 
Q. 불평등 구조를 인간의 심리적 잣대로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지 않은가
 
A. 죄의식은 죄를 행한 특정 사건에서보다 죄를 인식하는 양심에서 더 많이 발동한다. 죄를 지은 특정한 행위에는 수많은 해석과 판단행위가 들어간다. 행위만으로는 죄의 잣대가 수없이 바뀐다. 죄를 짓고도 심리적으로 무죄라고 확신하는 경향성까지 나타난다. 따라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작동하는 양심만이 죄의 유무를 근본적으로 가른다. 인간의 심리적 잣대가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 네트워크에 얽힌 심리적 상태에서 나오는 죄의식은 다양한 해석이 불가능한 절대적 진리의 범주에 있다. 불평등을 바라보는 에고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을 때가 많다. 양심을 멀리한 채 규정되는 불평등은 엄정히 불평등이 아닌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불평등 구조가 있다면 양심이 그것을 해결할 적합한 무기다. 양심적으로 불평등을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 불평등은 이미 해소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80쪽 : 자유시장에서 인간은 절대적 결핍과 상대적 결핍들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분에 대해 지나친 윤리적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결핍을 죄의식이 다양한 사건이 아니라 양심의 눈을 갖고 다발의 상황들로 보아야 한다. 절대적 결핍은 사회나 국가의 총체적 네트워크에 찾아든 가난이다. 빈국의 상태이거나 빈국으로 추락하는 상황을 모두 포함한다. 상대적 결핍이 불평등 구조지만 이를 절대적 불평등으로 왜곡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불평등 구조는 평등을 향한 평행한 삶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양심이 떠받치고 있는 한 불평등 구조는 고착화 되지 않는다.

목차
제1장 신 보수의 가치
 
1-1. 욕망의 장
1-2. 권력의 장
1-3. 경쟁과 차별
1-4. 빈수레 진보
1-5. 이념의 굴레
1-6. 탈 진영의 길
1-7. 신 보수가치
 
제2장 누가 약자인가
 
2-1. 인심과 수심
2-2. 베풂과 이기심
2-3. 강자와 약자
2-4. 강자논리
2-5. 약자논리
2-6. 강자의 비탈
2-7. 약자의 험로
 
제3장 새로운 평등을 말한다
 
3-1. 불평등 샘
3-2. 평등론
3-3. 평행한 삶
3-4. 삶의 사단(四端)
3-5. 책임의 행복
3-6. 신들의 평등
3-7. 인간의 지혜
 
제4장 제국주의는 없다
 
4-1. 열국주의
4-2. 제국과 식민지
4-3. 민족의 꿈
4-4. 제국의 꿈
4-5. 1인 나라
4-6. 초국의 실수
4-7. 무국의 질서
 
제5장 민중은 가공됐다
 
5-1. 국민론
5-2. 민중론
5-3. 지성적 시민
5-4. 오만한 민중
5-5. 인공의 허(虛)
5-6. 신들의 공(功)
5-7. 인간의 꿈
 
제6장 역천의 이념인가
 
6-1. 건곤(乾坤)
6-2. 변증 소용돌이
6-3. 하늘의 영광
6-4. 반야(般若)의 지혜
6-5. 순천&역천
6-6. 현재형 인간
6-7. 미래 사다리
 
제7장 이상사회를 논하다
 
7-1. 제3의 역사
7-2. 사회적 굴레
7-3. 사회의 꿈
7-4. 대동사회
7-5. 커뮤니티 진보
7-6. 이상국가론
7-7. 이상사회론
Q. 책임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평등 구조가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A. 열린계에서는 미분이 불가능한 원리가 숨어 있다. 인간의 오감으로 열린계의 에너지 운동성을 장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대문명은 좌표를 기반으로 한 대칭·함수·시간을 장악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미분이 그 중심에 있어 왔다. 문명은 미분 가능한 닫힌계에서 찬란한 업적으로 쌓여졌다. 닫힌계에서 최대값·최소값·사잇값 등이 존재하는 에너지 원리가 인간의 오감에 잡힌 것은 창조력의 기반이 됐다. 이는 인간의 지혜로움을 반증했다. 이처럼 극한값과 사잇값의 존재는 연속함수가 존재하는 것을 증명했다. 연속성인 다발의 상황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자 하는 지난한 노력은 거꾸로 불연속성인 불평등 구조가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책임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 불평등 속 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를 불평등과 평등의 이중성이라고 해도 좋다. 문명이 차별·불평등의 상징으로 표현되며 지탄받으면 안 되는 이유다. (208쪽 :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과 행복감을 주는 덕성을 발휘하고 있다) 문명은 부가가치 결실의 총합이다. 결실은 차별 속 평등을 실현하는 핵심 에너지다. 불평등 구조를 평등의 대칭으로 삼아 평등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 결실이 있다. 닫힌계에서 불연속의 연속성은 불평등 구조의 긍정적 역할을 의미한다. 불평등 구조는 마치 허상의 입자인 양공처럼 책임의 행복이란 에너지가 작동하기 위해 존재한다.
 
Q. 절대적 도덕률을 지키지 못하면 책임의 행복도 시한부이지 않을까
 
A. 신성의 도덕률에는 오직 선의(善意)만 가득하다. 이를 전선(全善)이라고 했다. 지선(至善)·극선(極善)의 본성은 전선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보편적 도덕률이 양심이다. 절대적 도덕률을 향한 행위에 양심이 자리한다. 양심이 기반되지 않는 지선·극선은 거짓이고 허상이다. 책임의 행복은 절대적 도덕률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양심적 행위에 따른 결과다. 불완전한 도덕률 속에 책임의 행복이 구현된다. 평등을 지향하는 ‘양심의 가책’이 그것이다. (210쪽 : 자연·인간·생명의 공통적 도덕률은 엄격함을 지키지 못하는 가운데 자라나는 역설이 통한다) 책임의 행복은 외견상으로만 보면 불연속하기 때문에 시한부가 맞다. 하지만 기준이 항상 새로 선다. 그래서 시한부이지만 끝이 없는 시한부다. 절대적 도덕률을 완성하지 못하는 가운데 책임의 행복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0쪽 : 한계 도덕률은 신적 가치의 도덕률을 지키기 어려운 인간의 한계성이다) 자유시장에서는 수많은 가치의 생명이 일어난다. 그 속에서 절대 도덕률만을 따지는 것은 한계 도덕률을 인간의 자기 편리성으로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 도덕률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압제를 가하는 식으로 자유를 통제하거나 빼앗는다면 전선을 향한 척 하는 위선이다. 이념주의자들의 타락성은 책임의 시한부를 받아들이는데 있다. 책임의 본성은 무한성이라고 했다. 책임의 행복은 변화하는 가운데 끝이 없다.
 
Q. 인간의 존엄성 제고 측면에서 행복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한지
 
A. 타자 지향성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일구는 옥토다. 하지만 개인들은 이를 존엄성으로 보지 않는 성향이 있다. 자신의 안락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존엄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인간의 존엄성은 이타심과 선의를 통해 상호 키우는 방식으로만 제고된다. 다만 무한 창조력이 경쟁하는 구도에서 도덕률이 상흔을 입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창조의 주체는 자신의 존재나 부존재조차 굳이 구분하지 않는 노력이 긴요하다. 존재가 존엄성의 제고인 것 같지만 부존재가 오히려 존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부존재 할 가능성은 사건이 아닌 다발의 상황들을 감안하면 매우 높다. 상황들이 정보의 패턴으로 존재할 때 그것으로 드러나는 사건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사건만으로는 선의와 악의를 완벽하게 구별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한 상황들을 종합하지 않으면 악의가 감추어지는 경우가 많다. 악의는 선의의 옷을 화려하게 입기도 한다. (213쪽 : 악과 악마를 강력히 규정하면 되레 악마가 무엇인지를 거의 모르게 한다) 행복은 인간의 존엄성을 제고하는 노력 속에서 나오지만 완성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존엄함이 부존재한 가운데 존엄한 존재를 일구면서 존엄한 행복을 타고 있다. 우리 모두가 그 존엄성의 탑을 쌓고 있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 좋아요
    0

  • 감동이예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뛰어난 실적, 경영능력으로 3연임에 성공한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경선식
경선식에듀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조승우
굿맨스토리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사랑의 한 끼로 희망을 전하고 싶어요”
사람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으로 움직이는 ...

미세먼지 (2021-02-26 15:00 기준)

  • 서울
  •  
(양호 : 38)
  • 부산
  •  
(최고 : 15)
  • 대구
  •  
(좋음 : 21)
  • 인천
  •  
(좋음 : 26)
  • 광주
  •  
(좋음 : 29)
  • 대전
  •  
(보통 :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