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가 침공하자 속국 왜를 진상조사했던 호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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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조사관을 왜로 보내 지형까지 조사…대륙에 왜 있었을 가능성 커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3-10 17:55:09

<대배달민족사>에 실려 전해지고 있는 결자징실(缺字徵實)과 <고구리사초략>을 종합하자면 영락 10년(400)에 왜가 나라를 들어 항복했다. 호태왕은 응신(応神) 대신 인덕(仁德)을 새로운 왜왕으로 봉하니 기뻐하며 두 딸을 바치면서 충성을 맹세했다.

영락 14년(404) 비문은 왜 관련 문구라 그런지 훼손된 글자가 절반가량 돼 원래 어떤 글자였는지 알 수가 없어 판독이 어려운 상태다. 일단 보이는 글자만으로 해석하면 “왜가 (이미 항복한 상태임에도 또) 침공을 해왔기에 격퇴했다”는 내용이다.

“14년 갑진에 왜가 법도를 어기고 대방의 경계(帶方界)에 침입해 □□□□ 석성도(石城島)로부터 배를 연결해 □□□□□□□□□ 평양의 뒤를 쫓아 □□가 왕과 서로 만나 □ 깃발을 끊고 쓸어버리니 □□가 무너져 패했는데 목을 벤 수가 무수히 많았다”

호태왕에게 충성맹세까지 했던 왜가 얼마 후 대방을 침공했다는 내용이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비문으로는 알 수가 없어 <고구리사초략>에 무슨 단서라도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위 14년 비문과 비슷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영락 14년(404) 갑진 5월에 왜구가 대방에 쳐들어왔기에 붕련에게 군사를 움직여 왜선을 공격하게 했더니 목 베고 사로잡은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게다가 이어지는 아래 문구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의문점들이 모두 풀리게 됐다. “이들 모두 해적 집단이라 인덕이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인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매 상이 서구를 왜로 보내 그 진상을 알아보라고 명했다”

영락 14년(404)에 대방을 침공한 주체는 왜의 정규군인 왜군이 아니라 바로 왜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그야말로 해적 집단인 왜구(倭寇)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안은 호태왕이 왜구 침공에 대한 진상과 지형조사를 위해 조사관을 왜로 파견했다는 점이다. 마치 명나라 사신이 조선왕조에 와서 고명에 대한 사실여부를 조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특히 지형에 대해 조사해 보고했다는 의미는 인덕 왜왕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를 임명해준 호태왕에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기록들로부터 당시 왜는 고구리의 속국이 분명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렇게 호태왕이 진상조사를 하던 차에 왜구가 또 신라를 침공해왔다. “15년(405) 을사 4월, (신라의) 보금(宝金)이 독산(獨山)에서 왜구 300의 목을 베었다. 이들은 지난해 쳐들어왔던 왜구의 잔적들이었다. 왜 땅에는 큰 섬들이 많고 서로들 다른 무리들이라 인덕의 통제가 두루 미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7월에 서구가 왜에서 돌아와 그 풍습과 산천 및 물길에 대해 아뢰었다”

<고구리사초략>의 위 기록은 <삼국사기>에 아래와 같이 기록돼 있다. “405년 여름 4월, 왜병이 명활성(明活城)을 공격해왔다. 그들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자 임금이 기병을 이끌고 독산(獨山)의 남쪽 길목에서 요격했다. 다시 싸워 그들을 깨뜨리고 300여명을 죽였다”

대방과 독산의 위치는 어디인가

영락 14년(404)에 왜구가 침략해온 대방(帶方)의 위치는 과연 어디였을까. 현재 한중일 사학계는 대방을 황해도로 비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한사군의 핵심 낙랑군이 대동강 평양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황해도 대방설이야말로 잘못 비정된 이론임이 분명하다.

▲ 왜가 일본 땅에 있었다면 대방까지 갈 수가 없다. 왜도 대륙에 있었다는 얘기다. [사진=필자 제공]

원래 <한서지리지>에서 유주(幽州)의 낙랑(樂浪)군에 속하는 대방현은 군의 서쪽에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같이 낙랑군에 속하는 패수(浿水)가 북부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강이므로 대방 역시 거기서 많이 멀지 않아야 할 것이다.

(패수 위치는 ‘호태왕이 백제군을 토벌한 패수는 어디인가’ 참고)

대방과 아주 가까워야하는 석문(石門)의 위치로 볼 때 대방은 산서성 남부 문희(聞喜)현 동쪽으로 비정된다. 또 대방고지(帶方故地)는 백제 온조왕과 분서(汾西)왕과도 관계있는데 시국처 부근에 있다는 마수(馬首)산과 분서라는 지명이 부근에 있는 산서남부 임분시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독산(獨山)은 현재 여러 군데 있을 수 있지만 영락 15년(405) 비문에 언급된 독산은 산동성 미산현에 있는 독산호수 부근으로 보인다. 옛날에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큰 내륙호수인 발해(渤海=대야택)가 있었지만 지금은 토사가 퇴적된 상태에서 땅이 굳어져 그 흔적만이 동평호와 남양호, 독산호, 소양호, 미산호 등의 호수로 남아있을 뿐이다.

668년 고구리 멸망 이후 대조영이 발해 부근에서 나라를 세워 대진국(大震國)이라 했다. <고구리사초략>의 영락 15년(405) 기사에 ‘왜 땅엔 큰 섬들이 많고’라는 문구로 미루어 볼 때 왜는 이 발해(대야택) 부근에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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