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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싸움에 멍 드는 우리의 미래세대
/미국 일본 호주 인도 vs 중국 북한 한국
/1000조 국가부채는 우리 자녀의 어깨에
/취직 결혼 내집 등 삶의 당연함 누려야
여성 비하 발언으로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총리. 그가 약 20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서울의 특급 호텔에 양국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환영행사를 치렀다. 참석자들은 장시간 한일 양국에 온갖 축사를 퍼부었다. 요즘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행사 마지막에 양국 초등학생들이 서로 상대국 동요를 불러주는 순서가 마련됐다. 우리 아이들이 불렀던 일본 동요는 ‘저녁노을의 빨간 잠자리(유야케 고야케노 아카톰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의 대표적 동요다.
호텔에 울려 퍼진 ‘아카톰보’
학생들을 비추는 조명만 빼고 한껏 어두워진 호텔 연회장에서 그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났다.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 가사까지 외워서 노래하는 아이들한테 왠지 미안했다. ‘어른들이 한일간 현안을 제대로 해결 못하고 맨날 싸우니 너희들이 동원됐구나. 다시는 이런 고생 안 시키마.’ 그런 각오를 했던 것 같다.
그 각오로부터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일관계가 발전하고 세상은 좀 좋아졌을까. 결론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전에는 한·일 간에 ‘전설’ 비슷한 얘기들이 있었다. “방한한 특사가 한국 대통령과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일본 총리가 축하연에서 ‘노란 셔츠의 사나이’를 불렀다.” 등등. 좋고 나쁨을 떠나 그런 일들이 있었다.
요즘은 다른 것 같다. 올 2월 임명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과 아직 전화통화도 안 했다. 정 외교장관은 오히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을 먼저 만났다. 1월 하순 일본에 간 강창일 주일대사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 모테기 외상을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보다 우리가 미국과 더 친한 것도 아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속에 처음으로 ‘대면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일본 총리다.
“한국은 레드팀”
전보다는 우리와 소원해진 미국 일본 인사들은 틈만 나면 ‘중국의 위협’을 말한다. 또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면서 중국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는,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안보회의체인 ‘쿼드(Quad)’에 동참하라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우리 정부는 말이 없다.
그래서 미국 일본 등의 언론에는 우리를 중국 북한 선수가 소속된 ‘레드 팀’의 일원으로 보는 듯한 기사가 자주 실린다. 실제 정책 당국자들마저 ‘카치캅시타(We Go Together)’라고 거듭 제안해도 “평화와 행복” 같은 추상적인 말로 비켜가며 같이 안 가려는 한국을 레드 팀 선수로 보는 것 같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관계를 ‘외적의 침입에 공동대처하는’ 수망상조(守望相助)라고 표현한 것은 그래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국제회의를 통해 우리의 ‘이적(移籍) 의사’를 최종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그 가능성이 제일 커 보이는 것이 코로나19 회의, 기후변화 회의다.
외교의 기본은 어떻게 해야 가장 큰 국익을 얻어내느냐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서야 21, 22세기에도 우리가 번영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2021년 현재 ‘쿼드 팀’인 미국 일본 인도 호주가 우리를 자기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 또 하나. 훗날 이 복잡한 동북아 상황에서 행복을 누리거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을 사람은 20년 전 특급호텔에서 ‘아카톰보’를 불렀던 귀여운 우리 아이들이 될 거란 사실이다.
“1조만 주십시오”
경제 형편은 좀 어떨까. 이건 들은 얘기다. 한 공무원이 소속 부처 차관에게 업무보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차관님, 1조원만 주시면 이 문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차관은 이렇게 말해줬다.
“내가 당신한테 매일 1000만원씩 준다고 쳐. 그렇게 해서 1조원을 주려면 몇 년이 걸리는 줄 아나? 270년 이상이야.”
그런데 우연인지 일본에서도 ‘조’ 단위 얘기가 최근 나왔다. “외국관객 없이 도쿄 올림픽을 치르려다 보니 손해가 1조엔을 넘어서 난리”라는 것이다. 그 뉴스를 보면서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웬 호들갑’이란 생각이 들었다. ‘조’라는 단위와 너무 친해져서 그런가.
우리는 지금 수십조원 정도 사업은 쉽게, 별 신경 안 쓰고 발표하고 실행한다. 지난 2년간 일자리 만든다고 50조원 넘게 썼다, 내년 일자리 예산은 사상 최대인 25조원이다.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올려줄 돈 없다”고 하자 바로 세금 3조원을 풀었고,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해주고 박력 있게 추진키로 한 사업이 24조원에 달한다. 요즘 1조원은 껌값 같고, “돈은 안 쓰면 썩는다”던 한 여성의원 말이 ‘혹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우리 채무는 2023년 1000조원을 넘어선다. 1000조원 나라 빚도 훗날 아카톰보를 불렀던 귀여운 우리 아이들이 책임진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퇴임에 앞서 최근 각 언론들과 인터뷰하며 현실을 증언했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어. (젊은이의 발목을 잡는) 법과 제도는 우리 기성세대가 만든 건데, 젊은이가 미래로 가려면 우리가 고쳐줘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수백 번 미안하다고 했어.”
가장 나쁜 죄는 ‘미래를 도둑질한 죄’라는 말이 있다. 한 경제지 분석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적 직장인’이 월급 한 푼 안 쓰고 모아서 ‘평균적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6년이었다(2017년 5월 현재). 그게 지난해 말 26.5년으로 늘었다. 은퇴할 때까지 일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든 나라가 된 것이다. 아니, 사실은 집보다도 직장 갖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한 번도 취직한 적 없는 25~39세 청년 무직자가 사상 최대라고 한다.
‘취직,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전에는 평범했던 이런 일들이 이젠 경험해보기가 힘들다. 도대체 누가 우리 젊은이들 미래를 훔쳤나. 여당에 물어보면 ‘전 정권’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코미디언 쟈니 윤은 생전에 이런 농담을 했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이다. 생전에 한 번도 전임자를 탓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초대 대통령 인데.”
‘라떼 세대’인 필자가 어렸을 때는 남 탓 하면 어른들한테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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