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빚는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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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삶을 빚는 도시 이야기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들어
유명 예술인 집‧작업실을 찾는 건 삶의 호기심
나를 닮은, 만드는 내 주변 공간을 되돌아본다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3-31 09:08:42

영국 출신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수면에 비친 햇살을 표현하는 여러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루에도 몇번씩 햇빛이 나왔다 사라지는 영국의 환경에 익숙했던 그에게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햇살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변화무쌍한 영국의 날씨와 달리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LA의 모습에서 햇빛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처럼 도시가 가진 자연적 특징은 예술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비슷한 이야기로 이탈리아 베니스 출신 화가들이 다른 지역 출신보다 색을 더 잘 썼다는 말도 있다. 물 위에 시시각각 다르게 비치는 색을 보며 색에 예민한 감각이 발달했다는 이유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우리는 도시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을까.

지난해 열린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국내 전시회 한켠에는 그가 살았던 밀라노의 상징들이 미니어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노란 트램, 밀라노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칵테일, 두오모와 근래 들어선 건축물까지 밀라노라는 작은 도시가 펼쳐졌다. 자유롭게 관람하고 있던 내게 갑자기 도슨트의 흥미로운 설명이 들렸다. “어떤 분께서 SNS에 후기를 남겨놓으셨어요. 자리도 좁은데 왜 이 코너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시기획자는 카스틸리오니가 살았던 밀라노라는 도시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가 살았던 도시가 카스틸리오니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지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전시에서 그가 살았던 밀라노 트 램, 카페, 건축물 미니어처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사진=필자제공]

데이비드 호크니, 베니스 미술가들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에게 밀라노는 영감의 원천이자 활동의 무대였다. 전시 한 코너의 제목은 아예 밀라노를 더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Milan l`e` un gran milan (밀라노는 위대한 밀라노이다)’. 밀라노에서 살며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로서 아킬레 카스틸리오네의 삶은 도시와 떼어낼 수 없는 디자이너의 삶을 이야기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이탈리아의 디자인이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이렇게 삶을 통해 진한 풍미를 내는 디자인, 디자인의 산업화와 확산을 가능하게 한 배경, 즉 도시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가 시대적 예술가를 만들었다. 어느 도시를 여행할 때 어떤 예술가의 도시, 그가 머물렀던 도시 등 소개 문구를 갖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또 도시는 사람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한 사람이 만든 무언가가 전시장 안에 선다면 그 곳에는 영감의 배경인 환경 또한 함께할 수 있다. 사람들을 만나며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무대이자 배경, 그 안에 자리했던 작가의 숨결을 상상해보며 우리는 작가의 시공간을 더욱 가까이 만나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전시장에서 작가가 살고 있는 도시, 작가의 작업실과 서재 등 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여러 공간을 만난다. 때론 그가 즐겨 찾은 식당이나 카페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작가가 아닌 작품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등장하기도 있다. 작가의 작업실, 발명가의 실험실, 창업가의 서재 등.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장 안에 놓인 세트들은 엄청난 단서이다.

물건과 사진만이 아닌 마치 영화 속 장면으로 초대된 관객은 한 사람이 그 장소에서 어떠한 영감을 받고 어떻게 작업을 해나갔을지 추측할 수 있다. 물건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면 꼼꼼하고 정리를 좋아했을 법한 작가의 성격이 엿보인다. 작업과 관계없는 물건들이 사방에 놓여있다면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받았던 작가나 창업가를 상상해볼 수 있다. 수집은 취향을 반영하고 있으니 한 사람을 취향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다.

유명한 예술가의 집이나 작업실이 여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이 살았던 환경에 예술적 영감의 원천, 창작을 위한 그들의 노고,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정보를 함께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 말이다. 그들이 거닐던 삶의 한 장면으로 초대받는 관객은 영감과 노고의 세계로 초대받는 경험을 한다.

수많은 영상물이 세상 곳곳을 보여주는 시대라고 하지만 프레임의 밖을 본다는 의미에서 누군가의 삶을 담은 전시는 시공간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안에 그가 살아온 도시가 자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 어렸을 적 추억이 깃든 동네, 골목이 모두 우리의 삶을 빚어낸 배경이자 무대이다.

집이 삶을 위한 장소보다 현실을 위한 재화로 간주되는 현실 속에 도시와 삶의 연결고리에 대한 물음이 진하게 떠오른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내가 살아온 도시 공간에 대한 역사가 어딘가 남겨있을까. 집의 역사는 등기부등본이 말해준다면 여러 집을 거쳐 온, 다양한 도시에 영향받아 온 나의 삶은 내 이력서 안에 담겨있을지 질문을 가져본다. 어쩌면 내가 찍고 있는 사진, 쓰고 있는 글 안에 나의 도시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며,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만든다는 그 진부한 말이 유난히 떠오르는 요즘이다. 나를 닮은 내 주변의 공간, 나를 만드는 내 주변의 공간. 내 삶의 장면들도 한번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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