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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와 자연법
종교 권력과 신분 질서에 속박된 인간의 해방을 위해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먼저 중세 종교권력이나 전제왕정과 신분 귀족 국가의 지배자들이 인민, 신민(臣民)들을 지배하기 위해 유포한 신분 질서 이데올로기를 뒤집어엎어야 했다. 이를 위해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 본성의 탐구에 몰두했고 자연 상태의 인간을 여러 모습으로 묘사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고유의 자유 의지를 가진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인간이 가진 것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인간의 자연권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권리다. 자기 생명을 지키는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는 권리다.
“자연권(jus naturale)이라 부르는 ‘자연적 권리(right of natural)’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본성, 즉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 힘을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각자의 자유며, 따라서 자신의 판단과 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수단으로 판단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던> 제1부 14장)
자유는 외부의 방해가 없다는 뜻이다. 권리는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는 반면 법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지시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과 권리는 의무와 자유만큼이나 다르다. 자연 상태의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권리가 아니라 법이 필요하다. 이런 자연권 사상에 의해 두 가지 자연법이 도출된다.
자기 생명을 보존하는 것은 제1의 자연법이다.
“자연법(lex naturalis)이란 인간의 이성이 발견해낸 계율 즉 일반적 원칙이다. 이 자연법에 의해 인간은 그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나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을 박탈하는 행위를 하거나 생명을 보존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게을리 하는 것이 금지된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평화의 조건은 제2의 자연법이다.
“인간은 평화와 자기 방어를 위해 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 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럴 경우에는 만물에 대한 이 권리를 포기하고 자신이 타인에게 허락한 만큼의 자유를 갖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제2의 자연법은 모든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황금률이다. 경전에는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거나, ‘자기가 바라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하지 말라’(己所不慾 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 <논어> 안연 편)고 표현했다.
생명과 자유는 자연 상태에서도 주어지는 인간 고유의 권리라고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주장한다. 이런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간이 자연 상태를 버리고 국가 상태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존 로크는 자유권의 일종인 재산권을 포함시켜 국가가 최소한 보장해야 할 국민의 권리는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이라고 정리했다. 이런 원리에 따라 정립된 근대 공화국 헌법은 인간의 자연적 권리를 인정했고 그런 인간의 기본권은 양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보장된다고 천명했다.
9번째 세월호 사고 조사위원회
국회는 지난해 12월 22일 집권당 단독으로 ‘사회적 참사의 진상 규명 및 안전 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을 통과시켰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국가 기관 7곳이 여덟 차례에 걸쳐 조사·감사·수사한 것도 모자라 다시 특검까지 꾸려 아홉 번째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끝없이 이용하며 쏟아 부은 세금은 한두 푼이 아니다. 야당 집계에 따르면 ‘사참위’ 등 진상 조사 위원회에 올해까지 65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에 따른 기존 정부기관의 기회비용은 상당할 것이다. 테러 공격으로 3000명 이상 숨진 미국 9·11 참사 조사위원회가 쓴 돈이 1500만달러(약 163억원)였다. (조선일보, 2020.12.12.)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나 조사, 진상 규명은 우리 사회 전체가 깊이 고심해야 할 진실을 외면한 채 하찮은 유언비어성 의혹에 대한 조사·수사의 반복이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주사파 운동이 전국을 휩쓸 수 있을 정도로 고유의 자아를 정립하지 못하고 풍문에 휘둘리는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온갖 괴담들이 떠돌아 다녔다. 공화정을 부수려는 특정 세력들이 이런 괴담을 체계적으로 날조 유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군 잠수함, 미군 핵잠수함에 의한 충돌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인신 공양설’, ‘국정원의 기획 침몰설’ 등 상식에 반하는 괴담이 날조될 때마다 J방송이나 M방송 등이 사기꾼들을 동원해 사건을 키웠다. 이후 조사해 보니 아무 근거도 없더라는 식의 조사 수사 진상 규명이 반복됐다.
괴담을 퍼뜨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특정 세력들의 정권 탈취 수단으로 악용하는 행위는 반역 행위다. 내란죄에 준하는 엄중한 형사 처벌을 하고 손해배상 청구나 구상권을 행사해 괴담 유포자들로 인한 국가 행정과 재정의 손실을 막아야 한다. 9번째 조사위원회가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진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사건은 안타까움이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사건이다. 그럴수록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냉정히 파악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지켜봤듯이 세월호는 배가 약 15도쯤 기울어진 채 2시간 이상 바다에 떠 있었다. 마음만 먹었으면 모든 승객들은 큰 어려움 없이 배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왜 승객들이 선실에서 탈출하려는 마음을 먹지 못했을까?
선원들이 계속 ‘가만히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했다고 한다. 그날 갑자기 임시직 선장이 배치됐는데 이 자가 승객 안전을 가장 우선해야 한다는 선장의 직무를 유기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가 기울면 전복될 수 있는 만큼 승객들의 생명은 위태로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인데도 왜 대부분의 승객들은 선원들이나 교사들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라줬을까?
나는 이 점이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본다. 정상적인 민주공화국이라면 국민의 생명과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으로 보장받는다. 심지어 법을 만들어서도 자연권을 제한할 수 없다. 그러나 공화국을 건국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은 그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나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수단을 박탈하는 행위를 하거나, 또 생명을 보존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위를 게을리 하는 것이 금지된다’는 제1의 자연법이 왜 지켜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대개 개인보다 가족이나 집단의 이해를 앞세우도록 교육받는다. 학교에서는 자유 의지와 개성을 가진 학생보다 선생 말을 잘 듣는 학생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인 직장이나 사회적 모임에서 다른 생각을 말하는 동료에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핀잔을 주거나 왕따 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 일족이나 지역, 학벌, 특정 세력이라면 무조건 지지하는 이른바 ‘빠돌이·빠순이’ 문화를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현상은 공화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 개인을 부정하는 것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동체’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는 전체주의 문화다. 평소 개인의 의견을 불온시하는 우리 사회 내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승객들 스스로 탈출하려고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억누른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중대한 문제점은 그 배가 약 15도 정도 기울어진 상태에 있을 때 해양 경찰과 방송국 헬기 등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도 방송 중계 화면으로 배가 기울어진 상태를 지켜볼 수 있었다. 보고 체계를 통해 고위 공직자들도 현장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공직자들이 재난을 당하면 국민부터, 승객부터 먼저 구해야 한다는 자연법 제1의 원칙을 왜 지키지 못했을까? 직위에 따라 주어진 권력은 행사하더라도 공직자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덕성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지난 여덟 차례의 조사, 수사, 진상 규명은 그 사건을 통해 반성해 봐야 할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을 다루지 않았다. 이번 9차 조사위원회도 정치 파벌들의 눈앞의 단기적 정치적 이해관계만 조사하고 끝날 듯하다. 국민의 세금을 털어먹으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비극적 재난 사고를 악용해 자행되는 전체주의적 감성팔이 선동 정치가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대학교수들이 지식인이라면, 방송·신문사 직원들이 언론인이라면, ‘**빠’ 성원들도 시민이라면, 세월호 9차 조사위원회를 당장 해체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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