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된 ‘주 52시간 근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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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영 기자페이지 + 입력 2021-07-29 00:02:38

문재인정부와 여당이 추진해 온 주 52시간 근무제가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이래 우리 사회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고 있다. 올해 초 50~299인 중소기업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는 반년이 지난 이달부터 5인 이상 소기업에까지 확대 적용됐다.

그동안 국내 산업계는 주 40시간의 법정 근로 시간에 더해 연장 근로 시간 12시간, 주말 근로 시간 16시간 등 총 주 68시간을 법적으로 근무해 왔다. 그러나 문 정부가 ‘저녁이 있는 삶’을 국민에게 보장하겠다며 법정 근로 시간 단축에 속도를 내면서 근로자가 일을 하고 싶어도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를 두고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지난달 16일 권기섭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2017년과 비교해 보면 지난해 연간 근로시간이 줄고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취업자 비율도 감소했다”며 “앞서 국민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제20대 국회의 좋은 입법 1위로 뽑은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생산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게다가 법정 근로 시간 축소에 따른 임금 감소로 일하고 있던 직장을 떠나는 근로자 이탈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렇듯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민의 신음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문 정부는 졸속으로 처리한 정책을 통해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마치 장님이라도 된 양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국민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발표와 정반대의 반응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내 산업계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밀어붙이다 보니 그렇잖아도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이 더 큰 경제적 위기에 내몰렸다는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의 사업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따르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하루아침에 범법자가 될 수 있어서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면 최장 4개월의 시정 기간이 부여되고 기간 내 시정되지 않으면 근로기준법 제110조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폭탄에 처해진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비단 사업주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달부터 5인 이상 영세 중소기업의 근로 시간까지 주 52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임금이 크게 감소했다. 당장 잔업과 주말 특근 등을 할 수 없게 되다 보니 예전에 비해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근로자가 기존의 법정 근로 시간대로 일했다면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8720원 기준으로 주 28시간의 연장·휴일 근로에 대해 1.5배의 가산 수당을 받아 총 286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단 야간 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은 계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 52시간으로 법정 근로 시간이 축소되면서 최대 주 12시간까지만 연장·휴일 근로에 대한 가산 수당을 적용받게 됐다. 이에 월급은 약 202만원으로 쪼그라든다. 근로자 입장에선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80만원 넘는 돈을 벌 수 없게 된 셈이다.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이 줄다 보면 이들이 아예 중소기업을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몸은 고되고 근로 시간은 길어도 실수령액이 많다는 장점으로 중소기업에 종사했는데 임금이 크게 감소한다면 굳이 중소기업에서 힘들게 일하느니 몸이 더 편한 일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력 이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에게 근로자 임금을 올려주는 것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생산량이 현저히 줄어 매출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직원들의 임금마저 올리게 되면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전 국민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 주겠다는 문 정부의 구호는 매우 달콤했다. 누구나 야근 대신 가족, 연인, 친구들과 오붓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럴듯한 구호의 이면엔 국민에게 희생만을 강요하는 정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 정책의 취지에는 어느정도 공감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과 사업주, 근로자 모두가 불만을 제기하는 정책을 수용하길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역효과를 불러온다. 그 폐해는 보다 영세한 기업과 사업주,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놓인 근로자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약자를 위한 정책이라더니 그 정책에 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됐다. 정부의 일방적인 불통 행정에 국민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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