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진칼럼] ‘17세 노인 자살’ ‘전두환 대령’ ‘犬統領(견통령)’ 기억하나요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데스크칼럼

어떻게 하면 미필적 고의 범죄인 ‘오보’를 줄일 수 있을까

조정진 발행·편집인 기자페이지 + 입력 2021-11-02 08:52:39

잘못된 기사를 통칭하는 오보(誤報)는 기사일까 범죄일까. 오보에는 허위보도·과장보도·왜곡보도·날조보도·편파보도·불공정보도는 물론 오탈자로 인한 그릇된 기사까지 포함된다. 마땅히 보도되어야 할 내용을 고의로 보도하지 않는 것도 넓은 의미로 오보 범주에 속한다. 이를테면, 특정인이 범죄 혐의로 구속될 때 큼직하게 보도했으면 무죄로 석방됐을 때도 후속 보도를 해야 하는데 침묵하는 경우 등이다.

오보는 ‘17세 노인 자살’ ‘季承晩(계승만)’ 같이 사람의 이름·나이·직책·날짜 등이 틀리는 객관적 오보와 기자의 편견이나 선입관 등에 의해 발생하는 주관적 오보가 있다. 객관적 오보는 무지나 착각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므로 대부분 비고의적이다. 하지만 주관적 오보는 어떤 개인이나 단체의 이해관계에 얽혀 대개 악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보의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물론 대부분은 기자의 부주의·태만·불성실 등 취재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지나친 속보 경쟁, 특종 의식, 공명심, 수용자의 선정적인 관심이나 흥미에의 영합, 특정 사건·사물에 대한 무지 또는 편견도 때론 오보를 부른다. 여기에 더해 요즘은 제보자나 기자의 자작·조작에 의한 오보도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MBN, MBC, YTN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태블릿PC’가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살인도 계획적 살인이 있고 우발적 살인이 있듯이, 오보도 처음부터 기획한 악의적 오보가 있고, 취재·편집·교열 등 제작 과정에서 실수로 발생하는 우발적 오보가 있다. 기획 오보는 취재원과 미리 짜고 하는 경우다. 스포츠·연예신문이 한창 지하철과 가판대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갈 때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을 띄우기 위해 잘 나가는 다른 유명인과의 결혼·연애설을 일부러 흘리기도 했다. 노이즈마케팅이다. 그러면 그날 가판 신문은 매진되곤 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허위·가짜뉴스를 생산한 매체에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국기자협회·관훈클럽·국제언론인협회(IPI)·국경없는기자회(RSF) 등 국내외 언론 단체는 물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같은 국제기구까지 언론자유 탄압 입법이라고 항의에 나선 상황이라 추진 동력은 사실상 상실했다. 하지만, 잘못된 기사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라 언제 다시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른다.

악의적 오보는 중대 범죄다. 명예훼손죄·모욕죄 등 관련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일례로 여성잡지 ‘마드모아젤’은 1988년 5월호에 ‘전경환과 김성희 소문의 진상’이라는 기사를 게재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동생과 미스코리아가 각각 운영하는 사무실이 우연히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것에 착안, 상상해서 쓴 기사였다. 잡지는 당시로선 꽤 큰 액수인 3000만원의 위자료를 지불하고 폐간됐다.

문제는 ‘활자 있는 곳에 오자 있다’는 말처럼 제작 과정에서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오보다. 1950년 대구매일신문과 1953년 삼남일보는 대통령을 ‘犬統領(견통령)’으로 오기(誤記)했다가 폐간된 일이 있다. 3공화국 시절엔 공화당을 ‘공산당’으로 쓴 매체도 있다. 서울신문은 5공화국 때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 여사를 ‘이순자 여자’로 오자를 냈다가 여러 명이 짐을 꾸렸다. 월간 ‘사회정화’도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하는 기사에서 대통령을 ‘대령’으로 표기했다가 창간호가 폐간호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활자를 사용하던 시절 신문사를 한 달간이나 정간처분을 받게 한 오식(誤植)도 있었다. 1955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는 한·미 석유협정 관련 기사인 ‘고위층 재가 대기 중’이라는 2단 제목 앞에 다른 기사에 가려던 ‘傀儡(괴뢰)’가 붙어 ‘괴뢰 고위층～’으로 인쇄됐다. 10여분 만에 윤전기를 세웠으나 이미 실려나간 375부 중 93부만 회수했다. 공무국원 등 3명이 구속되고, 발행인과 주필 겸 편집국장은 불구속 송치됐다.

이러구러 오보는 미필적 고의 범죄다. 오보로 인해 한 번 실추된 피해자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는다. 특히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인기가 삶의 기반인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따라서 오보를 낸 언론사는 주저 말고 즉시 기사 취소뿐만 아니라 정정 보도를 내야 한다. 오래 전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은행간부 외화 도피’ 기사가 오보로 밝혀지자 1면 머리기사로 사과와 함께 정정기사를 내보냈다. 대단한 용기로 외려 독자한테 찬사를 받았다.

기자와 언론사는 오보 방지를 위해 게이트 키퍼인 편집기자와 최후의 수문장인 교열기자 중용 등 2중3중의 안전장치를 해야 한다. 아울러 사실을 훼손하는 속보보다는 좀 늦더라도 적확한 기사만 내보낸다는 보도 철학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