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 
전주 
혹독한 가난 벗어나려 글러브 끼어
헝그리정신으로 8체급 타이틀 쟁취
링에 서며 상‧하원의원 정치인 역할
가난 쓰라림 알기에 천문학적 기부
내년 대선에서도 유력 후보로 꼽혀
사각의 링 안에서 신체 전면을 타격해 승패를 결정짓는 권투는 가장 원시적이고 잔인한 스포츠다. 오늘날의 권투와 아주 흡사한 판크라테온은 기원전에 개최된 고대올림픽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다. 경기 시간은 무제한이었고, 어느 누가 기권하거나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경기가 이어졌다고 한다. 휴식 시간도 없었고, 선수가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허다했다. 선수가 죽는 경우에는 죽은 선수가 승자가 됐다. 이 판크라테온을 개량화한 것이 오늘날의 권투다.
세계권투협회(WBA), 세계권투평의회(WBC), 국제복싱연맹(IBF) 등 세계 권투계는 주먹 하나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중남미 선수들이 주름을 잡고 있지만 동양인으로 이름을 빛낸 복서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 필리핀의 파이터 매니 파퀴아오다.
필리핀을 넘어 아시아의 영웅
사상 최초로 프로복싱 8체급을 석권한 파퀴아오는 필리핀뿐 아니라 아시아의 복싱 영웅으로 불릴만하다. 세계 복싱사에서 '살아있는 레전드'다. 왼손잡이로 워낙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권투를 구사해 국내에도 그의 팬들이 적지 않다. 필리핀에서 파퀴아오의 인기는 어마어마하다. 파퀴아오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을 하고, 여야가 정쟁을 멈춘다고 할 정도다. 경기 시간에는 거의 모든 것이 올스톱이다. 길거리의 택시와 시내버스 운행이 멈추며, 심지어 교도소 재소자들에게도 경기를 시청하게 해준다.
1978년 필리핀 만다나오섬의 혹독하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다. 아버지는 파퀴아오가 12세 때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겼고, 어머니 혼자 여섯 명의 자녀를 양육해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떠맡은 파퀴아오는 길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어려서부터 주먹질에 능해
어려서부터 쌈박질에 능했던 그는 나이가 대여섯 많은 형들과 싸워도 지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이런 탓에 주변에서 놀림을 받을 리가 없었다. 주먹으로 동네를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퀴아오는 자신의 특기가 주먹질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권투 글러브를 끼었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였고, 당시 대전료는 한 라운드 당 2달러였다. 낮에는 생선 노점상, 밤에는 링에 오르는 투잡을 가졌지만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철공소 노동자로 일하기도 했다.
복싱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14세 때 수도 마닐라로 떠난 뒤 인생에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곳에서 정식으로 복싱을 시작해 1995년 17세에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빠른 손놀림과 강펀치를 소유한 파키아오는 헝그리 정신까지 더해져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기본부터 변칙까지 복싱의 모든 기술을 갖춘 그는 상대의 펀치를 얻어맞더라도 집요하게 파고들며 늘 공격하는 전형적인 파이터였고, 화끈한 복싱으로 그의 경기에는 관중이 구름같이 몰렸다. 화끈한 경기로 그의 매치는 KO 퍼레이드와 함께 늘 흥행만점이었고, 자연스레 돈방석에 앉게 됐다.
'세기의 대결' 대전료 1300억원 넘어
키 1m66에 빈약한 체격을 지닌 파퀴아오는 1995년 프로에 입문할 때 체중이 가벼운 플라이급(50.80kg 이하)에서 출발했다. 1998년 WBC 플라이급 타이틀을 따냈고, 2001년에는 IBF 주니어 밴텀급(55.34㎏이하), 2008년 3월에는 WBC 슈퍼 페더급(58.97㎏이하) 챔피언이 됐다. 이어 그해 6월 WBC 라이트급(61.23kg이하)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등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4체급 타이틀을 석권하며 당대 최고의 복서로 등극했다. 2008년 12월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골든 보이’ 오스카 델라 호야까지 KO로 눕히며 승승장구했다.
‘살아있는 전설’이 된 파퀴아오는 5체급을 석권하고 47전 전승을 기록 중이던 ‘무패 전설’ 플로이드 메이웨더(미국)와 2015년 5월 세기의 대결인 웰터급 통합타이틀을 펼쳤다. 여러 차례 무산을 거듭하던 이 둘 간의 대결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빅카드였다. 파퀴아오는 비록 아쉽게 판정패를 했지만 파이트머니로 무려 1억2500만달러(한화 약 1375억원)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히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그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았지만 늘 초심을 잃지 않고 링에서 투혼을 불살랐다. 그가 주먹 하나로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된 이유다. 올해 8월 복서로서는 환갑을 한참 넘긴 43세의 나이에 WBA 슈퍼웰터급 타이틀 매치 재등극에 나선 사실상의 고별무대였지만 파퀴아오는 고령의 나이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적인 복싱을 한 진정한 복서였다. 62승(39KO승)2무8패를 기록하며 26년간 정들었던 링을 떠나야 했다.
정치인 되기 전부터 엄청난 자선
그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갖고 있으면서도 오래 전부터 정치판에 나섰다. 2007년 처음 출마한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그가 링에서 은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던 필리핀 국민들이 일부러 표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2010년 하원의원, 2016년엔 상원의원에 당선돼 현재도 활약 중인 정치인이다.
파퀴아오는 내란과 가난에 찌든 조국의 발전을 위해 정치인이 되기 전부터 어마어마한 금액을 기부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필리핀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100만 페소(한화 약 2300만 원)를 기부했고, 매년 빈민촌에 거액을 내놓았다.
정치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 통 큰 기부를 했다. 2013년 10월 필리핀을 강타한 태풍 하이옌 피해지역을 직접 방문하며 피해자들을 위해 192억원을 기부했다. 메이웨더와의 대전료 중 절반가량인 500억원을 자선단체에 내놓기도 했다. 주먹을 맞아가며 힘들게 번 돈을 좋은 곳에 쓴 전형적인 사례다. 그의 아내 진키 사모라 역시 심장병재단을 운영하며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의술을 베풀고 있다. 파퀴아오 자신이 어린 시절 힘겹고 모질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선에는 부창부수였다.
두 차례 방한했던 친한파 인사
그는 정의감도 각별하다. 미국에서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 반대 캠페인에 동참했다. 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무방비한 아시아인 공격은 그만!”이라는 글을 한국어·영어·중국어·타갈로그어로 올리며 인종차별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맹렬 정치인이다. 과거 한국에도 두 차례 방문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파퀴아오는 친한파 인사다. 올해 연말에도 또 방한할 예정이라고 한다.
파퀴아오는 내년 5월 실시될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라고 한다. 파이터 파퀴아오가 대선에서도 강펀치를 날려 과연 대권을 잡을 수 있을지가 자못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대하역사소설 ‘우리나라 삼국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