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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신라에 대패한 ‘임나일본부설’의 왜나라

삼국사기 “수천의 왜군, 신라로 들어와 거의 전멸”

왜군 대패한 독산 지명, 중국대륙서 찾을 수 있어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2-01-07 09:10:41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이란 왜가 4세기말부터 약 200년 동안 구한말 때 조선총독부와 같은 통치기구인 일본부를 임나지역에 설치해 지금의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허구의 학설이다. 더욱이 그 임나를 가야(加耶)로 보고 있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또 시기적으로 왜가 고구리의 최전성기였던 호태왕 시절에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것으로 비문까지 변조해가며 신묘년(391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제·가야·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에 실제로 어떤 상황들이 전개됐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일본 최초의 고대국가였던 야마토(大和)왜는 백제계 일왕 응신(応神)이 세웠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즈음 백제가 왕인과 아직기를 보내 문화를 전했고 전지태자를 볼모로 보내는 등 왜와 교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느닷없이 백잔을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세칭 신묘년 주장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온 건지 모르겠다.
 
야마토왜는 신라를 자주 침공하곤 했는데 예전 왜구의 침공 때보다 그 규모도 훨씬 커진 데다가 전투도 무척 치열해졌다. 아래는 신라의 국가체재가 확립되었다는 내물왕 때의 『삼국사기』 기록으로 수천 명이 넘는 왜군이 신라로 쳐들어왔다가 거의 전멸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9년(364) 여름 4월, 왜병이 대거 공격해왔다. 왕이 듣고서 대적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풀로 허수아비 수천 개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병기를 들려서 토함산(吐含山) 아래에 나란히 세워두고 용맹한 병사 1000명을 부현(斧峴)의 동쪽 벌판에 숨겨놓았다. 왜인이 자기들의 머릿수가 더 많음을 믿고 곧바로 진격해오자 숨어 있던 병사들이 일어나 허를 찔렀다. 왜인이 크게 패해 달아나니 추격해 그들을 거의 모두 죽였다.”
 
이후 침공이 없다가 30년 만에 왜가 다시 도발을 했다. 『고구리사초략』에 “영락 3년(393년, 신라 내물왕 38년) 여름부터 왜가 신라를 누차 침략했다. 금성(金城)을 닷새 동안 포위했다가 물러나는 적을 추격해 독산(獨山)에서 협공해 모조리 죽였다. 이를 독산참왜(獨山斬倭)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왜가 침공해 신라의 도성(금성)을 포위했을 정도였으니 분명 대규모 병력으로 추정된다. 신라가 지구전을 펴자 포위를 풀고 돌아가는 왜군의 길을 막은 200명의 기병과 1000명의 보병이 독산(獨山)에서 협공해 대파하니 살획이 매우 많았다는 내용이다. 독산참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으니 29년 전 수천 명을 전멸시킨 전투보다 더 엄청난 대승이라 하겠다.
 
▲ 허구임이 입증된 호태왕비문의 세칭 신묘년 기사. [사진=필자 제공]
 
호태왕비문에서의 신묘년은 391년이다. 그 해 왜가 바다를 건너와 백잔·가야·신라를 깨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불과 3년 후인 393년에 왜가 신라의 금성을 포위했다가 돌아가다 독산에서 신라군에게 협공당해 참패를 당했으니 세칭 신묘년 기사는 완전 조작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7년 후인 영락 10년(400)에는 왜가 신라를 침공했다가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은 호태왕이 보낸 고구리 기병 5만에게 나라가 거덜날 정도로 심하게 유린 당하게 되는데, 과연 어떤 내용이 전개됐을까.
 
독산의 위치는 어디였을까
 
왜군이 신라군에게 참패를 당한 독산은 과연 어디였을까. 강단사학계는 식민사학자 이병도 박사의 비정대로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 있는 독산으로 보고 있는데 독산성이 한때 백제의 영토였다는 한 가지 기록만으로도 이병도의 신광면 비정은 잘못된 비정이라 할 수 있다.
 
또는 독산을 충남 예산이나 경기도 양주·포천에 있는 산으로 보기도 했는데 경주 금성을 포위했던 왜군이 어떻게 일본과 반대 방향으로 육지로 철수했는지에 대한 대답부터 해명돼야 할 것이다. 여하튼 현재 식민사학계의 반도사관으로는 기록의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는 지명을 찾아낼 수가 없다.
 
▲ 옛날 발해의 흔적들. [사진=필자 제공]
 
현재의 중국 대륙에서 독산을 찾아보면 귀주성의 독산현, 호북성 기춘(蕲春)현의 독산촌, 안휘성의 육안(六安)시와 안경(安慶)시와 내안(來安)현 등 3곳 등 여러 곳에 독산이 있다. 위 사서기록에 적합한 독산은 바로 예전에 발해(渤海)로 불렸던 큰 내륙 호수의 일부였던 독산호가 있는 산동성 서남부 제령(濟寧)시의 남부 미산(微山)현에 있는 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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