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가는 와중에 세 건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연이어 선고되었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에 대한 유죄 판결이 1월 27일,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주역인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에 대한 유죄 판결이 1월 30일, 그리고 김학의 전 법무차관에 대한 무죄 판결이 2월 1일 선고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다시 상고를 하는 바람에 최종 확정은 아니지만 이변이 없는 한 번복될 리는 없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건 모두 문재인 정부 임기 3년차이던 2019년에 잇따라 기소되어 임기 종료 직전에 최종심 선고가 났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에 대한 일종의 평가라는 생각이 든다.

 

먼저 정경심 사건은 이 정부 지도층이 보여줬던 소위 ‘내로남불’에 대한 심판 성격이 있다. 이 정부와 조국 전 장관을 지지하는 이들은 표창장 한 개 위조가 무슨 대수냐는 반응이었다. 택시기사 폭행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용구 전 법무차관이 사석에서 대학 선배이기도 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그거 강남에서 아무나 다 하는데 왜 그렇게 심하게 수사했냐’고 항의했다는 일화가 이런 정서를 대표한다.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반발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허위 서류에 의한 입학이나 취업 문제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이미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이 대졸 학력을 속이고 노동 현장에 ‘위장취업’했던 때부터 대법원은 허위 서류 제출 자체를 업무방해죄로 인정해 왔다. 대졸인 것이 노동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업무방해죄 법리는 현실로 업무가 방해될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런 ‘위험’만 발생해도, 즉 허위 서류 제출로 취업 심사 업무가 방해 받을 위험만 발생해도 범죄 성립을 인정한다. 각종 행정 법령도 인ㆍ허가 신청 시 거짓 서류를 제출한 것이 확인되면 예외 없이 인ㆍ허가를 취소하도록 되어 있기도 하다. 거짓 서류가 없었더라도 인ㆍ허가를 받을 만 했는지 여부는 가리지 않는다. 일반인들이 생소한 판례나 행정법까지 갈 필요도 없는데 전 정권 비선 실세로 지목됐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자대학교 입시 면접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들고 간 일로 학위가 취소됐었기 때문이다. 정유라 씨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라서 실력만 놓고 보면 체육특기생 자격이 충분했다. 그러나 원서 접수 마감일 이후에 획득한 금메달을 이화여대가 반영해 준 것이 절차 위반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확고한 기준을 위반한 사건에 대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에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는 식으로 사실상 두둔하는 바람에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 터졌다. 그래서 이 정부에 대해 ‘내로남불 정권’이란 평가는 두고두고 계속될 것 같다.

 

내로남불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블랙리스트 사건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가 문제된 것은 직전 박근혜 정부 때였다. 야당 유력 대선 후보 문재인과 서울시장 박원순을 지원하는 문화예술계 인사 9000여 명의 명단을 작성하여 지원을 끊게 지시했던 일로 조윤선 문화부장관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구속 기소되고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이 정부에서만큼은 특정 인사를 리스트로 관리해 찍어 내는 일은 감히 없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기대를 무너지게 한 것이 바로 이 사건이었다. 비록 정무직이지만 임기제로 선임된 공무원을 짤라 내 헌법상 보장된 직업공무원 제도를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엄중했고 도덕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운동 출신 장관 시절에 벌어진 일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환경부장관과 청와대 비서관이 처벌받는 선에서 끝났지만 과연 일개 비서관 선에서 기획된 일이겠냐는 의문은 두고두고 남을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김학의 전 법무차관 사건은 2013년부터 10년에 걸친 한 편의 대하 드라마같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참여했던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의 자료 제공에 의한 한국일보의 2021년 4월 특집 보도(「한국일보가 쓰는 윤중천ㆍ김학의 백서」)가 있기도 한데, 여러 군상들의 욕망과 암투, 정권 차원의 개입이 범벅된 사건이었다. 김학의 씨는 경기고와 서울 법대를 졸업하여 학벌로도 가장 엘리트 코스를 밟은 공안 검사였다. 법무차관에 오를 때까지 검사장만도 5년을 했으니 못 해 본 것은 총장이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유력자가 등장하는 별장 성접대 비디오라는 것이 떠돈다는 보도가 나오자 여론은 들끓었다. 그러나 2013년, 2014년 두 차례 조사에서 모두 무혐의로 끝났었다. 무혐의 결과를 두고 검찰의 내식구 감싸기란 비판도 있었고 윗선 지시에 의한 무마 의혹과 최순실의 비호가 있었다는 소문까지 나왔다. 그래서 이 정부 들어 법무부 과거사위원회와 대검의 진상조사단 차원에서 다 조사를 했지만 여전히 기소할만한 혐의가 밝혀지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버닝썬 사건이 터지고 청와대에 파견된 경찰 고위직이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돌자 문재인이 대통령이 갑자기 버닝썬 사건과 함께 김학의 전 차관 사건까지 콕 찍어서 ‘검찰과 경찰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사실상 재수사 지시를 하고 말았다. 

 

필자는 이 부분 대통령의 지시가 매우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검찰청법상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주무 장관인 법무부장관조차도 검찰총장만을 지휘ㆍ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최고 권력자라도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까지 검사를 지휘했다가는 검찰권이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자기 측근이나 자식 비리가 터졌을 때 눈치 보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라고 했지 특히 전 정권에서 종료된 사건을 다시 들춰서 조사하라고 지시했던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수사권 없는 과거사위원회를 설치해 조사했던 이유도 바로 권력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고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단이 가동 중임에도 대통령이 조직의 명운을 걸라는 강한 지시를 내리는 바람에 결국 김학의 사건의 재수사 명분을 부여하고 그의 출국을 막으려는 과정에서 담당검사가 허위보고서를 작성하고 청와대 비서관이 직권을 남용하여 기소되고 말았다. 

 

반면에 김학의씨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대해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김학의 사건을 대통령까지 나서서 들춘 이유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수사처 설립의 명분을 부여하려는 의도였다는 뒷말도 나온다는 점에서 정권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구체적 사건을 이용했다는 오점을 씻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