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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인간승리 표본
SNS에 올려 팬들과 암 극복 약속 지켜
어릴때부터 하고픈 것은 해내는 집요함
예전과 달리 보드 오를때 늘 감사함 느껴
“"많이 웃으면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인다”
보드를 이용하여 공중묘기를 펼치며 설원의 슬로프를 질주하는 스노보드가 동계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은 1998년 나가노(일본)대회부터였다. 당시에만해도 ‘대회전’과 ‘하프 파이프(half pipe)’로 나뉘어 경기가 치러졌지만 제24회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는 무려 11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스노보드는 동계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있고 흥미진진한 종목 중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쇼트 트랙의 금메달 9개보다 더 많은 셈이다.
스노보드, 1998년부터 올림픽 종목
기울어진 반원통형 슬로프(파이프를 반으로 자른 모양)를 내려오면서 점프와 회전 등 공중 연기를 선보이는 하프 파이프, 1개의 큰 점프대에서 도약해 회전 등의 화려한 공중 묘기를 선보이는 빅에어, 레일, 박스, 벽 등 다양한 장애물과 점프대를 뛰어 넘으면서 현란한 공중연기를 펼치는 슬로프 스타일 등 세부 종목이 각양각색이다. 각 종목이 요구하는 기술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한 번의 올림픽에서 2개 이상의 메달을 획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스노보드는 미국 산악지대에서 사냥을 할 때 사용하던 스키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널빤지(보드)를 이용한 것이 효시다. 그러다 1960년 ‘눈에서 즐기는 서핑’이라는 뜻의 ‘스누퍼’라는 발명품이 세상에 나오면서 스포츠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합판 또는 플라스틱을 보드로 사용하기도 했고, 서핑과 같이 방향성 있는 핀을 부착하기도 하는 등 그 소재와 모양도 다양했다. 1970년대 말부터 바인딩으로 발을 보드에 고정시키는 스타일이 등장하고, 스틸 에지가 부착된 제품이 출시되면서 스노보드라는 이름이 정착되었다.
패럿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동‧하계 올림픽에는 늘 큰 용기와 진한 감동을 주는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올림픽이나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 열광하고 관심을 갖는 이유다. 물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함께하는 미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세계 91개국, 29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인간 승리의 메시지와 용기를 전달한 인물은 스노보드 남자 슬로프 스타일 금메달리스트인 캐나다의 맥스 패럿이 아닌가 싶다. 올해 28살의 ‘열혈 청년’ 패럿은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혈액암의 공포를 이겨내고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동을 연출했다. 힘들고도 악몽처럼 끔찍했던 항암 투병의 노력을 보상받았기에 그에게 박수 갈채를 보낸다. 곱상한 얼굴에 수줍은 미소의 소유자인 패럿이 얼마나 무섭고 열정이 뜨거운지를 가늠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패럿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캐나다 퀘벡의 브호몽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패럿은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이자 캐나다 점핑 수상스키 챔피언인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았다. 두살때부터 스키를 탄 패럿은 캐나다 동계 스포츠의 메카인 퀘벡지역에서 자란 데다가 잠재된 재능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을 만한 이상적인 환경 속에서 컸다. 그의 부모는 스노보드가 가족 스포츠인 스키보다 더 위험하다며 꺼려했지만 그의 열정을 끝내 꺾을 수는 없었다. 아홉 살 때 보드를 사달라는 요구를 부모가 거절하자 그는 동네 잔디를 모조리 깎아주며 번 돈으로 스스로 보드를 살 정도로 집요하고 억척스러웠다. 어려서부터 하고픈 것은 꼭 해내고야 마는 집요한 성격이었다.
프로 스노보드 선수가 되느라고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았다. 그의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가지 않은 케이스다. 1년만 프로 스노보드 선수를 하겠다고 부모와 약속했으나 프로생활이 벌써 12년째다. 본격적으로 프로 스노보드 선수에 입문한 2011년 루키시절부터 2014년 월드 스노보드 투어에서 종합 챔피언이 되기까지 패럿은 30번 이상 시상대에 올랐다.
2014년 익스트림(X)게임 슬로프스타일에서 연속 트리플 점프를 성공한 최초의 선수였고, 2015년 4월 당시에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스위치 쿼드러플 언더플립(보드 아랫부분을 잡고 뒤로 4바퀴반 회전)을 최초로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등 신기술 개발의 선구자였다.
4년전 평창에서 은메달 따고 암진단
2018년 2월 평창올림픽 직전에 열린 X-게임 슬로프스타일 경기에서 최초로 백사이드 트리플 콕(진행 방향을 바꾸며 공중에서 5회전하는 고난도 기술)을 성공시키는 등 메달을 4개나 따내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결과는 슬로프스타일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4년 뒤 베이징에서의 금메달을 꿈꾸며 훈련을 거듭하던 그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10개월이 흐른 그해 12월이었다. 혈액암을 진단받고서는 눈앞이 캄캄했다. 패롯은 선수 생활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9살 때부터 스노보드를 탔던 그는 보드를 난생 처음 집안 창고에 넣어 버렸다. 운동을 그만 둘지도 모른다는 위기 때문이었다. 패롯은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는 스노보드를 그만 둬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큰 슬픔과 실의에 빠졌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암투병 소식을 감추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알렸다. 전 세계에서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이 쏟아졌다. 그럴 때마다 팬들에게는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패럿이었다. 어렸을 적 스노보드 챔피언에 오르겠다는 일념은 암을 극복하고 말겠다는 집념으로 나타났다. 패롯은 6개월 동안 죽음보다 더 힘들다는 12번의 항암 치료를 성공적으로 받았다. 2019년 6월이 마지막 항암 치료였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암 극복한 뒤 곧바로 훈련 돌입
몸 상태가 서서히 좋아지면서 찾은 곳은 동네 체육관이었다. 그동안 손실된 근육과 감각을 되찾아 재기를 위해 날마다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했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두 달 뒤 열린 X-게임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패롯은 암을 극복한 뒤 보드에 발을 올리는 매순간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한때 죽음의 경계까지 다다랐던 그에게는 꼭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삶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정신적으로 훨씬 강해지고 새 사람이 됐다는 얘기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을 ‘암을 이겨낸 사람(Cancer Survivor)’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암투병 이전에 1만명도 채 되지 않던 페이스북 팔로워도 25만명을 넘어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그는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많이 웃을수록 모든 게 더 긍정적으로 보이는 법”이라는 젊은이 답지 않은 메시지를 남겼다.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넘기라는 뜻이었다. 패럿이 4년뒤 밀라노 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패럿이 이번에 남긴 열정과 도전의 메시지는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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