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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각자에 따라 행복의 정의나 체험이 다르긴 하지만, 오늘은 거두절미하고 당신이 알고 있는 ‘그 행복’을 이야기 하자.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거나 사랑을 구하거나 종교를 갖는 이유도 결국은 ‘행복’으로 귀결된다.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 닿게 되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이유도, 거기에는 무슨 수로도 행복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행복할 수 있는 시공간이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미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현재’ 사이에서 당신의 행복은 놓여 있다. 다른 시공간은 없다.
오후 2시경 강의실 분위기가 축 처진 시래기 다발이 연상될 지경이 되면 나는 가끔 학생들에게 쪽지 시험을 내곤 했다. 나로서는 분위기 반전을 위한 카드이기도 하다. 시험 문제는 딱 하나. A4용지를 나눠준 다음 칠판에 이렇게 적는다. “종결어미가 ‘행복하다’인 단문 100개 적기. 단, 오늘 정오 이후 지금 이 시간까지 경험한 일 중에서 찾기.”
웬 일이야, 하던 학생들은 슬슬 분위기 전환에 적응하면서 질문거리들을 찾아낸다. “꼭 100개씩이나 적어야 해요?” 내가 말했다. “숫자 못 채우면 감점 있어.” “두 시간 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행복을 100개씩이나 찾아내라구요?” “행복이 무슨 닭모이처럼 흩뿌려지는 것도 아니고, 이거 너무 어려워요.” “남은 시간이 30분도 안 되는데, 그 시간에 100개씩이나 어떻게 찾아요?” “방금 전까지 행복했다가 불행해졌는데 어떡해요?” “점심에 돈 없어서 밥 굶었더니 행복하다, 이렇게 적어도 돼요?”
이쯤되면 분위기 반전은 성공이다. 학생들 의식이 ‘행복’에 집중하게 된 셈이다. 몇 가지 가벼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동안 문제의 초점이 잡혔고 무엇보다 풀어진 노른자 같던 학생들 눈빛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벌써 번호를 붙여가면서 쓰기 시작한 학생도 보인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학생들의 머리 높이가 낮아졌다.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말하는 단어
지난 2시간 속에서 100가지 행복찾기. 조건이 의제를 만들기도 하지만 의제가 조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팽팽한 고요’라고 표현한다 해도 좋을 만큼 강의실은 심해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2시간의 삶 속에서 100개의 행복찾기는 물 풍선 속에서 뱃놀이하는 것만큼이나 마술적일까. 이럴 때 나는 누군가와 내기를 하고 싶어진다. 우리 학생들이 100개의 행복을 찾아낼지, 찾아내지 못할지, 500원 걸기를 하고 싶어진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학생들은 30분 동안 강력하게 집중하면서 지난 2시간 속에 숨어 있는 행복을 발굴했다. 그러는 동안 학생들의 두뇌에서는 소위 ‘도파민’이라고 하는 행복 전달물질이 왕성하게 분출됐을 것이었다. ‘몰입’이라는 주제로 유명한 칙센트 미하이나 황농문 박사가 말한 몰입적 사고 연습이란 게 따로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미 경험한 시공간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일이다. 한 학생이 쓴 ‘100가지 행복찾기’를 발표해 주었다.
점심 시간, 식당에서 라면의 구수한 내음을 맡으며 행복했다. / 라면이 나왔을 때 탁자에 놓이는 냄비 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 /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후루룩 넣는 순간 행복했다. / 라면 한 입에 김밥 한 개를 입에 넣으며 씹을 때 행복했다. / 젓가락을 놓을 때, 포만감으로 행복했다. / 카운터 아줌마의 미소를 보는 순간 행복했다.
학생은 본인이 쓴 내용을 읽다말고 옆 자리 친구 어깨를 치며 웃었다. 이렇게 촘촘하게 놓여 있는 줄 몰랐어요. 그가 어떤 구절을 읽었을 때 맨 뒷자리 학생은 의자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 학생은 행복이 이렇게 단순한 거라면 아직도 더 쓸거리가 많다고 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나는 ‘행복이 바로 그런 거’라고 잘라 말했다.
계획을 세우고 성취를 추구하는 삶은 온당하다. 행복이나 불행은 크고 작은 계획과 성취 안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인간계의 본성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보다 더 좋은 조건, 보다 더 괜찮은 일, 보다 더 좋은 성과를 얻고자 하는 과정과 결과는 단순 생존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행복감은 인간의 속성이라는 몸체를 끌고 가는 바퀴와 같은 역할이지 않을까.
‘행복은 진지한 문제다’의 저자 데니스 프레이저는 갓난아이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말하는 단어가 ‘더 줘’라고 한다. 이쯤되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누구도 당신의 욕구를 탓할 재간은 없다. 당분간 집중해야 할 대목은 욕구의 활용이다. 욕구는 생의 시작에서 과정을 거쳐 결과를 향하는 동안 각자마다 차이를 드러낸다. 어떤 이는 ‘더 줘!’를 떠받치는 바퀴의 여러 측면을 주의 깊게 알아차리면서 가고, 어떤 이는 목적지에만 마음이 꽂힌 채 허겁지겁 이동한다.
바퀴가 당신 삶을 이동해주는 크고 작은 경험이라면, 행복은 대개 그 바퀴와의 접촉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심리적 역동’ 중 하나다. 불쾌감, 열패감, 민망함, 서러움, 아쉬움, 질투, 외로움, 단절감, 두려움, 수치심 따위들은 당신의 행복을 지그시 짓밟고 있는 내면의 괴력들이다. 이것들은 굳이 찾지 않아도 수시로 당신 삶의 처소를 들랑거린다. 마음의 세간살이를 시도 때도 없이 들춘다.
행복은 이것들과 대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정이다. 치고 박고 싸우는 감정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두려움이나 괴로움, 근심, 걱정, 우울감, 슬픔이라는 감정의 부피나 두께는 인류 생존사의 부피나 두께에 정비례한다. 행복감에 비해 ‘찬란한 역사’는 아니지만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 저 ‘괴물 감정’ 들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괴로운 표정과 근심 어린 낯빛, 걱정스런 언어, 우울한 기분, 슬픈 어조로 ‘좋은 삶을 위한 기도’를 해주겠다고 제안해오면, 물리칠 수 있겠는가. 행복으로 이것과 대적한다는 의미는 그 ‘무거운 기도’ 안에서도 짓눌리지 않을 그 무엇인가를 찾아낸다는 뜻이다. 그뿐이다. 혹시, 당신 삶 전체가 ‘무거운 기도’라면 행복은, 저 라면 한 그릇으로 행복 다발을 만들었던 학생처럼 잘게 쪼개어 경험하고 발견하는 그 순간순간,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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