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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 ‘걱정 없는 사람’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걱정이 그친다. 당신의 의식이 ‘지금 이 순간’의 생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머무름도 순간이다. 머지않아 당신에게는 ‘뭔지 모를 걱정’이 다시 피어오를지도 모른다.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영화 ‘바람과 핚께 사라지다’에서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마지막 장면에서 중얼거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는 영화사의 명대사로 남아 있다. 앞으로 닥쳐올 일이 벅차고 암울해 보이는데도 걱정을 단칼에 자르고 오늘을 누리겠다는 태도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걱정은 마음이 미래로 가 있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유사한 심리 현상으로 ‘기대’도 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기대는 아직 불어오지 않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연상시킨다. 닥쳐올 것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이 걱정이라면 ‘대비’나 ‘준비’는 걱정이라는 마음의 파동을 중화시킨다. 가만히 앉아서 불안해하느니 뭐라도 해보겠다는 태도다. ‘대비’나 ‘준비’라는 언어 속에는 걱정을 직시하는 능동성이 깃들어 있다. 하지만 걱정이 완전히 씻겨나간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대비’나 ‘준비’에는 미구에 닥칠지 모를 ‘걱정’이 슬그머니 배어 있기도 하다.
생명을 선(線)으로 볼 때 생기는 문제
이래저래 우리는 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이런 심성은 인류의 오랜 기억 세포 속에서 발견된다. 식량부족, 독충, 포식동물, 기생충, 질병, 강력한 기후 변동 등은 우리 조상을 괴롭히고 걱정하게 했던 자연의 적대적인 힘이다. 걱정이나 두려움은 그런 적대 현상의 내면화이다. 21세기의 기준으로 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설화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당신은 걸핏하면 ‘근심, 걱정’을 한다. 이유가 뭘까. 그 첫째는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괴로울 일도 없다.’ 고등학교 2학년인 조카는 지난 해 6월 이후부터, 시험 기간을 앞두고 1박2일이나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집안 전체에 공인돼 있다. 부모가 원하고 자신이 바라는 ‘성적’을 여러 이유와 사건을 거치는 동안 모두 비웠다. 조카는 이제 성적 따위는 바람에 날리기라도 하듯이 개인 여행을 떠난다. 그것도 부모의 따뜻한 환송을 받으며. 사회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놓은 ‘시험과 좋은 성적이라는 걱정거리’를 ‘시험과 여행’으로 바꾸자, 가정의 평화가 돌아온 경우다.
우리가 ‘걱정’을 자주하는 이유, 두 번째는 ‘나’에게 있다. 나는 늘 외부 대상을 상대하는 나이다. 즉, 그 사람의 대상으로서 나고, 나의 대상으로서 그 사람이다. 나홀로 100만원 손실은 수용하지만 자신이 10만 원 이익이고 상대가 50만 원 이익인 상황은 견디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절대 빈곤의 시대를 훌쩍 넘어선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세계에서 중위권 정도에 머물러 있는 이유를 이런 심리에서 찾는 학자도 있다. 같은 조건에서 불공정, 불평등이라고 생각되는 문제는 참지 못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이런 일로 인한 걱정 해소의 길은, ‘나’라는 의식 속에서 강하게 붙들고 있는 여러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라는 언어 속에는 ‘내 것, 나의 삶, 나의 가족, 나의 공적’이라는 기억이 두텁고 무겁게 쌓여 있다. 이런 ‘나’가 있는 한 ‘너는 나의 위성’일 뿐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념에 갇혀 지내기 십상이다. 걱정 끝으로 가는 지름길은 바로 ‘나’와 ‘너’의 위치를 바꿔보는 것이다. ‘너’가 없으면 ‘나’도 없다. ‘나’는 ‘너’가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나의 안전과 행복’이 보장되고 있음을 눈여겨보기. 이렇게 한 생각 바꿔보는 일은 돈 드는 일도 아니고 힘쓰는 일도 아니다.
걱정 없애기 세 번째는, 나라는 존재가 일정한 시공간 속에서 선(線)으로 사는 생명이 아니고 점(點)으로 산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선은 앞의 내용을 한 치 오차 없이 계속 이어가는 것이고 점은 앞의 내용과 다른 시공간을 점유하면서 독립적으로 놓여 있는 흔적을 일컫는다. 우리는 왜, 점으로 사는 존재일까. 간단히 말하면, 어제 저녁 10시에 당신의 생명활동을 도왔던 공기와 물은 오늘 이 시간의 공기나 물하고 같은 것이 아니다. 그 공기와 물이 나의 몸을 유지하거나 만들어왔으므로 내 몸 또한 어제의 몸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신은 저렇게 결정적인 무생물과 유기적 연관관계 속에 놓인 생명임을 자주 잊는다. 그러면서도 기억과 생각과 감정이라는 작용만큼은 일관되게 이어진다고 착각한다. 걱정은 이 착각과 연관이 깊다.
걱정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도 나의 몸과 마음이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무의식적 신념’으로 만들어 놓은 ‘생각’이다. 물론, ‘나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다. 몸무게, 세포구조, 내장기관의 상태, 혈관 상태, 피부. 그 어느 것 하나 같을 수 없는 새로운 사람이다. 전혀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공기와 물과 타인과 환경을 만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은 기억과 생각과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소위, 마음의 관성이다.
마음의 관성 중 가장 큰 특징은 반복성이다. 마음은 쥐처럼 다니던 길과 구멍을 즐겨 다닌다. 걱정이라는 구멍을 한번 사용하고, 두 번 사용하다가, 이제 걸핏하면 그 구멍을 애용한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자면, 걱정의 구멍은 그 전에 들락거렸던 그 구멍이 아니다. 그 구멍은 새로운 몸을 에워싼 변화 속에서 수시로 깨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변동하고, 사그라들곤 했다. 당신의 감정이나 생각의 변화를 돌아보면 선명해진다. 당신은 같은 환경에서도 수시로 바뀌는 생각과 감정을 경험한다. 걱정 또한 수시로 변하는 생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다른 건 몰라도 걱정만큼은 인류의 유전자 구성품이다보니, 벗어나는 일 또한 걱정거리다.
걱정을 씻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은 밥의 냄새와 국맛과 젓가락의 소리와 반찬을 짚는 젓가락의 감촉을 알아차리면 된다. 거리를 걷는 사람은 왼발을 내딛을 때 왼발의 감각과 오른발을 내딛을 때 오른발의 감각을 알아차리면 된다. 매순간 새로운 현재의 질감과 소리와 맛을 만끽하면서 사는 힘은, 걱정을 내리려고 노력하는 데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 집중하거나, 즐기거나, 요모조모 살펴보거나, 자세히 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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