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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삶이 죽음을 물리치다

전쟁터에서 ‘발레’가 보여준 인간의 숭고함

기사입력 2022-05-06 00:02:40

 
▲ 박선옥 국제문화부장
 그날 저녁, 그곳 오페라하우스에선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익숙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공연이 곧 시작되니 휴대전화를 끄고 관람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좌석에 앉아 팜플릿을 넘기며 공연시간을 기다리던 관객들은 휴대전화를 끄고 자세를 고쳐 앉는 등 발레 ‘지젤’의 막이 오르길 기다렸다.
 
그런데 여느 때와 달리 이어지는 안내방송에 관객들은 잠시 몸이 움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관객 여러분, 만일 공습경보가 울리면 공연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무용수와 관객은 모두 공연장에 마련된 대피소로 속히 이동해야 합니다.” 이 안내 멘트는 우크라이나 르비우 국립오페라극장에 앉아 있던 관객에게 잠시나마 잊고 있던 전쟁의 공포를 일깨우는 독화살과 같았다고 CNN 기자는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르비우는 우크라이나 내부 서쪽에 위치한 덕분에 러시아군의 포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달 18일(현지시간)에는 미사일 5발이 떨어져 민간이 6명이 사망했고, 3일에는 르비우 발전소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당해 도시 대부분 지역에서 전기가 끊겼다. 2월 24일 러시아 침공과 함께 르비우 시민들의 일상도 무너져 내렸다. 르비우 국립오페라극장도 결국 문을 닫았다. 제1·2차 세계대전 중에도 문을 닫지 않은 극장이라는 신화도 여지없이 깨졌다.
 
이런 전쟁터에서 지난달 29일 르비우 국립오페라극장이 다시 문을 열고 공연을 한 것이다. 극장 측은 “시민들이 매일매일 죽음, 피, 폭탄과 같은 슬픈 소식을 접하고 있다면 그들에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연 재개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재개된 발레 ‘지젤’ 공연은 티켓판매 얼마 후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다만, 대피소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 만큼만 티켓을 판매한 탓에 공연장 객석은 빈 자리가 적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이날 외신이 전한 공연장의 모습은 안내방송을 빼고는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무대 뒤에는 남·녀 무용수들이 연습에 여념이 없었고, 앙상블을 맡은 발레리나들은 공연시간 직전까지 발레 슈즈와 의상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주인공 지젤 역을 맡은 발레리나 다리나 키릭은 분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며 막이 오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러시아군의 학살이 자행됐던 부차에서 다행스럽게 살아나와 폴란드로 피신 중이다.
 
무대에 오르는 무용수나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 모두 현재 펼쳐지고 있는 전쟁의 상흔과 공포를 가슴에 안고 이번 공연에 임했을 것이다. 왜 이들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을까.
 
바실 보우쿤 오페라하우스 감독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전쟁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빛이 어둠을, 삶이 죽음을 물리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이 진실을 전하는 일이 극장의 사명이다”라며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 가는 전쟁의 한가운데서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발레 공연을 무대에 올려야 했던 간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보우쿤 감독의 말처럼 이날 공연은 ‘삶이 죽음을 물리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다. 인간의 정신은 신비한 것이어서 삶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푸틴의 미사일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지젤’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다. ‘지젤’의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의 정신은 더더욱 무너뜨릴 수 없다. 이 영역은 바로 예술에 의해 확장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숭고함’이라는 미학 개념은 서양철학에서 1세기 철학자로 추정되는 롱기누스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18세기에 칸트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연구됐다. 실용성과는 동떨어진 미적 체험을 가리키는 이 표현은 ‘우리 밖의 세계에 대한 경외감’이란 말로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우주의 신비가 느껴질 때,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바로 숭고함이다. 지난달 29일 르비우 국립오페라극장에서의 발레 공연에서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극장 밖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현실이 범접할 수 없는 세계를 이들이 만들어 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극장 감독과 무용수, 그리고 관객들이 만들어 낸 숭고함의 세계는 러시아군의 미사일과 포탄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다. 아울러 그 규모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부(富)를 쌓아 놓고 있다는 푸틴의 재산으로도 결코 살 수 없다. 
 
세계 1위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푸틴은 아마 나보다 훨씬 부자일 것”이라며 푸틴의 은닉 재산을 조롱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다. 푸틴의 숨겨진 재산이 120조원을 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르비우 국립오페라극장 홈페이지에는 이달의 공연 목록이 게시돼 있다. 6일에는 우크라이나 작곡가인 보리스 리야토쉰스키의 교향곡3번, 7일 모차르트 갈라 콘서트, 13일 베르디의 리골레토 등 일정이 빼곡하다. 러시아가 무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려 하지만 숭고한 세계를 향한 그들의 정신은 결코 짓밟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정신에서 세계가 놀라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불굴의 의지가 샘솟는 것이다. 보고 있나? 푸틴!
  

 [박선옥 기자 / sobahk@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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