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지친 예술인을 응원하며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기자수첩

[데일리 Talk]-어느 예술감독의 한숨

코로나19에 지친 예술인을 응원하며

김경미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5-31 00:02:30

"마지막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더군."

연극과 뮤지컬 제작·연출로 대중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A감독. 2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가운 기색도 잠시, 그는 이내 소주잔을 던지듯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계가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A감독 얘기를 들어 보니 충격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맨 정신으로는 살지 못하겠더라고... 코로나가 닥쳐오면서 공연장은 텅 비게 됐고 결국 파산까지 했으니. 동료 제작자나 후배 녀석 몇몇은 삶을 포기하고 운명을 달리하더군. 나도 회사 망하고 이혼까지 하니 정말 다 내려놓고 뛰어내리고 싶더라. 다들 어려운 걸 알기 때문에 어디 손을 벌릴 데도 전혀 없었으니…, 눈 앞이 진짜로 캄캄하더라니까.”

코로나19 대유행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연극계 전반을 뒤흔들었을뿐 아니라 아직도 그 여파가 가시지 않고 꿈틀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2019년 이전 A감독은 화려한 인생을 살았다. 뮤지컬을 잘 모르는 대중도 들어 봤을 법한 여러 작품을 제작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인품도 좋아 따르는 사람도 무척 많았다.

A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듯 말을 이었다. “아깝지. 빛났던 친구가 밤 하늘 별이 됐어. 그 친구를 시작으로 줄줄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제작자들이 늘어났어. 회사는 공중 분해되고 함께 일하던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지. 오랜만에 만나서 무거운 이야기만 꺼내서 미안하네만….”

코로나19 대유행이 문화산업을 꽁꽁 얼어붙게 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생채기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깊었다. 대학로에 밀집돼 있는 공연장 10군데 중 4곳이 문을 닫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무대도 쓸쓸하기만 하다. A감독에 따르면 공연계에는 놀랄 만큼 일찌감치 찬바람이 돌았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조치가 시작됐을 그 무렵부터 크고 작은 제작사들이 잇달아 파산하는 등 줄도산이 현실화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해 과거에 A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후배 김모 씨가 자연스레 합석을 하게 됐다. 김 씨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으나 다행히도 A감독 추천으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다소 수그러들고 있는 현상황에 대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아직 마스크는 쓰고 있지만 다행히도 공연계가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며 “거리두기 완화로 전시와 무대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고 다소 들뜬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인지 A감독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A감독은 “조심스러워. 가을에 다시 대유행이 올 가능성이 크다는 외신 기사를 봤는데, 마음이 무너지더라. 다시 그 상황과 마주하게 되면 그땐 도망갈 힘도 없이 주저앉을 것 같아”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직도 코로나 망령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듯한 A감독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

그동한 굵직한 작품들을 주로 연출했던 A감독은 코로나19 사태를 겪기 전만 해도 호탕하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2년여 동안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사태는 활력 넘치던 거물 연출가의 자신감을 훔쳐가 버렸다.

코로나로 인한 공연계의 타격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그간 우리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심한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앞선다.

우선 A감독이 우려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다시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울러 거리두기도 더욱 완화돼 마스크 없는 세상이 다시 오기를 기원해 본다. 무엇보다 문화계 예술인들의 아픈 마음과 상처를 새 정부가 잘 헤아려 주고 보듬어 주기를 기대한다.

김경미 km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