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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의 여파로 국내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금리가 급등하자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가격이 급락한 영향을 받았다. 이로 인해 건전성을 가늠하는 지급여력(RBC) 비율도 동반 하락했다. 보험사들은 자본확충을 위해 유상증자·후순위채 발행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RBC 비율은 보험사가 비상시 계약자에게 지급할 돈을 마련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수치가 높아야 건전성이 양호하다는 뜻이다. ‘보험업법’에 따라 100%를 넘겨야 하며, 금융당국은 150% 이상을 권고한다. 100% 미만으로 떨어지면 금융당국이 경영개선 권고를 내린다.
작년 말 150% 하회 1곳… 1분기 6곳 급증
올 1분기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RBC 비율이 지난 분기와 비교해 대부분 하락했다.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50% 아래로 떨어진 보험사도 속출했다. 보험사 운용자산에서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생명보험사가 58.7%, 손해보험사가 45.7%였다. RBC 비율을 공시한 15개 생명보험사의 3월 말 기준 평균 RBC 비율은 179.7%로 3개월 전 222.3%보다 42.6%p 떨어졌다.
각 사가 발표한 1분기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MG손해보험의 RBC 비율은 69.3%로 지난해 말 88.3%보다 19%p나 하락했다. DGB생명의 1분기 RBC 비율은 84.5%까지 떨어졌다. 이는 전년 말 223.6% 대비 139.1%p 급락한 수준이다.
NH농협생명은 RBC 비율이 지난해 말 210.5%에서 올 1분기 131.5%로 79%p 떨어졌다고 공시했다. 한화손해보험 역시 RBC 비율 122.8%로 전 분기 대비 54.1%p 하락했다. DB생명(139.14%), 흥국화재(146.65%) 등도 권고치 150%를 하회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RBC 비율 150% 미만을 기록한 보험사는 MG손해보험이 유일했다.
금융당국 권고치를 넘은 보험사들도 RBC 비율 하락으로 건전성 위기를 겪고 있다. 하나생명은 지난해 말 200.4%에서 171.1%로, KB손해보험은 179.4%에서 162.3%로, 한화생명은 184.6%에서 161%로 150%를 간신히 넘겼다. DB손해보험과 현대해상도 각각 188.7%, 190.7%로 전 분기보다 RBC 비율이 내려갔다.
신한라이프는 284.6%에서 255%로, 푸르덴셜생명은 342.4%에서 280.7%로 200%이상을 유지했지만 전 분기 대비 큰 폭으로 하락했다. 246%로 비교적 높은 RBC 비율을 기록한 삼성생명 역시 작년 4분기보다 59%p 추락했다.
이와 같은 보험사의 RBC 비율 감소 현상은 최근 시중 금리 급등으로 보유채권 평가액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통상 보험사는 보유채권을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으로 구분하는데 만기보유증권은 회계상 원가로 처리하지만 매도가능증권은 시가로 평가해 금리 변화에 따라 보유채권 평가액이 변동된다.
초저금리 기조였던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상황에서 일부 보험사는 기존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하는 방식으로 채권가격이 오른 만큼 자산 증가와 RBC 비율 상승 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무렵부터 채권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가격이 하락해 자산이 줄어들고 건전성이 떨어지는 직격탄을 맞았다. 재분류된 채권은 최소 3년간 재변경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 입장에서 자본확충이 건전성 비율을 높일 확실한 방법인 셈이다.
NH농협생명의 경우 2020년 3분기 34조원 규모 보유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해 193.5%였던 RBC 비율을 314.5%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이 비율은 지난해말 다시 210.5%까지 떨어졌고 올 1분기 131.5%로 금융당국 권고치를 밑돌았다.
이에 보험사들은 그간 유상증자, 후순위채 발행 등으로 자본 확충을 서둘러 왔다. 올해 들어 NH농협생명은 유상증자 6000억원, 후순위채권 발행 8300억원 등으로 1조원이 넘는 자본을 끌어 모았다. DB생명, 흥국생명, 메리츠화재 등은 각각 950억원, 200억원, 700억원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고 한화손해보험 역시 25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KB손해보험은 서울 합정빌딩 등 5개 부동산을 매각해 5000여억원을 확보했으며, 한화생명은 사옥매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내년부터 새로운 보험 건전성 제도(K-ICS)가 도입되면 보험부채가 기존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되므로 금리가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이 엄격한 규제 적용보다 ‘K-ICS 조기도입’ ‘RBC 비율 하락 시 건전성 개선 조치 유예’ 등을 건의했다.
금융당국, 건전성 규제 완화… 자본확충 유도
이번 개선안을 적용하면 금리 상승에 따른 실질 보험부채 감소분이 가용자본 증가에 반영돼 RBC 비율 하락을 완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금융위는 내다봤다.
현재 RBC 제도에서 부채는 원가로, 자산은 시가로 평가되므로 통상 금리 상승 시 채권의 평가손실이 가용자본 감소로 이어진다. RBC 완충방안은 이달 20일까지 규정변경 예고 후 금융위 의결을 거쳐 6월 말 기준 RBC 비율 산출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자본여력이 낮은 보험사에게 유상증자 등 자본확충을 유도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향후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단기 환헤지 비중이 높은 보험사가 비용 증가로 손익이 악화되는 상황이 예상되는 만큼 보험사들이 위험성에 충분히 대응하는지 밀착 관리·감독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번 규제 완화조치가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개선 노력 없이 문제를 봉합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RBC가 급락한 일부 보험사의 경우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RBC 하락은 ‘자산 시가평가, 부채 원가평가’라는 회계처리상 차이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며 “현재로선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취약해진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보험사들이 금리변동에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자기자본 확충 등 자본구조 충실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향후 유상증자 등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금융당국의 RBC 하락 대응방안 조치에 대해 “최근 RBC 하락은 금리상승에 따라 보험업권 전반에 나타난 현상으로서 시장안정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었다”면서 “보험사들도 적극적으로 자본확충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보험사의 만기보유증권과 매도가능증권 분류에 대해 “경영자의 보유목적 등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며 “채권, 주식 등 보험사가 가진 투자자산의 합리적 포트폴리오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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