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병기창’과 ‘K-방산’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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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방산무기 폴란드 수출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7-27 00:02:40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경제 대공황의 수렁에 빠져 있던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으로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4선에 성공한 대통령답게 그는 여러 차례 역사에 남을 만한 명연설을 했다. 1941년 12월7일, 소위 일본제국이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 진주만에 주둔 중인 미 태평양함대를 기습 공격하자 그가 다음 날 의회에 나가 발표한 ‘치욕의 날’ 연설이 대표적이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공황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을 향해 정부정책을 믿고 지지할 수 있도록 라디오를 통해 조근조근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대화하듯 풀어냈다. ‘노변담화(爐邊談話)’로 알려진 이 프로그램은 그의 첫 대통령 임기 시작 직후인 1933년 3월12일부터 1944년 6월12일까지 총 30회에 걸쳐 방송 전파를 탔다.

그의 노변담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발언은 1940년 12월29일 탄생했다. 루즈벨트는 이날 방송을 통해 세계 정복을 꿈꾸는 나치 독일에 맞서는 영국을 돕기 위해 미국이 ‘민주주의의 병기창’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당시 프랑스마저 불과 6주 만에 항복해 홀로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던 영국도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이에 루즈벨트는 영국을 돕기 위한 ‘무기대여법’을 제정해 국고가 고갈된 영국이 계속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를 미국이 대여 또는 양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루즈벨트의 전략이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최근 우리 방산업계에 낭보가 잇따르고 있다.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이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K2 흑표전차 180대와 FA-50 검독수리 전투기 48대, K-9자주포 구매 계획을 밝히면서 국내 방산업계에 아연 활기가 넘쳐나고 있다.

현대로템의 K2 전차가 3조원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은 3조4000억원 규모, 한화디펜스의 K-9자주포 600여문이 4조원대로 알려져 최소한 1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K2 전차 추가계약이 더해질 경우 20조원대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한민국 방위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신기록이 눈앞에 온 셈이다.

여기에 올해 말로 예정된 노르웨이 차기 전차사업에서 K2 전차가, 호주의 차기 장갑차 프로젝트에서 한화의 AS21 레드백이 유력하다는 전망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말레이시아와 콜롬비아의 경공격기 도입 사업 등에서도 FA50의 선전이 기대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영국·캐나다 등 16개국에서 파병을 받으며 도움받던 세계 최빈국에서 70년 만에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에 방산 물자를 수출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은 반전의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업계에선 세계 10위권인 우리나라의 방산 수출 규모가 앞으로 5년 내 3위권으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FA-50 수출을 두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전투기 구매를 타진하고 있는 나라들이 개량형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리 측의 움직임이 미온적이라는 것이 이유다. 실제로 항공업계에서는 우리 군이 FA-50 업그레이드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불만 섞인 지적이 새 나오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넘어 주변국과의 군사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F-35A나 KF21 보라매 같은 5세대 내지 4.5세대 전투기들의 수량을 한정된 예산에서 최대한 늘리려고 하는 국방부와 공군, 방위사업청 나름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는 간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첨단 무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무기의 가동률이다.

2018년 실시된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군은 FA-50의 가동률이 90%에 육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가동률은 80% 초반대인 KF-16이나 70% 후반대인 F-15K과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생산공장이 국내에 있어 정비와 유지보수가 용이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성능개량 시기를 놓치면 비용이 효과보다 더 커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개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라인 유지가 산업을 지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다. 올해 초 아랍에미리트(UAE)에 4조원대 지대공 미사일 천궁Ⅱ를, 필리핀에는 군함을 추가로 수출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반전의 대가인 루스벨트대통령을 떠올리며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우뚝 서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