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격식이 아닌 지식으로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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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룡의 와인이야기

와인, 격식이 아닌 지식으로 마시자

고유의 맛과 향 느끼려면 오랜 시간 다양하게 접해 봐야
색깔·향·맛의 3박자를 천천히 느끼면서 마시는 것이 좋아
오래 경험할수록 깊은 여운을 주는 클래식 음악과도 같아

어승룡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1 09:40:52

와인을 처음 대하는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와인의 떫은 탄닌 성분의 맛이다. 와인 초보들은 포도의 달콤한 맛을 기대하고 와인을 마시는데 대부분 떨떠름한 와인의 탄닌 맛에 실망감을 표시한다. 그래서 처음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겐 너무 드라이한 와인보다는 약간의 단맛이 있는 와인을 권하는 게 좋다.

와인을 처음으로 접하는 분들은 1만원에 판매하는 와인이나 10만원에 판매하는 와인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와인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오랜 시간 와인을 마셔 봐야 한다. 그래서 초보일수록 너무 비싼 와인보다는 자신의 생활 규모에 맞는 저렴한 와인을 다양하게 마시는게 중요하다.

와인을 마실 때 너무 격식을 차리며 마실 필요는 없다. 와인은 식사와 함께 마시는 술이므로 감별하듯 평가하며 마실 필요는 없다. 물론 직업이 소물리에나 감별사인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와인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레드와인의 경우 입구가 넓은 와인잔을 사용하는 게 좋다. 와인의 향기를 코로 충분히 자연스럽게 들이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의 묘미 중 하나는 와인을 마시면서 느껴지는 다양한 향기다. 숙성되면서 느껴지는 다양한 과일향과 오크통에서 숙성되면서 묻어 나오는 다양한 향들이 와인의 향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와인의 색깔을 본다. 와인의 색깔이 보랏빛이 나는 붉은 색이라면 마실 때 기분도 좋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브라운색에 가까운 붉은 빛을 띄면 보기에도 좀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는 옅은 붉은색(물은 탄 듯한)도 좋은 와인의 색깔은 아니다. 색깔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하얀 백지를 식탁 위에 깔고 그 위에 와인잔을 비스듬히 눕혀서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혀로 느끼는 맛이다. 보통 와인의 맛은 첫 느낌, 그리고 마신 후의 느낌으로 평가한다. 마신 후에 더 좋은 느낌을 주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다. 물론 이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몆 년 동안 와인을 마셔야만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듯 와인을 음미할 때는 색깔·향·맛의 3박자를 조심스럽게 느끼면서 마시면 좋다. 고급와인일수록 이 3가지 느낌을 깊이 음미하면서 마시면 되고, 저렴한 테이블 와인(Table Wine)을 마실 때는 그냥 즐겁고 편하게 마시면 된다.

혹자는 말하길 와인은 클래식 음악과 같다고 한다. 처음 클래식 음악을 대할 때 지루함이나 거북함을 느끼지만 계속해서 듣다 보면 클래식처럼 실증이 잘 안 나고 깊은 여운을 주는 음악도 없다. 와인도 클래식 음악과 같다고 보면 된다.

한 번 마신다고 금방 와인과 친해지지 않는다. 클래식도 같은 곡을 여러 번 들어 보고 작곡가와 곡을 만들게 된 배경 등을 알아 두면, 그 곡의 느낌을 이해하게 되고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있듯이, 와인도 고급와인일수록 그 재배지와 포도품종, 빈티지(Vintage, 수확년도) 등에 관한 지식을 습득해 두면 맛을 느끼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같은 와인이라도 빈티지에 따라 맛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게 와인이다.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실 때는 이미 화이트와인은 차게, 레드와인은 그 온도에 맞게 맞춰 나오기 때문에 와인의 음용온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마트에서 구입해 집에서 마실 경우에는 온도를 레드와인은 18℃~21℃ 정도로 맞추고 화이트와인은 11℃~15℃, 스위트 화이트와인은 7℃~11℃, 스파클링 와인은 3℃~5℃ 정도로 차게 해서 마시는 게 좋다.

여름에 와인을 보관할 때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와인은 20℃가 넘으면 급격히 숙성이 빨라지기 때문에 오랜 기간 상온에서 보관하면 와인이 식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와인을 보관하는 이상적인 온도는 12℃~14℃로, 온도가 낮을수록 숙성 속도가 늦고 높을수록 숙성이 빨라진다.

화이트와인은 해물요리·생선 요리·가벼운 스낵과 먹으면 좋고, 육류와 일반 요리에는 레드 와인을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이것도 자신의 취향대로 마시면 된다. 어디까지나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의 공통된 입맛의 통계이므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와인을 즐겨 마시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에 맞는 와인을 골라서 마시게 된다. 와인의 선택은 매우 주관적인 입맛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므로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좋아하는 ‘요리에 매칭’(페어링)해서 마시면 된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와인을 마실 때의 매너는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좋은 와인이나 음식이 나왔을 때는 그 맛과 향을 감상하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훨씬 더 고상한 느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만 되면 사교수단으로서 와인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와인은 격식으로 마시는 술이 아니고 지식으로 마시는 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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