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망쳐 놓는 학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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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망쳐 놓는 학벌주의

대학 간판 하나로 떵떵거리며 사는 한국인 자화상
지적 수준 저하와 글로벌 경쟁력 떨어뜨리는 원인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04 09:38:3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2022 한국경제 보고서’ 중에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학벌주의와 고령화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의 학벌 지상주의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고질적인 한국병으로, 개선되기는커녕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도의 압축성장 시절에는 학력 지상주의가 경제의 견인차 구실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고 있는 마당에 학벌이 신분과 출세의 잣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 추가적인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족쇄가 되고 있다. 사회 갈등의 원인을 제공함과 동시에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부패와 범죄의 근본적 원인이 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뿐이다.

흔히 한국의 문맹률은 1%로, 교육 수준이 세계 1위라고 거침없이 으스댄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은 수도 없이 많다. 수박 겉핥기식의 단편적 혹은 보편적 지식으로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100세 시대를 산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물며 달달 외워서 시험 한 번 잘 치면 일생이 보장되는 이런 불합리한 구조가 우리 사회의 통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위해 열공하는 수험생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관습은 지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만 잘 났지, 누구도 우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에 주재하거나 유학을 온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과연 한국을 정상적인 나라로 여길 것인가 의문이 들 정도다.

가장 서글픈 것은 패자부활전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일정 기간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면 일생을 짜인 장기판에서 희망 없이 살아야 한다. 이로 인해 공동체의 기반이 약화되고, 사회적 자산의 손실로 이어져 갈수록 경제나 사회가 불안해진다.

반면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나 아시아의 일부 경쟁국들은 생애 주기별 평생교육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위치를 재조정해 나가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이다.

이를 통해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하고, 대기만성의 성공을 실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능력주의보다 다양성을 중시하고, 능력은 특정 시점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축적되는 것임을 개념으로 삼는다. 혁신을 이루고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상호 작용토록 하고, 끊임없는 경쟁을 유도한다.

과장되게 포장된 학벌을 가진 자일수록 불완전한 지식이나 어설픈 매너로 인해 잦은 실수를 하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특히 글로벌 무대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자주 연출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은 국내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봐도 충분히 간파된다. 대학 순위 세계 50위권 내에 드는 한국 대학은 하나도 없고, 100위권 내에 간신히 두 개가 들어가 있다. 명문이라고 떵떵거리는 명문 사립대학들은 100위권 혹은 200위권에 보인다.

50위권 내에 8개 대학이 들어 있는 중국·일본·싱가포르·홍콩의 대학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친다. 인재로 먹고산다는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기에 낯부끄럽고 창피하다. 자업자득이고 우리만 잘 모르는 냉정한 현주소다.

문맹률 1%라지만 AI 후진국 현실, 우물 안 개구리의 암울한 미래

그래도 IT 강국이라고 큰소리를 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는 데도 흘러간 레퍼토리에 연연하는 꼴이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한국이 AI 문맹국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겠나. 미국이나 유럽에는 물론이고 심지어 중국 등 아시아 주요 경쟁국에도 크게 뒤진다. 인공지능의 개념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인구가 70%고, 나머지 30%는 인지가 거의 없다.

초등학교부터 코딩 프로그램에 AI 전문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즐비한데 우리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뒤늦게 교육을 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경쟁국의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열악하다. 자원도 부족하고 시장도 협소한 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재의 육성이 절실한데도 지난 수십 년간 우리 교육 정책은 글로벌 트렌드를 비껴 가는 역주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참에 미국이 외교의 근간으로 ‘테크 외교(Tech Diplomacy)’를 들고나왔다. 첨단 과학과 기술, 정보의 창출과 이용, 이와 관련된 산업을 외교의 중심에 두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해외 과학자·기술전문가를 대거 미국으로 불러들일 계획이다. 디지털 전환을 통한 제조 혁신이 공급망 패권 전쟁의 핵심 화두다. 누가 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인가를 두고 숨 가쁜 레이스가 진행 중이다.

인재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다 보니 인재나 전문 인력 부족에 직면하면서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질 지경이다. 결국 기업과 인재는 더 좋은 환경과 장래가 밝은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허울뿐인 학력이나 학벌주의를 타파하고 역량 중심의 실사구시적 인재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들이 차지할 자리가 많아지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국가가 제대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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