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과 금융권 수장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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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관치금융’ 개입 자제해야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14 00:02:40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저서 ‘국부론’에 실려 있는 이 말은 흔히 시장경제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개인 각자가 이익을 추구하지만 ‘시장의 조절작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원리 덕분에 경제는 원활하게 운영되며 결과적으로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살던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으로 중상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중상주의는 한 국가의 부는 보유하는 금과 은의 양에 달려 있다고 보는 이론으로, 당시엔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 국가가 직접 경제를 통제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애덤 스미스는 중상주의 정책을 비판하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이후 대공황을 거치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으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가 각광을 받으면서 정부의 ‘보이는 손’의 작용도 중요해졌다. 그럼에도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뒷받침하는 사상적 근거로 이용됐다. 하지만 그가 시장체제에 대한 가장 큰 도전으로 ‘독점’을 지목하며 ‘도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이기심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금융권을 중심으로 인사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최근 3연임이 확실시 되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갑작스레 사임 의사를 밝히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면서부터다. 진 행장의 차기 회장 내정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어차피 될 사람이 시간을 앞당겨서 됐을 뿐”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실제로 진 회장 내정자는 은행장 재임 기간 동안 실적과 조직 장악력, 주주들과의 관계, 인화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줬다.

될 사람이 됐다고는 해도 조 회장의 사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와의 교감설 등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동안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의 거취를 두고 금융권 안팎에서 이런 저런 ‘설’들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회장 교체가 이뤄지며 다른 금융지주들마저 술렁이는 분위기다. 특히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최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8.22%), 2대주주는 세계적인 사모펀드인 블랙락(5.67%)이지만 실제로는 신한은행 설립에 참여한 재일동포 주주들이 약 15%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외부의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져 충격은 더 컸다.

이어 12일에는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내정됐다. 이 또한 손병환 현 회장이 1년 더 연임할 것이란 업계 관측이 보기 좋게 뒤집힌 것이다.

이제 금융권의 시선은 우리금융지주로 향하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9일 ‘라임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회장에게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되는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내린 바 있다.

손 회장이 2심까지 승소한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대법원 확정판결이 15일로 예정된 상황에서 이뤄진 금융당국의 징계에 금융권 일각에선 손 회장을 밀어내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금융권 안팎에선 손 회장의 후임으로 이른바 ‘모피아(재무부+마피아)’ 출신이나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 공적자금 투입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를 이루면서 최대 주주가 예금보험공사에서 우리사주조합으로 바뀌었고, 국민연금이 2대주주가 됐다. 이러한 우리금융의 CEO 선임에 이른바 ‘관치’가 작용한다면, 자칫 윤석열정부의 국정 원칙인 ‘자유’나 ‘법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다.

애덤 스미스가 비판한 ‘보이는 손’은 당시 왕실과 결탁했던 중상주의자로 대표되는 특정 이익집단의 독점이었다. 대공황과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금융시장에서 무작정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적을 내고 그에 걸맞는 평가를 받는 CEO의 거취 문제에 ‘보이는 손’이 ‘보이지 않는 손’마냥 작용할 것은 아니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