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한 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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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뷰] - 2022년의 화두 '나이 한 살'

나이 한 살의 차이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16 00:02:40

이제 보름만 지나면 온 국민의 나이가 한 살씩 더 늘어난다. 대한민국만큼 나이에 민감한 나라도 사실 드물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이름 못지않게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나이다. 상대방과의 호칭과 서열을 정리해야만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조금 친해지고 나서부턴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고, 반대로 한 살이라도 적으면 이름 뒤에 ‘씨’를 붙이거나 아예 생략한다. 대놓고 나이를 묻기가 껄끄러우면 ‘몇 학년 몇 반’이냐고 에둘러 묻기도 한다. 대학 신입생들은 빠른 나이·만 나이·민증(주민등록증) 나이 등이 서로 달라 호칭을 놓고 교통정리 하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친구를 사귈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되기 위해선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하는 게 자신과 ‘동갑’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살이라도 더 많거나 적으면 일단 자격 미달이다. 상대방의 성품이 훌륭하거나 배울 점이 많고 자신과 마음이 잘 맞더라도 이런 요건들은 순위에서 나이만큼 중요치는 않다. 논어 계씨편에 보면 공자는 ‘익자삼우(益者三友)’를 말하며 정직한 사람·성실한 사람·견문이 넓은 사람을 친구로 사귀면 유익하다고 했다. 친구가 되기 위해 나이가 동갑이어야 한다는 말은 공자 말씀 어디에도 없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나이를 따지고 서열을 정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웃어른을 공경하는 유교문화가 강했지만 ‘상팔하팔’문화 또한 공존했다. 위나 아래로 여덟 살까지는 마음이 맞고 뜻이 통하면 자유롭게 서로 말을 놓고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1556년생)과 이덕형(1561년생)은 다섯 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오랫동안 돈독한 우정을 나눠 이들에 대한 수많은 일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평생 라이벌 관계이자 친구였던 정몽주(1337년생)와 정도전(1342년생)도 다섯 살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고려 말 학자인 이색 밑에서 함께 공부한 벗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런 교제 문화는 변질돼 나이나 군번·학번으로 위아래를 가르는 계급문화가 대신 자리를 잡게 됐다.

2022년 한 해를 마감하며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키워드를 꼽는다면 ‘나이 한 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나이 한 살 때문에 사회적 갈등도 컸고 이해당사자 간 논쟁 또한 많았다. 단적인 예가 ‘촉법소년 기준연령 하향’ 문제였다. 법무부는 지난달 형사처벌이 면제되는 형사 미성년자 기준을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한 살 낮추는 내용의 형법·소년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흉포화되고 있는 소년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소년 강력범죄에 엄정하게 대응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야권 국회의원들과 민변·전교조·촛불단체 등은 “정확한 통계와 정책적 숙고 없이 부정적 여론에 편승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7월에도 나이 한 살 때문에 사회 전체가 들썩거렸다. 교육부에서 난데없이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한 살 낮춰 학교에 일찍 가도록 하겠다고 발표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당시 박순애 교육부 장관은 지역이나 가정 여건으로 발생하는 출발선상의 교육격차를 조기에 국가가 책임지고 해소하겠다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취지는 좋았으나 사전 논의도 없었던 터라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았다. 교사와 학부모들이 거세게 항의했고 국책연구소 연구진들도 효과보다 비용이 클 것이라며 정책 추진 보류를 권했다. 결국 박순애 장관이 임명장을 받은 지 34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한국인 나이가 한 살씩 더 어려진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한국식 나이보다 보통 한 살 적은 만(滿) 나이를 사회적 나이로 통용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이달 초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르면 내년 6월부터는 사법과 행정 분야에서 국제 통용 기준인 ‘만 나이’로 사용이 통일된다. 그동안 외국인들 눈에는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게 한국식 나이인 ‘코리안 에이지(Korean age)’였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인만 태어나는 순간 한 살을 먹고 태어나니 그럴 만도 했다. 이런 나이 계산법은 모체의 태아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우리나라의 ‘생명 존중’ 정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나이 기준과는 달라서 이번에 법 개정까지 이르게 됐다. 아이들이야 나이가 늘지 않아 서운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대다수 국민은 공짜로 얻은 한 해를 사는 느낌일 것이다.

올해 달력이 걸려 있을 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해에 그랬던 것처럼 보름 후에는 다시 또 각자 나이에 한 살씩을 더하게 된다. 나이 한 살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친구가 될지 말지, 형사처벌을 받을지 말지, 또 초등학교 입학을 할지 말지를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한 차이가 있다.

다 같이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지만 소년에겐 삶이 한 살 늘어나고 노인에겐 삶이 한 살 줄어드는 순간이라고 한다. 각자의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겠지만 올해보단 내년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우린 삶을 이어 나간다. 우리 사회와 경제도 올해보다는 한 살이 늘어나는 내년에 더 성숙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김준구 산업경제부장·부국장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