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벼락 스타’ 블록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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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렛슨 프로 메이저 대회 ‘깜놀’ 활약
인생에서 두 번 운 것은 모두 골프 열정 때문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6-21 06:31:20

1996년 8월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틴컵(Tin Cup)’은 미국 텍사스주 시골 골프클럽의 렛슨 프로인 로이 맥보이(케빈 코스트너 분)가 자신에게 렛슨을 받으러 온 정신과 여의사 몰리 그리스올드(르네 루소 분)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정석 플레이’를 기피해 프로 테스트에서 탈락한 맥보이는 몰리의 사랑을 얻고 사랑에 대한 도전으로 우여곡절 끝에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 출전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남자 주인공으로, 패션모델 출신 배우 르네 루소가 여주인공으로 나와 골프 영화로는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지난달 미국 CNN의 아침 프로그램에 화상 출연한 40대 미국 골퍼가 “틴컵의 주인공과 비슷한 것 같다”는 진행자의 이야기를 듣고 활짝 웃었다. 그는 5월22일 끝난 남자골프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총상금 1750만 달러· 약 227억5000만 원)에서 공동 15위에 올라 우승자 브룩스 켑카(미국) 못지않은 스포트 라이트를 받았던 마이클 블록(미국)이다.

45세의 블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시골 마을인 미션비에호의 아로요 트라부코 골프클럽의 헤드 프로다. 투어 출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프로라고 해서 다 똑같은 프로는 아니다. 투어에 나가 상금을 획득하는 투어 프로가 있는가 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렛슨을 해 주며 생활하는 렛슨 프로가 있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투어 프로는 일정 순위의 상금 랭킹에 따라 매년 정해지며 자칫 2·3부 투어로 추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출전 선수 156명 중 20명 몫을 미국 내 클럽 프로에게 배분하는 PGA 챔피언십의 독특한 제도 덕분에 블록은 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투어 프로와 클럽 렛슨 프로와는 격이 다를 뿐 아니라 그 실력도 천양지차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블록이 PGA 챔피언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투어에 출전한 적이 없기 때문에 참가하는 데 의의를 뒀지만 결과는 ‘깜짝 놀람’이었다.

블록이 예선을 통과해 3라운드에서는 저스틴 로즈와, 4라운드에서는 로리 매킬로이와 경기를 했다는 그 자체가 꿈 같은 일이다. TV 중계로만 얼굴을 볼 수 있는 대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 마이클 블록이 지난달 22일 PGA챔피언십 시상식에서 최우수 클럽 프로에게 주는 트로피를 받은 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블록은 어렵기로 소문난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오크힐 컨트리클럽에서 1·2라운드 연속으로 이븐파 70타를 치며 공동 10위로 컷을 통과해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3라운드에서도 이븐파를 적어 내며 공동 8위로 올라선 블록은 최종 4라운드에선 PGA투어 23승(메이저 4승)을 거둔 세계 랭킹 3위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함께 경기했고, 매킬로이가 보는 앞에서 홀인원까지 만들어 냈다.

블록이 홀인원을 하던 순간 캘리포니아주 미션비에호의 아로요 트라부코 골프클럽에 모여 블록을 응원하던 클럽 회원들과 마을 주민들이 환호하는 동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타고 퍼져 나가 그는 순식간에 전국구 인사가 됐다. 블록은 이 대회 다섯 번째 출전 만에 처음 컷 통과를 하며 공동 15위에 올라 상금 28만8333달러(약 3억8000만 원)를 받았다.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돈이라고 벌어 봤자 시간당 150달러의 렛슨비가 고작이었던 그가 한 해 수입이 넘는 상금을 받게 된 것이다. 대박이 따로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블록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선수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4월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욘 람은 PGA챔피언십 공동 50위에 머물렀을 뿐이다. 공동 15위는 PGA 챔피언십 역사에서 클럽 프로가 거둔 성적 중 역대급이다. 1988년 제이 오버턴(미국)이 공동 17위에 오른 것이 최근 35년 동안 유일하게 클럽 프로가 20위 안에 든 기록이었다. 블록은 내년도 PGA 챔피언십 출전권도 확보했다.

하루 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그는 이어서 열린 PGA투어 찰스 슈와브와 RBC 캐나다 오픈에 초청받는 바람에 예약한 레슨을 모두 취소했을 정도다. 벼락스타가 된 블록이다. 세계랭킹에서도 PGA 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전 3580위에서 한 번에 3003계단을 뛰어오른 577위에 이름을 올렸다.

모두가 그렇듯 블록 또한 대회에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투어 프로를 꿈꾸고 골프 채를 잡았지만 실력 등이 여의치 않아 렛슨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골프에 대한 열정과 사랑 만큼은 누구 못지 않았다. 아이를 가졌을 때에도 울지 않았다. 인생에서 두 번 운 것은 모두 골프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도 블록이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과거에 흘린 눈물은 슬픔 탓인지 기쁨 때문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번 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를 끝낸 뒤 하염없이 쏟아 낸 눈물은 분명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었다. 블록이 내년에도 보다 향상된 실력으로 보다 강건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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