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내비게이션 시대 내 인생길은 어떻게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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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06 06:31:10

나는 내비게이션을 구입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지시를 아주 싫어하는 성질머리 때문이다. 옛날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는 제법 두꺼운 지도책을 뒷자리에 두고는 목적지까지 어떻게 갈까를 물었다. 지도책은 보수적인 물건이라 한번 경로를 잡아 두면 안정적으로 간다. 한동안 그렇게 다녔는데 여성의 예쁜 음성으로 길 안내를 해 주는 내비게이션이란 게 나왔다. 이 기계는 융통성이 좋아서 도로 사정이 달라지면 즉각 다른 길로 보내준다. 남자들이 쓰던 유행어에 ‘집에서나 밖에서나 여자 말만 잘 들으면 만사 오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운전하는데 누구 ‘잔소리’를 듣는 게 싫어서 ‘따로 돈 주고 그걸 꼭 사야 되냐’는 핑계로 거부했다. 그러다 보니 길을 헤맸다. ‘내비 안 달고 바보 되느니 내비 말 듣는 바보 되는 게 낫다’고 아들 녀석이 충고를 했지만 그래도 버텼다. 요즘 정말 한참 만에 차를 바꾸는 바람에 내비게이션이 딸려 왔다. 속도위반 구간도 알려 주고 혼자 길 가는 데 심심치 않아서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바보’가 되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내비게이션과 옥신각신한다. 문제는 내비게이션 안내의 ‘원칙’이다.

인공지능(AI)도 우리 인간처럼 신념이란 게 있어서 안내하려 했던 길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얼른 행보를 돌려 버린다. 그러다 보니 목적지가 코앞인데 동글동글 돌아서 간다. 처음에는 ‘그래도 편안한 길을 안내하겠지’하며 쫓아갔는데 가다 보면 그 길도 막힌다. 밀린다고 각종 내비게이션이 모두들 그쪽으로 인도하니 그럴 법도 하고, 갑자기 접촉 사고라도 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간단한 경로를 두고 익숙하지 않은 길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내 차를 발견한다. 그때 드는 생각은 ‘내가 참으로 한심하구나!’ 하는 후회와 자괴감이다. 그렇게 몇 번 당하다가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아는 길은 묻지 말자. 곧은길은 질러가자.’ 이런 신념으로 올곧게 가면 나의 내비게이션은 할 일이 많아진다. 운전자가 말을 도통 듣지 않아서다. 그래도 친절하고 인내심 많은 나의 내비게이션은 이렇게 일러 준다. ‘왼쪽 두 번째 차로입니다. 다른 차로로 진입하지 않도록 유의하세요~.’ 별난 운전자를 둔 덕분에 ‘그녀’는 바빠진다. 하지만 상냥함과 목적의식, 그리고 ‘차주를 목적지에 꼭 데려다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녹슬지 않는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셀 수 없는 갈림길 앞에서 인생은 혼란스럽다. 사람들은 인생길을 알려 주는 내비게이션을 찾아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별별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 그 내비게이션은 무속이거나 고등종교이기도, 점사이기도 했고 종교인과 철학자의 지혜이기도, 심지어 ‘입 속의 침’이기도 했다. ‘길을 가다가 헷갈리면 침을 튀겨 정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동전 던지기와도 비슷하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여러 종류의 내비게이션은 각자 고유의 지침과 원칙을 가지고 있으므로.

종교 내비게이션은 신의 뜻(그것도 종교마다 다 다르다)이고, 철학 내비게이션은 동양과 서양의 각종 철학 사조이다. 유물론부터 유심론, 경험론부터 관념론 등 워낙 인류의 철학 유산이 복잡하니 철학 사전은 시리즈가 아닌가. 요즘 핫한 심리학도 내비게이션 시장에서 인기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부모에게서 어떠한 양육을 받고 자랐는지, ‘원 가정’은 어떤지, 애니어그램 유형과 MBTI 유형은 무언지 등등 심리학 내비게이션은 뇌과학의 도움을 받아 신제품 출시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인생길을 잘 걷고 싶은 사람들은 결국 혼란 속에 주저앉는다. 돌이켜보니 십 년 전엔 친구와 선배의 조언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시원한 게 없었다. 이번에는 유튜브를 뒤져서 특정 분야 전문가를 찾아본다. 만나서 물었는데 애매모호한 답만 돌아온다. 빼어난 전문가들의 상담에는 내담자를 가슴 아프게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도 있어서 그렇다. 이솝 우화에는 무남독녀 소중한 쥐를 세상에서 최고 힘센 존재에게 시집보내려는 부모 쥐 이야기가 있다. 길고 긴 내비게이션 찾기 여정에서 부모 쥐가 마주한 결론은 바로 ‘쥐’였다.

그것을 알기 위해 온갖 고생하며 다녔던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속마음 털어놓고 의논하고 나면 마음이 가뿐해진다. 여기저기 다니며 별별 내비게이션에게 부탁하고 나면 명료해지는 것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운전 고수들은 내비게이션을 적적함을 달래는 데 활용한다는 걸 유의하자. 우리 자녀들에게 이걸 가르쳐야 한다. 마음의 내비게이션을 활용하는 법을 연습시켜야 한다. ‘모든 길 찾기의 해답은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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