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문을 연 국내 최초의 전쟁·군사 독립서점 ‘워랩(WAR LAB)은 ‘전쟁 메카’ 용산에 자리 잡았다. 육군사관학교 49기 장교 출신인 천종웅 워랩 대표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는 이곳은 군 관계 인사들에겐 보물창고처럼 여겨진다. 영국 헌책방에서 한 두 권씩 사 모은 고서들을 비롯해 한 평생 모아 온 희귀 서적이 총망라된 곳이다. 워랩은 독립서점을 넘어 ‘군의 땅’ 용산에서 진정한 전국의 밀덕들을 한 곳에 모으는 ‘메카’로 발돋움하는 날을 꿈꾼다.
천 대표는 ‘전쟁·군사 독립서점’을 열게 된 계기를 ‘영국 유학’에서 꼽았다. 킹스칼리지 런던에서 전쟁학을 전공한 후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래전 관련 연구소 방문연구원(Visting Fellow)을 역임하면서 자연스럽게 워랩 설립 동기를 얻었다. 영국에서 누구보다 군사와 전쟁사 전문 서점이 가득한 영국의 집단지성의 위상으로부터 강대국의 강력한 힘을 느꼈다. 그는 “영국은 군사·전쟁사 책만 전문으로 하는 서점도 있고 일반 서점에도 전쟁사와 군사 코너가 매우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며 “한국은 대형서점조차 군사 및 전쟁사 코너가 점점 줄어 없어지고 책도 구입할 수 없는 현실을 체감했다”고 했다. ‘용산 입지’에 대해 천 대표는 “대통령실·국방부·합동참모본부·전쟁기념관 뿐만 아니라 한·미 동맹을 상징하는 각종 시설물이 있는 용산은 군사·전쟁 전문 독립서점의 입지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고 소개했다.
실제 기자가 직접 찾은 서울의 핫 스팟인 용산 용리단길(한강대로 48길)에 자리잡은 ‘워랩’은 대한민국 ‘전쟁의 땅’ 용산의 한 귀퉁이를 굳건히 지키는 듯 목 좋은 자리에 있었다. 이색적이고 개성 가득한 카페가 삼삼오오 모인 용리단길 골목 사이사이를 관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워랩에 발걸음이 가닿았다.
‘전쟁 연구실’ 답게 서점이면서도 조그마한 개인 연구실로 꾸며진 아담한 공간은 단 천 대표의 손길이 직접 닿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다. 군사학을 전공하고 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천 대표의 지적 내공과 연륜 그리고 군사학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장소다. 벽은 천 대표가 직접 다녀온 유명 전쟁 유적지가 기록된 대형 지도가 전시됐다. 그가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각종 무기체계가 액자에 담겼다.
서재는 전쟁 관련 책들로 빼곡하다. 한 켠은 천 대표가 군사대국 영국의 헌 책방에서 ‘발굴’ 해 구매한 책들이 진열됐다. 현재는 국내 헌책방에서도 살 수 없을 군사전략 관련 희귀도서가 벽면 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는 “육사 생도 때부터 보유한 전쟁사 관련 서적과 런던 뒷골목 중고 서점에서 사들인 세계대전 관련 책들은 비매품이고 나의 애장품이라며 워랩에서 누구든 읽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쟁 관련 서적을 모으게 된 계기에 대해 천 대표는 “전쟁 자체는 매우 무서울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매우 매력적인 주제”라며 “전쟁은 인간이 마주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는 전환점”이라고 의의를 부여했다. 이어 “전쟁사와 군사서적을 통해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의 미래와 방향을 읽어내면서 전쟁·군사 서적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밝혔다.
전쟁 관련 신간들이 빼곡한 이곳은 국내에 출판된 전쟁·군사 관련 책을 빠짐없이 진열하려 한 주인장의 숨은 노력이 엿보였다. 구매할 때 천 대표의 책 소개와 함께 1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번 달과 다음 달 들어 올 신간 책을 소개한 천 대표는 신간 입고를 위해 출판계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운 모습이었다.
연성대학 군사학과 ·광운대학 국방AI로봇융합학과 겸임교수인 천 대표는 미래전 전문가로 거론된다. 그를 직접 만나면 군사 전문지식과 함께 책 소개와 지식 나눔도 누릴 수 있다. 천 대표는 “매장을 찾은 손님들이 전쟁·군사 관련 도서는 대형서점보다 많다는 평가를 하곤 한다”며 “육사와 해사 생도들이 짧은 방학기간에 연이틀 찾아온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계속해서 그는 “몇 시간씩 서점에 앉아서 책을 보고 서로 토론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AI와 미래전쟁과 관련된 책을 추천해주고 설명해주니 무척 흥미로워하더라”고 소회를 밝혔다.
전쟁과 군사전문 독립서점 주인으로서 한 권의 필독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망설임 없이 한 권의 책을 꺼내 든 천 대표. 바로 ‘전쟁과 반전쟁’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책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전쟁의 기술과 평화(반전쟁)의 기술 그리고 부와 패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기술은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사실을 일찍 깨달은 국가들이 영국과 미국과 같은 국가들”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전쟁(AI패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워랩은 ‘북토크’와 ‘전쟁영화 감상회’ ‘전적지 답사’ 등 전쟁을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화행사도 기획 및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미국 육사와 해사 필독서인 ‘초한전’의 한국어판 역사를 집필한 이정곤 작가의 ‘북토크’를 기획했고 이달 1일에는 인천상륙작전 지역을 답사하는 여행도 독자들과 함께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 전역에서 활약한 영국 육군 장교 활약상을 그린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상영회도 열었다. 천 대표는 “전쟁의 공간이며 산 역사이고 그 흐름이 있는 용산에 자리한 워랩에서 ‘전쟁·군사’를 진정으로 체험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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