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이 화두다. 선거에 이긴 자도 진 자도 모두 한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상황은 더 어둡다. 중동 전쟁 확산 분위기로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골이 더 깊어질 것 같은 예감마저 든다.
민생의 근간인 물가가 내리기는커녕 더 올라갈 것 같은 악재가 연발로 나타난다. 수입 물가에 더해 소비재 공급업자나 자영업자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릴 채비를 서두르면서 서민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다. 승리에 도취한 야권은 어김없이 추경 예산 편성 등 해묵은 해법을 들고 나왔다. 빚을 내 현금을 뿌리고 그 빚은 또 빚을 내 갚겠다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다. 고통받는 국민에게 사탕발림의 진통제가 과연 민생을 살릴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민생 파탄의 책임을 오롯이 여당에만 돌릴 수 있나. 지난 2년간 18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은 민생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여야가 모두 공범이고, 누가 누구에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래도 바가지는 여권이 모두 덮어썼다. 정부가 시행하겠다는 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거듭되며 어느 하나 진전된 것이 없다. 오히려 민생 경제에 역행하는 행위에 더 열을 올렸다. 이제 190석 이상의 의석을 얻었으니 정국의 주도권을 더 강하게 행사할 것이 분명하다. 자칫 더 많은 혼선과 국가 역주행이 생겨날 공산이 크다. 협치 한답시고 야당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서 후회할 날이 머지않아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눈을 돌려 밖을 보자. 경제가 잘 돌아가 민생이 회복되고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명암이 확연히 구분된다. 전자의 국가들은 돈 풀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골격은 친(親)기업·친(親)시장이다. 이를 통해 돈맥이 돌아가고 경제의 선순환이 유도된다. 반(反)기업·반(反)시장을 배격하면서 대전환의 시대에 맞추어 국익 창출에 매진한다.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자국 안방에서 둥지를 트고 날갯짓을 하도록 세제를 낮추고 보조금을 지원한다. 또한 시장이 충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면서 문턱을 낮춘다. 기업이나 시장을 얼어붙게 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중단하거나 줄여 준다. 민생 회복의 첫 단추를 기업과 시장에서 찾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국은 모처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국가로 모두가 부러워한다. 소프트랜딩(연착륙)이 아닌 노랜딩(무착륙) 시나리오까지 등장한다. 너무 달아오른 경제를 우려하여 금리인하 시기마저 늦춰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코로나19 이후 긴축 터널을 지나면서 미국 경제는 더 강해졌다. 완전 고용 수준에다 소비 활황이 좀처럼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성장률 전망치도 2.1%에서 2.7%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이민과 고용 유연성·AI 발전을 들고 있지만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미국 제조업의 뚜렷한 부활이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앞다투어 미국 내에 생산 거점을 만든다. 상대적으로 경쟁자인 중국이나 독일을 비롯한 유럽 경제가 죽을 쑤고 있는 반사이익을 미국이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눈여겨볼 국가는 인도다. 중국이 지는 해라면 인도는 분명히 뜨는 해다. 인도의 성장률이 중국의 배에 달하고 중국에서 탈출하는 기업들이 대부분 인도로 향하고 있다. 19일부터 한 달 반 가까이 치러지는 인도 총선에서 경제성장을 주도한 나렌드라 모디 정권의 3연임이 유력시된다. 야당이 정권 심판을 내세우고 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판세다. ‘잠자는 코끼리’ 인도가 깨어 나며 세계 5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고, 3위 등극도 결국 시간문제다. ‘메이드 인 인디아(Made in India)’로 중국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변신하면서 글로벌 제조기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또한 인도 내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국내·외 기업들에 생산과 연계된 인센티브(PLI·Product-Linked Incentive)를 제공, 제조업 강국으로 면모를 일신 중이다.
이웃 일본도 분위기가 바뀌면서 아직 완벽하진 않다 하더라도 회복의 불씨가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기업 이익이 늘어나면서 증시가 활기를 띠고 마지막 남은 과제인 소비도 되살아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에 따라 저축이 더는 미덕이 아니고 소비나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원인은 일본 정부가 지속해서 기업의 사기를 진작시키고자 한 데에 있다. 시중에 돈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제 순환의 시발점인 기업이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익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도 끝났고 정치권이 밥 먹듯이 내뱉는 민생이 도마 위에 올라갔다. 다시 퍼주기 공세로 일관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과 시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하도록 선제적 조처를 할 것인지 두고 보자. 다른 나라들이 하는 것의 절반만 하더라도 민생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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