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아이를 낳던 시절 ‘자연분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임산부의 미덕이고 임무였다. 다니던 병원에서 태아의 머리가 크니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해야겠다는 명의의 진단을 무시하고 나는 여론을 따랐다. 당시 여론은 ‘작게 낳아서 크게 키워라’였고 뱃속 아이를 크게 만든 건 전적으로 임산부의 실수이고 불명예였다. 그리고 ‘순산’은 사명이었다. 예정일을 20일이나 훌쩍 넘기고도 세상에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도분만을 잘한다는 의사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기어코 순산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그 분은 알아주셨고 끝을 알 수 없는 출산 유도가 시작되었다. 하루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나이 많은 산모는 지쳤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부탁했다. 하지만 자연분만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데 좀 더 해보자는 선생님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배는 아픈데 아이는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기약 없는 고통이 끝난 건 알고 보니 ‘추석’ 덕분이었다. 2박3일이 되던 날, 아이의 생명이 위험하니 응급으로 분만수술에 들어가겠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죽음의 경지를 드나들던 노산의 임산부는 대환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렇게도 세상을 ‘무서워하던’ 아이는 ‘강제로’ 엄마 밖으로 내쳐졌다. 추석 전날이었다. 아이와 임신모가 위험하기도 했지만 병원 또한 민족의 명절 추석 모드로 들어가야 하니 수술 결정이 내려졌다는 생각이 요즈음에 든다. 분만실을 나와 정신을 차리니 병원은 아주 조용했다. 나의 뱃속도 조용했다. 추석이 아이의 의지와 의사 선생님의 집념을 꺾고 나를 살려준 것이다!
추석명절 연휴는 자연스레 나의 휴식 기간이었고 회진 오신 선생님의 덕담 “아이가 뱃속에서 다 자라서 바로 백일잔치하면 되겠어요!”을 들으며 병원 문을 나섰다. 그때 그 순간의 충격은 잊혀 지지 않는다. 다른 세상에 내쳐진 지진과도 같은 놀람이었다. 분만 준비를 하고 병원에 들어설 때는 한여름 복장이었다. 퇴원할 때도 그렇게 입고 병원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 사이 세상이 개벽을 했다. 불과 며칠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때 본 하늘과 살갗을 스치는 대기의 느낌, 햇빛의 색깔은 30년이 지난 오늘도 잊혀 지지 않는다.
나는 갑자기 다른 세상에 내쳐졌다. 화(火)의 기운이 수(水) 기운에 제압되기 시작하고 대지가 겨울 준비를 마쳤음이 모든 세포로 느껴졌다. 요즘이 딱 그때다. 그렇게도 왕성하게 세상을 달구던 여름 기운은 조석으로 겨울 기운에 자리를 내어주는 중이고 잠시 후면 언제 더웠냐는 듯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자연이다. 그 안에서 열매가 익고 농부는 수확을 한다. 그 안에서 나무는 잎들과 이별할 채비를 한다.
자연은 그렇다 ‘저절로’ 그렇다. 동양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보면서 ‘저절로 그러한’ 자연(自然)을 느끼며 살았다. 그런 자연을 닮고 싶어 했다. 나무처럼 식물처럼 자연스런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불평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들처럼 무심하게 살면 삶이 가벼워질 것임을 알았다. 우리의 본성도 인간의 본성(nature)도 자연(nature)임을 일찍이 깨달았다. 우주가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 더위가 극한으로 가면 추위를 부를 것을 그들은 알았다.
자연은 담담하게 자기 할 일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속 시끄럽게 산다. 내가 제일 듣기 싫은 것이 일기예보다. ‘오늘의 날씨’가 뿌리는 멘트들은 온통 하늘 탓하기, 자연 욕하기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가물어서 힘들고 온도가 너무 떨어져서 감기환자가 많아지고 폭우가 문제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구상 생명체 중에 환경을 탓하고 욕하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미생물이든 간에 주어진 환경에 묵묵히 적응하면 살길을 찾는다. 인간만이 환경 탓 자연 탓을 한다.
그런 태도가 확장되면 세상 모든 것이 불만으로 가득해진다. 인간이란 종은 자연 환경 만으로 살지 않고 사회 환경 속에서도 살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제일 처음 만나는 사회인 가정부터 시작해서 학교·직장·국가 등등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바꾸고 싶다. 부모님·선생님·직장 상사·거래처 사람 등등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가 요 모냥 요 꼴인 것도 다 그들 탓이다. 물론 인간의 그러한 불만족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하지만 긍정과 개선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 불만과 불평은 자신의 삶만 갉아댈 뿐이다.
이번 추석에는 푸짐한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과 더불어 자연과 환경에도 감사함을 표하면 어떨까? 둘러앉은 가족과 친척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전하면 어떨까? 적시에 태어나서 삶의 큰 깨달음을 하나 보태준 덩치 큰 아들 녀석에게도 추석상을 생일상으로 차려주고 고맙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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