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5일 미국 대선 투표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 국내외 주류 매체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우세’ 내지 ‘박빙’을 전했지만 일부 뉴미디어(팟캐스트·유튜브 등)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승산을 내다보는 등 시각이 엇갈려 왔다. 최근 들어 비로소 트럼프에 적대적인 주류 언론마저 그의 우세를 언급하게 됐다.
그렇다고 결과를 장담하긴 이르다. 최종 선거인단수로 결정되는 독특한 대선 제도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비(非)백인 인구의 전반적 증가란 해리스 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으며 각 선거구의 흑백 인구 분포가 선거 승패의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미국과의 관계에 국가적 명운이 걸린 나라들은 해리스·트럼프 당선 모두에 대비해야만 한다.
미·중 대결이 상수라는 것은 두 후보 모두에게 해당된다. 다만 대결의 방식과 그것이 초래할 미국의 변화, 그에 따른 세계적 영향에 큰 차이가 예상된다. 이번 미 대선은 세계 제조업 분업구조 재편의 폭·깊이를 결정할 핵심 이벤트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처럼 수출용 제조업 중심인 경우 트럼프 당선에 더욱 철저한 대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해리스의 민주당 진영과 트럼프의 공화당 양 진영은 대중국 전략과 통상 정책 관련한 기본 철학에서 선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해리스 후보가 속한 바이든 행정부는 ‘가드레일’을 통한 중국과의 ‘경쟁 관리·충돌 방지’ 기조를 중시했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 제품과 기술의 대중국 수출 규제,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과학법을 활용한 자국 중심 공급망 질서 재편 등 방식으로 미래 패권 경쟁의 판도를 좌우할 ‘기술전쟁’에 주력했다고 평가된다.
‘동맹 중시’ 기조도 바이든정부와 전임 트럼프정부 사이의 차별점으로 흔히 거론돼 왔으나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가 곧 ‘동맹 경시’로 해석되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다. 트럼프는 ‘불필요한 전쟁 불개입’ ‘미국의 평범한 납세자들의 삶이 우선’을 일관되게 강조했을 뿐이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미국의 전쟁이 아니라고 주장해 온 것은 현지에 투자한 일부 글로벌리스트의 문제이지 대다수 미국 납세자들에게 절실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다. 오히려 중국 견제를 위해 어떤 결정적 역할을 얼마나 해낼 것인가에 따라 미국에게 더욱더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바이든이 대중국 견제망 성격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등으로 서방 세계 동맹을 규합해 ‘탈중국 경제 질서’ 구축에 힘쓴 것은 맞지만 트럼프의 대중국 견제도 결코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해리스 승리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땐 바이든정부의 통상 정책을 계승해 대중국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IRA·반도체과학법을 근간으로 한 첨단 전략산업 제조 기반 강화, 친환경 산업 육성 등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 차원의 정책을 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트럼프는 중국을 포함한 전반적 관세 인상을 통한 무역적자 해소, 친환경 정책 대폭 축소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로선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무역 적자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한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산에 6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나머지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도 10∼20%의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말해 왔다.
미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 명단에서 한국 순위가 오른 점을 우려스럽게 보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7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3년 역대 최대 대미 무역수지 흑자(444억 달러)를 냈다. 올해 1∼9월(399억 달러) 이미 연간 기준 최대 기록 경신이 유력해 보인다.
미국 정부 통계로도 한국은 미국의 주요 적자국이다. 2021년까지 미국의 14위 무역 적자국이었으나 꾸준히 순위가 올라 올해 1∼8월 기준 중국·멕시코·베트남·독일·아일랜드·대만·일본에 이어 8위에 랭크됐다. 24일 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대한국 무역 적자 규모는 중국·USMCA(멕시코·캐나다)·유럽연합 등에 비해 작은 수준이지만 최근 빠르게 증가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
한·미 FTA가 있지만 트럼프 2기 정부에서 이를 우회한 보편관세 적용을 시도할 상황 또한 염두에 둬야 한다. 아예 한·미 FTA 개정 내지 재협상을 요구해 올 가능성도 있다. 외교적 수완이 절실한 대목이다. 변화는 한·미 양자 간 마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재집권 시 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 동맹을 포함한 세계와 무차별적인 ‘무역전쟁’에 나선다면 세계 경제 질서는 요동치고 주요국의 자국 중심 통상 기조가 강화할수록 피아 구분이 모호해지며 ‘각자도생’의 험난한 정세를 피할 수 없다.
여러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트럼프가 주요 중국산 IT 품목에 고율 관세를 매겨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에 영향을 주면 중국 현지로 메모리 반도체·무선통신 부품·디스플레이 등 중간재를 대거 공급해 온 한국의 수출이 즉각 타격을 입는다. 토마스 헬빙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부국장이 2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 전망 회견 자리를 빌어 “(미·중) 무역 갈등의 증대가 (한국의) 주요 하방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서 “전기차 의무화 정책 종료”를 약속하는 등 전기차 지원 축소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머스크를 크게 곤경에 몰아넣을 상황을 급작스럽게 초래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미국 첨단 제조업 부활 방침에 부응해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우리나라 이차전지 업계에 큰 불확실성이 드리워진 것은 분명하다.
전기차 판매 보조금이 줄고, 이차전지 생산에 대한 세액공제까지 축소되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 이차전지 기업들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국내 배터리 업계가 불황에 접어들어 있고 각 기업의 미국 IRA에 따른 첨단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의존도가 커졌다. 이차전지 및 소재 업계에선 미국 사업 계획 재검토에 나서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