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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路 동서고금 <44> 딥스테이트
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14 06:30:41
최근 우리가 자주 접하게 된 어휘·개념 가운데 ‘딥 스테이트’(Deep State)라는 게 있다. 딥스테이트, 일명 ‘그림자 정부’는 선거를 통해 공적 위상을 가지게 된 인물이나 기관이 아니면서 실권을 행사하는 존재들로 임기나 여론의 평가에서 자유로운, 감춰진 세계에 속해 있다. 국내 주류 언론에선 여전히 음모론이자 금기어 취급을 하지만 ‘딥스’로 줄여 부를 만큼 딥스테이트는 친숙한 용어로 자리 잡았으며 학술계에서도 이미 통용되고 있다.  
 
딥스는 초법적· 초국가적 ‘엘리트 기득권 집단’, 탈냉전 이후 국경을 넘나들어 온 권력의 ‘비선(秘線) 및 네트워크’다. 현대 사회에서 이들은 거대 자본과 인맥을 동원해 공권력의 막후에서 세상을 조종하거나 공권력 자체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이제 첨단기술 보급에 따라 정보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민주화되면서 딥스의 존재가 보통 사람들에게 인지되기 시작했다. 
 
법치와 주권재민의 개념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날, 국가수반은 선거를 통해 위임된 권력을 행사할 뿐이지만 그 주변엔 지식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물들이 촘촘하게 편재해 있다. 
 
대통령 교체 등을 통해 권력 구도가 바뀌어도 기득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라면 딥스의 일부 내지 하수인인지 의심해 볼 만하다. 이른바 민주화된 세상,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한 나라, 나아가 시민의 주권 의식이 강한 나라일수록 권력 사유화는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따라서 딥스는 철저히 합법적이거나 혹은 합법을 가장한 형태로 권력 사유화를 진행한다.
 
대중민주주의를 이용해 표면적 권력자를 선택하고 날려 버리는 것 역시 딥스의 힘이다. 연예기획사가 아이돌을 발탁해 관리하듯 딥스도 재계·학계·언론계 역량을 총동원해 스타 정치인을 키운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면 선거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으며, 정년이 보장된 사법·행정 공무원이나 정무 고위직에 대해 힘을 휘두를 수도 있다. 
 
대통령과 유권자들 사이에서 입법·사법·행정의 공권력과 주류 미디어가 별도의 이익집단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한층 강력하게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 우리나라 탄핵 정국에선 최후 권위의 헌법재판소마저 딥스의 그림자를 느끼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식 석상에서 딥스테이트를 최초로 언급한 게 후보 시절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다. 그의 정치 입문 자체가 ‘딥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2016년 미 대선 때부터 트럼프는 일부 선출직·임명직 공무원을 포함한 세력이 특정 이념에 기반해 방대한 세금을 축내 온 시스템을 타파해야 할 당위성에 대해 외쳤다. 그것을 요약한 구호가 ‘워싱턴 늪의 물을 빼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이다. 
 
첫 임기 이래 백악관 복귀하기까지의 ‘트럼프 드라마’를 딥스와의 전쟁으로 설명하는 시각이 퍼지면서 한·미 보수 시민들의 공감대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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