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1년, 찰스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은 당시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인간의 진화가 성 선택, 즉 짝을 둘러싼 경쟁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학자들은 인간의 이성과 예술이 하찮은 '짝짓기'와 연결된다는 점, 특히 남성이 아니라 여성에게 짝의 선택권이 있다는 주장에 경악했다.
다윈은 생존에는 불리해도 이성을 유혹하는 데 유리한 조건들이 진화해 왔다고 했다. 공작의 꼬리, 사슴의 뿔, 새의 깃털을 예로 들어 성적 선택이 자연에서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보여주었다. 따라서 인간이 발달시킨 각종 문화적 요소들인 언어, 음악, 춤, 예술도 성 선택이 한몫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는 한 세기 동안 이 점을 외면해 왔다.
뉴멕시코 대학 교수인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연애: 생존기계가 아닌 연애기계로서의 인간’에서 이러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명쾌하게 설명했다. “인간이 이렇게 복잡하게 진화한 것은 생존 때문이 아니라, 성적 매력 때문이다.” 인류 진화의 대부분의 기간인 수렵 채집시대의 생존을 생각해 보자. 잡식성인 인류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사냥 기술과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왜 인간은 유머를 사용하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심각한 질문을 던지는가?
그것은 매력 때문이다. 유머, 창의성, 예술적 재능, 언어 능력은 ‘나는 건강하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라는 신호 장치이다. 유머를 보자. 그것은 예상을 뒤엎는 창의성, 사회적 맥락을 읽는 지능, 긴장을 완화하는 사회적 기술을 동시에 보여주는 고도의 신호다. 유머 감각 소유자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실용성이라곤 없어 보이는 예술은 어떨까?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개인은 자신이 생존에 얽매일 필요 없는 여유로운 존재임을 보여준다.
언어의 실용적 기능은 정보 전달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 이상의 복잡하고 정교한 어휘를 발달시켰다. 은유의 사용과 복잡한 이야기 만들기는 고도의 지능을 반증한다. 이 능력들은 짝에게 선택되는 데 유리하다. 그렇다면 장기적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도덕성과 이타성이다. 남에게 친절하고 공정한 사람은 짝과 후손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판은 장기 투자 가능성의 지표가 된다.
밀러의 이론은 인간 행동의 많은 모순을 설명해 준다. 왜 우리는 종종 비효율적인 낭비를 할까? 왜 우리는 가끔 비합리적인 결정을 할까? 생존을 중심에 두고 보면 이런 행동들이 문제점으로 보이지만 성 선택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치품 구매, 목숨을 건 모험, 예술 행위와 창작은 생존에는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성적 매력을 과시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다. 열정, 충동, 창의성은 이성의 관심을 강하게 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라기보다 ‘연애기계(mating machine)’라고 해야 한다. 정교하게 발달된 인간의 두뇌는 포식자에게서 도망치고 먹잇감을 찾는 것보다는 이성을 유혹하고 관계를 맺는데 훨씬 더 많은 자원을 쓴다. 결국 인간의 문화와 문명은 사랑받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갈망,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어우러져 발전해 왔다. 예술, 유머감각, 친절함, 창의적 발명 등은 연애기계로서의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인 셈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