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의 오랜 보안 원칙인 ‘망분리’를 두고 금융당국이 일부 문을 열기로 했다. 우선 보안 목적의 AI 활용에 한해 1년간 한시적으로 빗장을 풀고 효과를 점검해 추가 완화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구상이다.
해킹을 막기 위해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해왔지만, 고성능 AI가 해킹 공격에 활용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만 AI 기반 방어 도구를 제대로 쓰지 못하면 오히려 보안 경쟁력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2일 권대영 부위원장 주재로 ‘고성능 AI 관련 금융권 보안 위협 대응 간담회’를 열고 보안 목적의 AI 활용에 한해 금융권 망분리 규제를 긴급 완화하기로 했다. 보안·AI 역량을 갖춘 일부 금융회사에는 망분리 규제를 사실상 전면 해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망분리는 금융회사 내부 업무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해 해킹과 정보유출 위험을 줄이는 규제다. 은행의 고객정보 처리 시스템이나 내부 전산망이 외부 인터넷과 직접 연결되지 않도록 막아 공격 경로를 줄이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금융 보안에서는 가장 강한 방어 장치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기존 보안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의 고성능 AI ‘미토스(Mythos)’가 기존 보안 시스템이 놓친 취약점을 찾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해킹 공격을 기획·실행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금융권 긴장감이 커졌다. 고성능 AI가 공격 측에 먼저 활용되면 사람 중심의 기존 방어 체계가 속도와 대응 범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금융회사는 내부망과 외부 인터넷망을 분리하는 망분리 규제 때문에, 외부 AI 보안 솔루션을 활용해 내부 시스템 취약점을 점검하거나 실시간 AI 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제약을 받아왔다.
금융당국은 이 때문에 “AI 공격은 AI로 방어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망분리 규제를 무조건 유지하는 것보다 보안 목적의 AI 활용 통로를 제한적으로 열어 금융권 방어체계를 높이겠다는 판단이다.
우선 보안 목적의 AI 활용에 한해 망분리 규제를 1년간 한시 완화한다. 총자산 10조원 이상, 상시 종업원 1000명 이상인 49개 금융회사가 대상이다. 선정된 금융회사는 고성능 AI로 취약점을 점검하고 보안 SaaS 기반 방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이달 22일부터 29일까지 신청을 받아 최대 10개사를 먼저 선정하며, 이후 대상을 확대한다. 보안·AI 역량이 충분한 금융사에는 망분리 전면 해제도 검토한다.
다만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다. 망분리는 금융권의 외부 공격 접점을 줄여온 핵심 규제다. 규제를 풀면 외부 접속 경로가 늘어나고, AI 솔루션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쓰는 과정에서 고객정보와 내부 데이터 관리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이 대형 금융회사 중심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보안 역량 심사를 거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금융AI보안연구소와 AI보안 지원센터를 신설하고 다음달 중 AI 보안 가이드라인을 배포한다. 긴급 보안 패치 과정에서 경미한 장애가 발생해도 신속 복구와 소비자 보호 조치를 하면 제재를 감경하거나 면책할 방침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고성능 AI 보안 위협은 감기 바이러스처럼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관리해야 할 위협”이라며 “금융 AX 전환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금융서비스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인 만큼 정부도 과감한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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