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수 
▲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스카이데일리
고구리가 광개토호태왕과 장수태왕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백제는 침체기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17대 아신왕이 호태왕에게 항복한 이래 좀처럼 국세를 펴지 못하던 백제는 21대 개로왕 때 이르러서는 멸망 직전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백제를 중흥시키는 기틀을 마련한 군주가 있었으니 이가 바로 24대 동성대왕인 것이다.
문주왕의 맏아들로 13세에 즉위했던 삼근왕이 3년 만에 죽자, 곤지의 아들 모대(牟大)가 즉위하니 이가 동성왕으로 담력이 뛰어나고 활을 잘 쏘아 백발백중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동성왕의 나이가 몇 살인지에 대해 사서마다 다음과 같이 다르게 기록돼있다.
1) <삼국사기>에는 무녕왕이 동성왕의 둘째아들이라고 기록돼있다. 공주 무녕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 무녕왕은 523년 62세의 나이에 붕어했다고 새겨져있어 461년생이다. 따라서 동성왕은 최소 445년 이전에 태어났어야 하는데 이는 여러 기록으로 볼 때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완전 오기인 것이다
2) <일본서기> 웅략왕 23년(479)조에 백제에서 삼근왕이 죽자 곤지의 5명 아들 중 2자인 말다가 유년임에도 불구하고 총명하므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백제의 왕으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어, 동성왕은 대략적으로 465년생 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웅략 5년(461)조에 개로왕의 부인이 왜로 가는 도중에 무녕왕을 출산할 당시 동행했던 곤지에게는 이미 5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기록돼있다. 따라서 만일 동성왕이 곤지의 2자였다면 동성왕은 461년생인 무녕왕보다 출생년도가 훨씬 빨라야 하지 않겠는가? 두 기록이 상충되는 것으로 보아 뭔가 하나는 오기로 보인다.
3) <고구리사초략>에는 동성왕의 나이가 삼근왕보다 한 살 작다고 돼 있으며, 삼근왕은 즉위하던 해인 477년에 13세였으므로 동성왕의 정확한 출생년도는 465년생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추론할 수 있다.
무녕왕이 섬에서 태어나던 해인 461년(웅략 5년) 당시 곤지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이후 곤지가 왜국에서 아들 5명을 얻은 것인데, 왜로 오던 461년 당시 이미 5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오기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무녕왕은 동성왕의 둘째아들이 아니라, 동성왕이 곤지의 둘째아들이거나 무녕왕이 개로왕의 둘째아들일 것이다.
▲ 백제왕계도 [이미지=필자제공]
중국의 <제서>에 “모대(牟大:동성왕)에게는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의 직함을 주었다. 알자복사 손부를 책명사로 보내어 그 조부 모도(牟都)의 작위를 물려받도록 하여 백제왕으로 삼았다.”는 기록과, <양서>에는 “경(慶=개로왕)이 죽자 아들 모도(牟都)가 잇고, 모도가 죽자 아들 모태(牟太)가 왕위를 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모도가 누구인지 또 모태가 모대와 동일인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삼국사기>의 찬자는 “<삼한고기>에는 모도가 왕이 된 일이 없고 또 모대는 개로왕의 손자로 생각하나 실은 개로왕의 아들인 곤지의 아들이라 했고, 그 조부가 모도라는 말이 없음을 볼 때 <제서>에 실린 것이 의문이 아닐 수 없다.”라고 평했는데 개로왕의 손자나 개로왕의 아들인 곤지의 아들이나 같은 말이어서 이 말도 사실상 믿기가 어렵다고 본다.
동성대왕의 초기 치적
백제 동성왕으로 즉위한 모대는 23년간 재위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긴다. 그의 중요했던 업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동성왕 4년(482) 봄 정월에 왕은 해구를 죽인 진로(眞老)를 병관좌평으로 삼아 병마에 관한 일을 맡기고, 그의 둘째 딸을 처로 삼는다. 해구는 문주왕을 시해하고 삼근왕 2년에 대두성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킨 역적이다.
<삼국사기>에 “6년(484) 가을 7월 내법좌평 사약사를 남제에 보내 조공케 했으나, 서해중(西海中)에 이르러 고구려 군사를 만나 가지 못했다.”라는 간단한 기록이 있는데, <고구리사초략>에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장수제 52년(484) 갑자 10월, 사신 회녕이 북위에서 돌아와 “위가 우리 사신을 맨 앞자리로 배정했습니다. 우리가 강하고 숙부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라고 고하니, 장수태왕은 웃으며 이르기를 “할애비를 숙부로 여기는 놈을 어찌 능히 예의를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라는 기록에서 고구리는 동족인 선비족이 세운 북위보다 상국임을 알 수 있음에도 <삼국사기> 장수왕조에는 “사신을 위에 보내 조공하였다.”라는 문구가 무려 29번이나 나온다. 이는 사대모화주의에 몰입되었던 조선왕조가 첨삭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수군장수는 모대(동성왕)가 남제로 보낸 사신 사약사를 붙잡아 왔다. 상(장수제)이 모대의 나라 다스림이 어떠하냐고 하문하니 “똑똑해 보이긴 하나 위세가 없어 권신들이 그를 업신여깁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상이 “삼근의 처를 처로 들였다는 얘기가 있는데, 과연 그리했는가?”라고 물었더니, 계속해서 “즉위 초에는 그리했으나, 신하들이 해구의 딸임을 들어서 그녀를 폐하라고 청했습니다. 지금은 진로의 딸이 상비이고, 연돌의 딸이 부비로 있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연신이 “연돌의 딸은 신이 일찍이 첩을 삼은 적이 있고, 진로의 딸 역시 삼근의 여자였습니다.”라고 아뢰자, 이에 상이 “모대는 어찌 이리도 숫처녀를 피하였는가?”라고 물어보니 사약사는 “무당의 얘기 때문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상은 “모대는 자신감이 없으니 위세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잡히겠구나.”라고 예언했다.
참고로 연신이란 인물은 백제에서 귀화한 인물이다. 연신이 문주왕을 죽인 역적 해구와 함께 대두성에 있을 때 진남이 2,500명의 병력으로 해구를 쳐서 목을 베어버리니, 같이 있던 연신이 고구리로 도망쳐 귀화해버린다. 이에 화가 난 삼근왕은 연신의 처자식을 웅진의 저작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한다.
▲ [이미지=필자제공]
동성왕은 8년(486) 봄 2월에 15년 후 자신을 시해하는 백가(苩加)를 위사좌평으로 삼는다. 23년(501) 8월 동성왕이 가림(加林)성을 쌓아 백가로 하여금 지키게 하니, 백가는 가기를 싫어해 병을 핑계로 사직하려 했으나 왕이 윤허하지 않았다. 이를 원망하더니 드디어 자객을 시켜 왕을 찔러 죽이고는 가림성을 점령하고 반역하니, 사마(무녕왕)가 군사를 거느리고 우두성에 이르러 한솔 해명을 시켜 토벌케 하니 백가가 항복한다. 무녕왕은 이를 참수해 백강에 던진다.
이에 대해 찬자는 “『춘추(春秋)』에는 ‘신하된 자는 군주를 넘보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백가와 같은 극악한 악인은 천하에 용서받지 못할 자인데 즉시 처단하지 않고 이때에 와서 자기가 스스로 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반역을 일으킨 후에야 처단했으니, 때늦은 일이다.”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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