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기기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과 자본금 1000만원만 가지고 누님이 맡긴 회사를 나왔어요. 제가 원하는 더 큰 목표를 꿈꿨기 때문에 안주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숱한 위기를 보냈고 최근 1년 반 정도는 몸이 좋지 않아 재활에 몰두했어요. 물론 마냥 쉬진 않고 중국을 다녀오며 조금씩 사업 구상은 해놓았어요. 올 가을 국내 홈쇼핑에서 제가 고안한 미용기기를 선보일 예정이죠. 중국 진출도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중소기업이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는 요즘 같은 시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재기에 나선 사람이 있다. 스카이데일리는 이달 13일 경기도 양주시 모처에서 아직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다는 박형우 대표(55)를 만났다.
박 대표는 미용기기, 마스크팩을 제조하는 회사 (주)메리코스코리아를 이끌고 있다. 그가 만든 모든 제품은 JOYJULY(조이줄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평범한 속기사에서 사업가로…오뚝이 같은 삶
“보시다시피 전 그루밍족(Grooming 族)과 거리가 먼 평범한 외모의 아저씨지요. 하지만 미용기기에 대해선 나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십여년 전부터 관련업계에 종사했기 때문이죠.”
사실 약 30년 전 박 대표는 사업과는 거리가 먼 속기사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학원을 열고 속기사 학원 원장으로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사실 저의 누님은 ‘벼랑끝에 나를 세워라’란 책으로 잘 알려진 박형미(58) 전 화진화장품 부회장이에요. 영업사원 출신으로 부회장 자리까지 올랐으나 기업 내 견제로 회사를 나오게 됐죠. 이후 2005년 파코메리란 회사를 차렸어요. 당시 형제들 사이에선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 제가 누나를 도와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고 그래서 제가 총무이사를 맡게 됐죠. 누나 밑에 있다 보니 마스크팩, 화장품 등에 관해 자연스레 알게 됐어요. 당시 눈길이 가던 것은 방문판매용 미용기기였어요.”
“총무이사 3년 재직 후 파코메리의 계열사 격인 메리케어란 회사의 대표가 됐어요. 미용기기 담당이라고 할까요. 당시 밤낮 가리지 않고 미용기기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방문 판매 사원들을 교육하기 위해서였죠. 에센스가 초음파를 통해 피부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는 지 그때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러다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정보를 나누던 도중 당시 다기능 집약체로 가격이 비쌌던 방문판매용 미용기기를 기능별로 분리해 팔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기술자들과 협업을 통해 공정에 참여한 박 대표는 메리케어에서 일하며 ‘조이줄리’란 미용기기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시키는 일만 해야 했는데, 전 제가 원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결국 누님의 눈 밖에 났죠. 조용히 시키는 일만 했으면 누님의 후광으로 좀 더 마음 편히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요. 2011년 말 퇴사, 2012년 초 창업을 하며 본격적으로 미용기기(조이줄리)를 만들었어요. 현재는 왕래하고 있지만 당시는 괘씸했는지 창업할 때 누님이 도움을 주지 않으셨죠. 그래서 1000만원으로 법인을 세웠어요. 당연히 자금 압박이 컸죠.”
박 대표는 창업 초기 기술자들과 협업해 소규모로 중국 바이어를 통해 미용기기를 수출했다고 한다. 메리케어 대표 시절 프랑스 바이어와 손잡고 얼굴, 목, 가슴, 손, 발 팩 등을 제조·수출했던 경험을 토대로 마스크팩 제조라인도 갖추고자 했다. 하지만 그는 아는 후배에게 저렴한 공장을 소개받아 덜컥 계약하고 판단 실수로 수개월동안 공장에서 아무 것도 못했다고 한다.
“돈만 내고는 공장 가동을 못했죠. 제 사업 경력에서 부딪친 첫 번째 위기라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은 생각도 안나요. 마스크팩 쪽으론 전략이 너무 없었죠. 그러다 정말 우연히 영업활동 중 만난 사람의 도움으로 대형 마스크팩 업체와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 계약을 맺게 됐고 급하게 직원을 뽑았어요. 대형 업체와 계약했다고 말하고 마스크팩을 만드는 기계도 받아왔죠. 제가 인복은 있나 봐요.”
“매달 300만장씩 제조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너무나 기뻤죠. 수개월을 그렇게 일 했어요. 기계를 1억7000만원에 사왔는데 거의 다 갚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와요. 2015년 메르스 사태가 그것이죠. 공장이 올 스톱됐어요. 마스크 팩이 모두 중국으로 가야하는데 중국에서 길을 막았죠. 벌어 놓은 돈으로 영업을 하며 근근이 살았어요. 어쩔 수 없이 직원 여럿을 해고하고 단 6명과 함께 6개월을 이 악물고 버텼어요. 하지만 결국 공장이 경매로 넘어가고 6개월간 밀린 임대료를 내놓으라는 내용증명이 날아 왔어요. 그 사람에겐 국가적 전염병이 남의 나라 일이었던 거죠.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옮겼어요.”
“미용기기의 경우 저와 친한 중국 바이어에게 ‘나중에 내가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를 대비해 상표권을 무료로 사용하면서 브랜드만 키워놓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 친구가 중국 공장에서 기기를 생산해 온라인 몰에서 팔며 인기를 조금씩 얻어가는 상황이었죠.”
양주로 공장을 옮긴 박 대표는 거래처들이 부도가 나며 물건은 제작했으나 돈을 못 받았다고 한다. 메르스 이후 한국과 중국의 외교 문제로 다시 한 번 수출길이 막히면서 마스크 관련 사업을 접어야하는 상황까지 왔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병 찾아와…“좌절 NO, 더 큰 도약 준비”
“갑자기 일이 들어와도 주말에 근무할 직원을 뽑을 상황이 안됐어요. 어쩔 수 없이 마스크팩 제조 의뢰가 들어오면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도 일했죠. 50살이 넘은 나이였지만 수출 날짜를 지켜야 하기에 이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어요. 정신력으로 버틴 거죠. 토요일과 일요일 밤을 새우고 월요일엔 골프 모임에 나갔어요.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던 시기였거든요. 골프 후엔 술도 한 잔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 했는데 몸이 이상했어요.”
“왼쪽으로 몸이 쏠렸어요. 의정부 모 병원에서 처제가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어서 전화한 뒤 택시 타고 바로 갔어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뇌경색 전조 증상이더군요. 약물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되는 듯 했으나 심장 치료를 받은 이후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병원에선 몸이 적응하는 중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퇴원을 시켰죠. 제 몸은 제가 잘 알잖아요. 퇴원한 그 날 택시를 타고 다시 서울 대형병원으로 갔어요. 척수암 검사까지 받고 제 병명이 뇌경색이란 걸 알게 됐죠.”
“조금만 늦었어도 더 큰일이 날 뻔 했어요. 의사께서 집 근처 재활병원으로 입원해 3개월 정도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죠. 당시가 2018년 12월이었어요. 약물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며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병원에 있었어요. 퇴원하고도 몇 개월 동안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집에 있었죠. 지금도 오른쪽 다리는 약간 저려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그였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공장 주인은 임대료를 내지 않는 박 대표에게 나가라고 독촉했고, 마스크팩 원부자재 업체에선 내용증명을 보냈다고 한다.
“공장 건물주와 친했는데, 참 씁쓸했죠. 제가 그분께 ‘사장님 아픈데 너무 하십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어요. 올해 1월 15일 정리했어요. 1000만원으로 창업해 8년 동안 열심히 달렸는데 기계는 압류 당하고 개인 빚만 8500만원이 남았더라구요. 제 자랑 같지만 법인 빚은 한 푼도 없었어요. 개인 빚을 갚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지만 제 양심이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하게 했죠. 현재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원금을 갚고 있어요.”
“1년 이상 거래가 없으니 메리코스란 법인도 폐업처리 됐어요. 눈물이 났죠. 그래서 지금 법인 이름이 메리코스코리아입니다. 공장에서 쓰던 냉난방기 등 남은 기계들을 다 팔고 몇 백 만원으로 양주 모처에 작은 공장을 얻었어요. 그때 친한 동생의 도움으로 좋은 분을 만났죠.”
박 대표는 공장을 찾기에 앞서 중국 바이어와 왕래하며 계획을 세웠다. 중국에서는 조이줄리 브랜드가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중국 내 브랜드 마케팅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는 단계였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중국 바이어가 꽤 의리가 있는 친구라 박 대표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에 힘입어 중국 공장에서 만든 미용기기를 국내로 가져와 쇼핑몰을 통해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박 대표는 말한다. 이미 단계별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밝히는 박 대표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새로운 미용기기도 제작했어요. 특허가 들어간 상황이죠. 기존엔 에센스를 바르고 미용기기를 썼지만 신제품은 일체형으로 돼 있어요. GS홈쇼핑에서 올 하반기 판매할 예정이죠. 누님 회사 공장 라인을 빌려 수량을 채우려고 합니다. 홈쇼핑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이름을 알리고 중국 유튜버(왕홍)들과 협업해 단기전으로 중국 온라인 매장에서 해당 미용기기를 팔아보려는 계획도 세웠죠. 중국 내 또 다른 지인을 통해 진행할 예정입니다. 마스크 팩 제조는 친구가 운영하는 인천 남동공단의 라인을 빌려 제조할 예정이에요. 마스크 팩도 조이줄리로 생산할 계획이죠. 일이 잘돼서 강남에 사옥을 세우고 싶네요.”
[문용균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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