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를 외부 손해사정회사에 맡겼다.”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흔히 듣는 말이다. 보험사가 사고 경위와 손해액을 확인하기 위해 손해사정회사에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파란손해사정이나 에이원손해사정처럼 보험사고 조사와 손해액 산정 등을 맡는 업체를 흔히 ‘서베이’라고 부른다.
한국공제보험연구소는 1일 발간한 ‘Simon Re:Insurance Intelligence Report Q3 2026’에서 글로벌 MGA가 취급한 보험료가 2019년 약 700억달러에서 2024년 약 1500억달러로 두 배 이상 늘었으며 연평균 성장률은 16%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해외 보험시장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는 ‘MGA(Managing General Agent)’는 앞서 예시로 든 외부 손해사정회사와 완전히 다르다. 서베이가 보험사고가 발생하고 보험금 청구가 들어온 이후를 주로 다룬다면 MGA는 보험계약을 맺기 이전 단계에 관여한다.
MGA 가입 전 위험판단
지승현 한국공제보험연구소 대표는 본지에 “MGA는 보험사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보험물건의 심사와 요율 결정, 일부 보상 처리 등을 수행하는 조직”이라며 “해외에서는 이런 위임 구조가 제도적으로 정착돼 있지만 국내는 보험사로부터 이 같은 권한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체계 자체가 만들어져 있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즉 MGA는 국내에서 익숙한 GA(General Agency·법인보험대리점)와도 다르다. GA가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모집채널이라면 MGA는 보험사로부터 일정 범위의 권한을 받아 보험물건을 심사하고 보험료율을 결정하거나 계약 인수 여부를 판단한다. 계약 구조에 따라 일부 보상 처리까지 맡기도 한다. 쉽게 구분하면 GA는 보험을 팔고, 손해사정회사는 사고 이후 손해를 조사하며, MGA는 보험사가 위험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위험을 심사한다.
한국엔 MGA 없는 이유
한국에서 MGA가 아직 독립적인 업태로 자리 잡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보험사의 핵심 인수권한을 외부 전문조직에 넘겨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체계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보험회사가 상품을 만들고 GA가 판매하는 ‘제판분리’가 상당히 진행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GA의 보험 판매 비중은 35.7%였고 소속 설계사도 28만 5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분업은 판매 영역에 가깝다.
손해사정 역시 보험회사가 외부 손해사정업자에게 업무를 맡길 수 있지만 별도의 위탁 기준과 감독 규정이 존재한다. 반면 보험물건 심사와 보험료율 결정, 계약 인수는 보험회사의 손익과 지급여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기능이다.
지 대표는 “국내에 MGA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보험물건 심사와 요율 결정 등의 권한을 보험사가 외부 조직에 위임하고, 그 권한을 바탕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시장 구조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이버·AI 위험 커지는데
사이버와 AI, 재생에너지,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정, 항공·우주처럼 기존 손해통계만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기 어려운 위험은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 같은 신종위험이 전문성을 가진 MGA의 성장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MGA는 특정 산업이나 위험군에 전문성을 집중해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언더라이팅 역량을 제공할 수 있다. 보험사는 새로운 상품을 대규모 고정비 없이 시험할 수 있고, 재보험사 역시 직접 영업망을 구축하지 않고 새로운 위험에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프론팅 보험사를 통해 발생한 미국 MGA 보험료는 약 226억달러로 전체 미국 MGA 추정 보험료의 약 20%에 달했다. 다만 지 대표는 신종위험이 늘어난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곧바로 MGA 수요가 커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는 “사이버나 AI 위험이 증가하면 해외시장에서는 해당 분야 전문성을 가진 인력을 중심으로 MGA가 늘어날 여지가 있다”며 “하지만 국내시장은 보험사의 권한 위임 체계 자체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이어서 MGA 필요성을 시장이 당장 크게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외활용과 내부통제
그렇다고 국내 보험업계가 MGA 흐름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국내 보험사가 해외 특수보험이나 신종위험을 인수할 때 현지 전문성을 가진 MGA나 로이즈 커버홀더 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 대표는 “국내에서 MGA 자체가 빠르게 생겨난다기보다는 해외시장에서는 로이즈 커버홀더 등 MGA를 활용하는 수요가 이어질 수 있다”며 “이 경우 외부 전문조직의 인수 역량을 활용하면서도 보험사 내부에서 검증된 통제 기능이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MGA가 성장할수록 통제 문제도 중요해진다. MGA가 위험을 선택하고 보험료에 연동된 수수료를 받을 수 있지만 큰 손실이 발생하면 실제 자본 부담은 보험사와 재보험사가 지는 경우가 많다. 처음 정한 인수기준에서 포트폴리오가 조금씩 벗어나는 ‘언더라이팅 드리프트’도 대표적인 위험이다.
결국 국내 보험시장에서 당장 핵심 쟁점은 ‘한국형 MGA가 언제 생기느냐’보다 해외 MGA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하면서 보험사의 책임과 내부통제를 유지하느냐에 가깝다.
한국 보험시장에서는 판매는 GA, 사고 이후 손해조사는 손해사정업체로 상당 부분 분업됐지만 가입 전 위험평가와 계약 인수는 여전히 보험사의 핵심 기능으로 남아 있다. 사이버·AI 등 신종위험이 늘더라도 국내에서 MGA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려면 보험사의 권한 위임 체계와 책임 구조가 먼저 정립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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