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여파로 소비가 위축되고 경기가 침체되자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대폭 낮췄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 달리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시중에 유동자금만 쌓이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주목되는 사실은 쌓여가는 유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며 ‘V자 형태’의 버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미 서울, 수도권 일부 지역에 유동자금이 흘러가 집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정부는 17일 추가규제를 내놓았다. 넘치는 유동자금 때문에 상승한 집값을 규제로 잡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다수의 전문가들은 ‘경기회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고강도 규제로 사태를 진화하다 보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부작용이 생겨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특히 실거주자들의 내 집 마련 문턱이 높아지면서 생겨날 현상들은 상당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경기회복 지연 위기감→현금보유 사활→유동자금 3000조 돌파→주택시장 투입 집값 상승
한국은행은 올해 4월 평균 잔액 기준 광의통화(M2) 계절조정치가 3019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M2란 현금통화와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인 협의통화(M1)에 머니마켓펀드(MMF), 2년 미만 정기예적금과 금전신탁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언제든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통화를 말한다.
M2가 3000조원을 돌파한 것은 한은이 통화·유동성 관련 지표를 집계한 2001년 12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4월 M2 평균 잔액은 3월 집계 금액인 2985조원보다 34조원(1.1%) 증가한 금액이다. 월간 증가폭으로는 사상 최고치다. 시중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로는 정부가 경제위기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대폭 낮춘 점, IMF외환위기를 겪은 기업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점 등이 꼽힌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연 1.25%로 낮춘 뒤 코로나로 경제위기가 심화되자 지난 3월 연 0.75%로 인하해 사상 처음 0% 시대를 열었다. 이후 5월 말 금통위에서 추가로 0.25%포인트 낮춰 기준금리는 연 0.5%가 됐다. 금리가 하락하면 이자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기업과 가계의 대출은 증가한다. 기업 보유 M2는 올 4월에만 전월 대비 22조원 늘었다. 보험사·증권사를 포함하는 기타 금융기관도 10조원 늘었으며 가계와 비영리단체도 7조원이나 증가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시중 유동자금은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2·16대책 이후 하락세를 그리던 서울의 집값 최근 다시 상승 전환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2% 상승했다. 감정원 통계로 서울 아파트값이 오른 것은 3월 둘째 주(0.02%) 이후 13주 만이다. 특히 강남4구는 0.02% 올라 1월 둘째 주 이후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집값이 오르면서 주택매매심리지수도 상승했다.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의 ‘5월 부동산시장 소비자심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주택매매시장 소비심리지수는 118.5로 4월보다 10.0포인트(p)나 올랐다. 이 지수는 전국 152개 시·군·구 6680가구, 중개업소 2338곳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산출된 것으로 0∼95는 하강, 95∼114는 보합, 115∼200은 상승국면 등으로 구분된다.
원인은 경기불황인데…뜬금없는 부동산 규제에 청년·무주택자 피해 속출
경기불황에 따른 위기감 확산, 시중 유동자금 증가 등에 기인한 집값 상승 현상에 정부는 규제로 대처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추가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규제지역 추가 지정, 거래신고제 및 대출 및 법인부동산 규제 강화, 토지거래 허가구역 지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 대책을 두고 전문가와 부동산업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조차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못된 문제인식과 원인분석에서 내놓은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오히려 부작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게 일고 있다. 이미 청년·무주택자 등 실수요자들 사이에선 내 집 마련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반응이 속속 나오고 있다.
문진혁(30·남) 씨는 “정부가 내놓은 추가 규제 내용을 접한 후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며 “대출은 완전히 막혀 있어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집을 살 수가 없고 그나마 청약 아파트가 희망이었는데 가점제 개편 등으로 인해 이마저도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현실이 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종잣돈을 마련한 뒤 부족한 부분을 대출로 충당할 계획이었는데 정부 규제로 모든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며 “결국 얼마 전 집을 구매하려고 모아둔 돈을 한 바이오 주식에 올인했는데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어 우울감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윤이나(30대·가명) 씨는 6·17부동산 대책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며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고 성토했다. 윤 씨는 “이번 정부에서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며 “수도권 대다수의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이며 대출이 막혀버렸다”고 운을 뗐다. 이어 “평범한 30대 초반 직장인 중에서 대출 없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스럽다”며 “아등바등 살아봐야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된 이후 삶의 의욕을 잃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중에 유동자금이 넘쳐흐르는 와중에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만 펼칠 경우 현금 자산이 없는 주거약자들은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시중 유동자금이 소비되기 위해서는 경기불황에 대한 위기감이 해소돼야 하는만큼 규제해소 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시중에 유동성을 해결하지 못하니 핀셋 규제를 하더라도 계속해서 풍선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또 다시 정부는 수요 억제책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단기적으로 하락 및 보합 전환을 할 것으로 보이나 결국 또 다시 풍선효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시장 관망이 커지며 전·월세 시장 시세도 불안해졌는데 앞으로 서민들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자포자기하고 다른 투자처 등에 눈을 돌리거나 아예 좌절하는 국민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배태용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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