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상은 브랜드로 이뤄져 있다. 우리가 매일 입는 옷부터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기기와 도구들, 심지어 먹는 음식·음료에까지 어느 하나 브랜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각각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개성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를 구분하고 그 중에 개개인에게 맞는 브랜드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대중과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로고다. 로고에는 기업과 브랜드의 철학과 비전, 사업 분야, 이미지 등이 시각적으로 구현돼 담겨 있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브랜드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기업에게 있어 로고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없다.
로고는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바꾸기도 어렵다. 기존에 보급된 로고를 변경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 30년 만에 로고 교체에 나선 기업이 있다. 국내 자동차 업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아자동차다.
기아차는 그동안 사용해 온 원형 엠블럼과 사명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기아자동차(KIA MOTORS)’에서 자동차(MOTORS)를 뺀 ‘기아(KIA)’로 사명을 단순화하고 이를 형상화한 새로운 엠블럼을 적용키로 했다. 새 엠블럼은 동그란 원을 제외하고 ‘KIA’ 필기체를 단순화한 형태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과 BMW 등에서 볼 수 있듯 최근 자동차 업체들은 보다 얇고 단순화한 로고로 변경하는 게 추세다”며 “이는 전기차 등 새로 출시되는 차종에 스스로 빛을 내는 형태의 엠블럼이 적용될 경우 훨씬 눈에 잘 띄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기아차가 로고를 교체키로 한 결정에는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겠다는 의지가 듬뿍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기아차는 내년 이후 선보이는 전기차 모델명을 새로운 브랜드 로고에 맞추기로 했다. 중장기 계획인 ‘플랜S’에 맞춘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다. 플랜S는 내연기관차 중심인 기아차 체제를 전기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맞춤형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중장기 미래 전략이다.
현재 기아차는 전기차 상표명 특허까지 등록하는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달 22일 기아차는 특허청에 36종에 달하는 전기차 모델의 로고를 상표로 출원했다. 내년에 선보이는 새로운 엠블럼과 같은 타이포그래피가 반영된 것이 특징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IK시리즈와 EK시리즈, EV시리즈 등 세 가지 라인업으로 구성됐다. 시리즈별로는 숫자 1부터 9까지 나뉘었다. 또 세단, SUV, CUV 등 차종을 달리한 다양한 라인업으로 출시될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먼저 선보이는 차종은 프로젝트명 ‘CV’다. 지난해 이매진 콘셉트(Imagine Concept)카로서 CUV 형태로 설계된 CV는 내년 6월 출시될 예정이다. 현대차와 마찬가지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채택했다. 뿐만 아니라 20분 이내 80%까지 충전할 수 있는 급속 충전 시스템도 적용키로 했다.
상표 출원을 고려했을 때 CUV에 이은 다음 차종은 중형급 세단과 SUV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22년부터는 모든 차급에 신규 전기차 모델이 투입되고 2027년까지 7종의 전기차가 추가로 출시될 예정이다. 이를 발판 삼아 기아차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전기차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구상이다.
다만 기아차는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전용 브랜드 ‘아이오닉(IONIQ)’을 출범시킨 것과 달리 기아차 로고와 일체화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실제로 상표 출원 목록은 ‘EV3’와 ‘KIA EV3’가 같이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기아차는 대대적인 브랜드 리뉴얼도 진행하고 있다. 기아차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사옥 건물에 붙어있던 ‘KIA MOTORS’ 로고를 모두 뗐다. 내년 초 새로운 로고를 부착하는 동시에 모빌리티 기반의 서비스 업체로 변경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기아차 관계자는 “플랜S 중장기 전략에 맞춰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혁신적인 변화에 나서고 있다”며 “이를 위해 새 엠블럼과 브랜드 전략을 내년 초에 공개해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기아차를 알릴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번 로고 변경 추진을 위해 기아차는 부담이 될 법하지만 큰 용단을 내린 것임에 틀림없다. 기업을 대표하는 브랜드 로고을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비용이 필요해서다. 상표권 출원을 비롯해 사옥, 브랜드 전시장, 서비스센터와 대내외 자료까지 모두 수정해야 한다. 새로운 엠블럼이 적용될 차량들의 금형 설계도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략 6000~8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기아차의 연간 매출에 견주었을 때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고를 변경하기로 결정한 것은 기아차가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기아차의 혁신의지를 엿볼 수 있다.
게다가 기아차는 최근 사내 조직을 소비자 경험 위주로 대폭 개편하는 등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게 사랑 받는 브랜드, 도전과 혁신의 상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다. 브랜드 정체성과 미래 전략을 반영해 만든 신규 로고는 기아차와 대중에게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올 것이다. 이를 발판 삼아 도약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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