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아주 보기 드문 독특한 이념분쟁을 벌이고 있다. 좌우 진영논리로 극단적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 간 갈등과 증오가 도를 넘었다. 이 같은 대립은 세대싸움, 지역다툼, 빈부갈등까지 한껏 부추기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멀어져 가고 국운 쇠락의 음울한 기운이 확산되고 있다. 부강한 국가와 잘사는 국민을 만들어 가기 위한 현안이 산더미처럼 산적해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냉정함을 되찾고 전혀 다른 눈으로 새로운 번영의 길을 찾아 나설 때다. 국민 모두가 조화롭게 하나가 돼 국운의 영속적인 발전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중차대한 시점에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국가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국민적 좌우명이 필요하다. ‘부의 열쇠 시즌2’를 통해 이 같은 국운 융성의 지혜로운 길을 찾아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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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가의 단위를 이루를 국민은 국가의 주인인가 아니면 국가의 요소인가
A. 국민·영토·주권은 국가의 3요소라는 관점이 있지만 국민은 국가에 필요한 충분조건을 넘어 필수 요건이다. 국민이 없는 국가를 생각할 수 없다. 국민은 국가의 요소이면서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요소는 부분집합 개념이지만 주인은 전체집합으로 동일성 개념이다. 국민은 부분과 전체가 하나로 통하는 이중성의 개념을 동시에 관통한다. 무국의 질서에서 가족단위 근간을 이룬 국가와 인류는 부분이자 하나로 통한다고 했다. 국민 또한 국가에서 가족과 인류의 존재 근거이자 배경이 된다. 가족이 국민이고 국민이 가족이다. 가족적 국민 또한 인류애와 이중성이다. 가족·국민·국가는 개체성으로 존재하는 유한자 같지만 하나의 무한자로 동시에 얽힌다. 조화의 법칙에서 경계와 무경계가 하나이듯 가족·국민·국가는 천륜이란 인류의 원리를 따른다. 인간이란 유한한 개체성이 인간 상호 간 얽힌 무한성을 통해 국가와 세계를 이룬다. 국가가 국민처럼 인격을 갖고 있는 배경이다. 이 같은 국격은 인격처럼 도덕률을 갖추었다. 국가 윤리를 기반으로 국민의 영혼이 깃든 헌법이 당연히 만들어진다. 그래서 헌법은 국민을 하나로 모은 영혼의 가치다. (105쪽 :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 생명이 뿜어 대는 자연계의 도덕률은 무한히 흐르고 그 에너지 기반이 인간 영혼의 룰을 만들었다) 물적 유한자인 신체는 영적 무한자인 영혼과 하나다. 생명을 이루는 신체의 상호 안전을 최대한 도모한 것이 영혼의 가치로 인정받는 도덕률이다. 공공성을 약속한 도덕률은 집단에서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 영혼의 룰이다. 강제성을 갖는 룰에는 생명유지속성을 지켜가야 하는 일종의 영적 의무감이 모두에게 깃들었다. 국가는 국민의 영혼을 지키고 국민의 영혼은 국가를 이루는 것이다. 국민은 국가의 설계도 내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존립 필요성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과 국가가 하나일 때 공공성이 극대화 된 도덕률이 안착된다.
Q. 국민이 국격과 동일시되면 개인이 아닌 집단지성만이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나
A. 국민을 이루는 개인은 국민이라는 집단지성과 같으면서 다르다. 개인은 집단지성의 원천이 되지만 집단지성은 아니다. 개인은 국민이지만 그 집단지성의 개인은 국민과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은 이처럼 온전히 국민이 되기 어렵지만 하나가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이 집단지성의 선(善) 의지 정체다. 개인과 집단지성이 하나로 매칭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공공성의 룰이 작동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시장의 일 가치다. 개인은 일 가치의 공공성 실현을 통해 집단지성과 하나로 얽힌다. 자유시장의 일이 갖는 위대함이다. 일을 통해 창조되는 개인들의 부가가치는 국민을 이루어 가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집단지성은 일을 통해 하나가 되는 개인들의 신성한 공공성을 반영한다. (130쪽 : 일은 노동이라는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물리적인 양을 의미한다) 개인의 노동이 공공성이라는 큰 그릇에 모두 담겨 상호 그 부가가치를 나눌 때 국민이 만들어 진다. 국민을 엮는 일은 그 대신 무한변수를 갖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일 가치의 변수는 자유시장에서 생멸을 반복한다. 개인과 국민 그리고 국가가 하나로 일체화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이라는 명징한 시공간의 흐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 흐름이기 때문에 에너지처럼 반복성·순환성·가역성을 띤다. 국민을 이루는 개인이 집단지성과 다르지만 반복성·순환성·가역성의 흐름이 빨라질 때 하나가 되는 특성이 있다. 반복은 부가가치 틀을 만들고 순환은 부가가치를 분배하며 가역성은 부가가치를 재탄생시킨다. 이를 통해 가치의 축적이 쌓이면 개인의 부는 국가의 부가 되고 국가의 부는 개인의 부가 된다. 개인과 집단지성의 개인은 다르지만 일 가치를 통해 하나로 수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인이 국민이고 그 집단지성의 개인이 국민에 수렴될 수 있다. 일을 매개하는 자유시장은 국민을 주인으로 늘 주인답게 해주는 운동장을 제공하고 있다.
Q. 국민은 빈부 또는 계급이 존재하는 불평등한 관계의 집합이 아닐까
A. 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원리가 인간을 존재하게 한다. 만물의 영장이란 권위 속에 화려한 문명의 거탑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문명의 이면에 인간의 오감을 벗어난 자연계 원리가 깃든 패러독스가 있다. 오일러의 수(e) 공식에 이 같은 신비한 원리가 담겼다고 했다. 공식에 담긴 음수와 상상의 수(數) 허수가 자연상수 오일러의 수(e)와 만나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음수는 1차원 선분에서 없음(0)의 마이너스 방향이고 허수는 복소평면 2차원 면에서 회전하는 운동이다. 수천년간 일반 수 체계에서 상상하기 힘든 구조였다. 이들 음수·허수가 원주율을 나타내는 초월수 파이(π)와 한 가족으로 엮여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복소평면에서 그려지는 오일러의 공식 기하학은 실제로 숨겨진 원리와 자연상수의 자연원리 간 기막힌 조화를 상징한다. 조화는 상상하기 불가능했던 음수·허수의 존재이유를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환시켰다. 국민 또한 현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원리를 봐야 한다. 하나로 융합하기 힘들 것 같은 가족·국민·국가가 하나로 역동한다고 했다. 국민 속에 깃든 가족애는 인류애와 상통하기도 한다. 국민은 벌집처럼 가족과 인류를 동시에 아우르는 공식을 갖고 있다. 그 공식이 빈부와 계급의 불평등을 아우른다. 국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빈부·계급은 개체성으로 보면 대립하는 단초지만 그 대립이 자유시장을 지탱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146쪽 : 부와 가난이 양립하지만 양립이 거꾸로 자본주의를 지탱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유의지의 숭고함을 더 빛나게 하고 있다) 국민은 국가와 동일체이면서 주인이라고 했다. 국민이 이끄는 국가는 항상 역동하지 않으면 존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힘은 극과 극을 아우르는 평형상태가 아니면 나오지 않는 이율배반의 원리에 지배된다. 도무지 존재하거나 조화할 수 없을 것 같은 원리들이 하나로 조합하는 오일러의 공식이 국민의 존재방식에도 있는 공식이다. 국민은 마이너스 1(-1)라는 역진성과 180도(파이·π)라는 회전을 동시에 이뤄내는 원리를 담고 있다. 이 원리 속에 국민이 늘 역동하면서 국가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다.
Q. 국민이 역동하는 원리에 역진성과 회전이 의미하는 것은
A. 정수 중 양수(양의정수)만이 수(數)로 수천년 간 간주돼 왔다. 영(0)과 음수(음의정수)는 위대한 발견이다. 특히 음수는 상상이 안 되는 수였다. 음수는 방향이 없는 스칼라 물리량이 아닌 1차원 벡터라는 방향을 갖는다. 허수는 2차원으로 차원을 한 계단 오른 역학을 취한다. 이를 통해 힘이 역동한다는 것은 출렁인다는 의미다. 파도처럼 출렁일 때 마이너스 방향과 회전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한다. 파동은 원으로, 원은 파동으로 각각 치환된다고 했다. 파동은 순환하고 순환은 파동이다. 골이 깊으면 산이 높은 이치와 같다. 골을 음수이자 허수로 본다면 골은 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골 없이 산이 존재할 수 없기에 산의 존재 자체가 곧 골이다. 골이 바로 숨은 원리다. 국민이 개별자처럼 역동하는 국가의 개념이 되는 원리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출렁이면서 나아갈 때 국가의 힘이 발생하고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그 출렁임이 자유시장에서 일어난다. 힘의 발생은 결실을 위한 시작이고 과정이며 완성을 향한 임계선상에서의 항상적(恒常的) 에너지 출렁임이다. 이 힘은 결실을 맺고 결실은 또 힘을 만든다. 이 과정이 자연과 생명에 깃든 생명유지속성이다. 국민 역시 음수·허수의 조화를 탄 에너지 흐름처럼 순환성·파동성이라는 생명유지속성을 탄다는 것이다. (154쪽 : 인간의 수명이나 생명이 예측 가능한 것은 그 생멸의 움직임이 경탄스러울 만큼 치밀하다는 점에 있다) 국민도 생명현상처럼 일정한 주기와 파동을 갖는다. 국민의 이 같은 역동성이 골과 산의 원리를 닮았다. 삼각함수와 호도법을 적용하면 순환하는 원과 출렁이는 파동은 같은 기하학적 운동을 한다고 했다. 자유시장에서 부가가치를 만드는 국민의 역동성은 이 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이 개인이면서 국가가 되는 이유이며 그 토대가 가족애·인류애를 하나로 묶는 원리다.
Q. 연속운동을 하는 미분 가능한 역학이 국민 속에 흐르는 에너지 같은데
A. 오일러의 수(e)는 자연과 생명의 연속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가령 100% 성장할 때 1회 연속 성장시 최대 성장량이 무한이 이어지는 개념이다. 이 수(e)는 극한값을 취하기 때문에 임계의 최대 성장량이 상수로 수렴된다. 현대문명의 무수히 많은 분야에서 오일러의 수(e)가 응용되는 배경이다. e는 원주율처럼 자연스러운 상수로 간주된다. 국민 속에 흐르는 에너지 역학 또한 동일하다. 자유시장은 최대 성장량을 멈추지 않고 추구한다. 부가가치 효율은 임계의 법칙을 따르면서 경쟁을 무한히 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 간 결핍의 차가 발생하면서 에너지가 끝없이 흐른다. 이를 개별 에너지로 보면 안 된다. (180쪽 : 자유시장의 빈부는 불가피한 산물이다. 그 부의 차이는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과율이다) 인간과 생명은 단 한순간도 인과율의 법칙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 속에 흐르는 에너지 또한 인과율을 따른다. 국민 각자가 인과율을 수용할 때 국가역량이 커진다. 빈부·계급을 긍정의 시각으로 보면 상생의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약자를 살리는 상생이 이뤄지면 전체의 힘을 키우는 자양분이 많아진다. 이념가들은 경쟁을 악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지만 그 시각이 오히려 악행을 부른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역동하기 위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힘은 빈부·계급이라고 간주되지 않는 선의의 차별 경쟁에서 나온다.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국민은 경쟁을 순기능으로 받아들이고 차별조차 선순환의 동력으로 수용한다. 국민은 평등을 바라는 수동성이 본래 없다. 항상 평등 이상의 것을 희망하는 능동성을 우선한다. 이념이 그것을 왜곡했을 뿐이다. 국민적 에너지는 상생·협력의 약자논리와 책임·사랑의 강자논리를 동시에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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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국의 질서에서 논한 벌집형 국민론이 약자가 핍박당하는 것을 피해가는 논리 아닐까
A. 약자는 존재하지만 영원한 약자는 없기에 약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약자논리는 빈부·계급에 좌우되지 않는 상생·협력을 근간으로 한다고 했다. 자유시장에서 약자는 강자의 속성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자를 상징하는 민중도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변화무쌍한 연속성은 존재를 완성한다고 규정짓지 못한다. 과정이 완성을 지향하는 완성의 개념이라고 했다. 이념가들이 정의하는 약자 또는 민중은 특정 개인이나 그룹이 변화무쌍한 파도를 타지 못한다는 전제를 둔다. 이는 국민을 몰이해하는 착각과 오만의 산물이다. 착각은 영원한 약자를 규정짓고 오만은 그 약자를 이용하는 권력에의 의지다. 모든 이념은 정말 예외 없이 이런 악행을 따랐다. 자연과 생명은 불연속적 유한자 같지만 미분 가능한 역학(가속운동)이 모두 적용되는 무한자(얽힘)라고 했다. 존재는 곧 역동성이다. 무한소는 영(0)과 달라 수렴값이 없지만 극한은 수렴을 통해 특정한 값을 갖는다고 했다. 극한값은 연속의 역학이다. 국민은 단 한시도 멈추지 않는 연속성을 띤다. 국민 전체의 역학은 마치 미분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태만하거나 게으른 국민이 통상적으로 듣는 약자나 민중이란 말은 허위다. (226쪽 : 게으른 한량들은 영적으로 타락해 생명의 풀밭인 자유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쑥대밭을 만들면서도 그 행위에 대한 죄의식을 스스로 면책하는 악행의 주범들이다) 진짜 약자는 역차별 대우를 받는 개인이다. 나태와 게으름으로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순리다.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할 때 약자다. 게으르고 나태한 약자들은 빈부·계급 논리로 약자나 민중을 선(善)과 무조건 동일시 시킬 때 급격히 확산된다. 약자라고 하기 어려운 이들은 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행을 부르는 역할을 한다.
Q. 서민은 국민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한다는 의미인지
A. 서민은 존재하지만 이념의 옷을 입으면 허구로 전락한다. 서민과 약자를 무조건 동일시하면서 마치 전선(全善)인 듯 깃발을 들 때 이념의 허구성이 드러난다. 이념은 오히려 계급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서민을 이용하는 이념의 허위는 진짜 서민을 더욱 핍박하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부른다. 따라서 서민 또한 약자처럼 없다는 확신이 중요하다.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파동과 순환을 탈 때 존재한다고 규정하기 어렵다. 미분 가능한 연속성은 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연속의 완성을 중시하는 이념은 항상 확신에 찬 성찬을 내놓지만 생명의 온기가 없다. 서민은 돈이 없거나 적은 가난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을 서민과 동일시 하는 것은 서민을 두 번 죽이며 멸시하는 행위다. 서민은 국민 전체다. 그래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성의 일을 하는 국민은 모두 서민이다. 그래서 서민은 가난이 아니고 부자다. 최소한 부자 될 잠재력을 모두 지녔다. 국부는 이들 서민들에 의해 창출되고 유지되며 무너지지 않는다. (268쪽 : 돈을 버는 것은 완성을 향한 말씀과 법의 실천과정에서 악덕까지 품는 하나 된 덕성의 실현이다) 서민은 종교적 절대자의 말씀과 법을 존중한다. 그래서 자신이 약자라고 확정하지 않는 삶을 산다. 이는 약자논리·강자논리를 관통하며 포괄한다. 수많은 부가가치 창출의 길을 하나로 볼 때 진정한 공공성의 도덕률에 기여한다. 이들은 설사 가난해도 서민이 아니며 민중은 더더욱 아니다. 자연의 섭리로 보면 이들은 이데아나 로고스의 자가운동을 통한 도덕률 상승의 한 유형이다. 이념가처럼 확신형 단죄를 하지 않는 서민은 상생·협력을 유도하고 책임·사랑의 힘을 가졌다. (268쪽 : 섣부른 확신은 또 다른 허구를 만들어 내는 최악의 불확실성이다) 타자와 이웃의 죄를 확신하는 단죄유형을 보면 공동선과는 거리가 먼 의도가 숨어 있을 때가 많다. 갈등과 원한의 심정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무책임 등의 면피를 위해 합리화 하거나 권력에 취한 악행의 의도에서 확신형 단죄행동이 많이 나온다. [계속]
[스카이데일리 알앤알(R&R, Rich-Research)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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