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감축목표 설정으로 기업의 부담을 크게 늘릴 뿐 아니라 경제활동 위축, 일자리 감소 등 각종 부작용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가 경제에서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 산업계 특성상 무리한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게 산업계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국내 제조업 현장에 남아있는 탄소감축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 전 세계에 공언한 文대통령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감축으로 제시했다.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서 2030년 NDC 하한선으로 규정된 35%에서 5%p 상향 조정한 것이다. 입법 취지와 국제 동향 등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설정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NDC는 기후변화 파리협정에 따라 당사국이 스스로 발표하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다. 우리나라는 2018년을 온실가스 배출 정점을 찍은 해로 삼아 NDC 수립을 위한 기준연도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NDC 상향조정과 함께 산업,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등 부문별 감축량도 재산정했다. 기존 NDC에서 산업 부문 감축목표는 2018년 대비 6.4% 감축이었지만 상향 조정된 NDC에선 기존 대비 2배 이상 높은 14.5%로 설정했다. 산업 부문과 함께 건물(19.5%→32.8%), 수송(28.1%→37.8%), 농축수산(21.6%→25.9%), 폐기물(35.6%→46.8%) 등 나머지 부문도 모두 상향 조정했다. 이에 따른 203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치는 4억3660만톤이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에서 “한국은 2030년 NDC를 상향하고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법률로 강제했다. 2030 NDC를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했다.
또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탄소중립기본법에서 위임한 시행령 제정안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2030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 감축이다. 해당 법안 제정으로 우리나라는 유럽연합(EU)·스웨덴·영국·프랑스·독일·덴마크·스페인·뉴질랜드·캐나다·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2050 탄소중립 비전과 이행체계를 법제화한 국가에 등극했다.
“현실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목표…기업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의 핵심 과제는 탄소절감이다. 인위적으로 배출되는 전체 온실가스 양의 약 60%가 이산화탄소(CO2)이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화석연료 연소·추출 및 처리 과정 등에서 발생한다. 철강, 화학, 정유 등 산업군이 포함된 제조업은 탄소절감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2019년 기준 한국 GDP(부가가치 기준)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8.4%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의 제조업 비중 평균치인 14.4%의 2배에 달한다. 탄소절감 측면에서 한국의 산업구조가 주요국에 비해 불리한 셈이다. 이는 NDC 설정 과정에서 국내 산업구조와 경제실정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한국의 추가적 탄소감축 여력이 부족한 점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산업계 등에 따르면 1톤의 철강 생산 시 추가적 탄소감축 여력은 글로벌 평균 0.3톤의 4분의 1 수준인 0.08톤에 불과하다. 한국 철강 업종엔 현존하는 탄소감축 기술들이 대부분 적용돼 있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기술개발이 없다면 추가적 탄소감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제조업체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행하기 위해선 아예 생산량을 줄이거나 공장 등을 해외로 이전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일자리 감소 등 국내경제에 적잖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논평을 통해 “약 8년 밖에 남지 않은 2030년까지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기술이 적용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2030년 NDC는) 달성하기 힘든 무리한 목표치다”며 “제조업 중심의 우리 산업 구조를 감안할 때 무리한 감축목표 수립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일자리가 축소돼 국민 경제에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산업계 실정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NDC 상향은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감산, 해외 이전 등에 따른 연계 산업 위축, 일자리 감소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경제분야 전문가들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예 생산을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책적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겨우 8년 뒤인 2030년에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40% 감축은 현 기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것뿐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무리하게 밀어붙인 2030년 NDC는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에 큰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일자리 부족 현상 등 각종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다”며 “정부가 앞장서 2030년 NDC를 강조한 만큼 실효성 있는 지원책 마련과 국가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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