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건설업계 내부엔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특성 상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경우 의도치 않게 범법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상시 근로자수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정부·노동계는 산업안전을 보다 강화하고 사업장 사망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경영계,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 사업주들은 정반대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산업재해 악순환 구조를 끊어내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 여건 상 처벌 위주의 법만으론 기대하는 효과를 보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나친 처벌만능주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스카이데일리가 만난 중소 건설업체들은 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의무내용조차 불명확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른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현실 여건상 대형 건설사들과 같이 기술과 비용을 투입할 여력이 적어 만일의 사태엔 꼼짝없이 범죄자 신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에 중소 건설업체들은 “정부 차원에서 보다 확실한 가이드라인과 법 이행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근로자 안전보장 취지 앞세워 사업주 처벌 골몰…산업현장 스며든 정치 그림자
올해 1월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현장 내에서 사망사고 등과 같은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장 내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산업계 전반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중대재해법 국회 통과 후 산업계에선 극심한 반발이 일어났다. 논의 단계부터 예방보단 지나친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응이 상당했던 탓이다. 더욱이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엔 ‘적정히’, ‘충실하게’ 등 추상적인 표현과 모호한 단어가 수두룩해 명확한 기준 없이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처벌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법 시행일이 가까워질수록 중소기업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졌다. 현실 여건 상 법 이행 자체가 어렵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지난 10월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인 50인 이상 기업 314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이행준비 및 애로사항 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가 준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특히 시행령에 규정된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법 시행일까지 준수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50인 이상 100인 미만 기업은 77.3%가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의무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아울러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 중 준수하기 가장 어려운 규정에 대해선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 유해·위험요인 개선에 필요한 예산 편성 및 집행’(41.7%)과 ‘안전·보건 관계 법령이 요구하는 의무 이행사항 점검 및 개선’(40.8%) 등을 지적했다.
“생명 소중한 거 모르는 사람 없다…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예산 등 지원 시급”
법 시행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현재 일선 산업현장의 원성은 임계치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기업과는 달리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과 AI 등 스마트 기술·설비 시스템 체계 등을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에서 20년 넘게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연주(가명) 대표는 “이미 용역업체에다가 안전관리 매뉴얼을 주고 체크하도록 한다”며 “안전만 보는 직원을 따로 채용해 현장을 돌게 하는데 1년에 비용만 6500만원이 들어가 부담이 꽤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달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은 법령이 모호하고 일선 산업현장의 현실과도 괴리돼 있다”며 “건설업계만 보더라도 중소 건설사들은 대형 건설사들과는 달리 예산 부족으로 설비 자동화에 나서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고 무리를 해서 대비하더라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 뿐 아니라 주변 건설사 대표들도 늘 노심초사한다. 혹여나 근로자 과실 부주의로 인해서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 있을 것인데 책임은 온전히 대표 몫이다”며 “법 자체가 굉장히 모순적이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법률과 중복되기 때문에 사실상 이중처벌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법 시행 유예라던지 혹은 폐기 등 둘 중 하나를 해야한다”며 “물론 산업재해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첨단 설비 시스템 도입이나 안전관리 전담인원 충원 등 노력하고 싶지만 경영 여건상 그럴 수 없는 처지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 진흥법 등을 다 적용받는다는 점이다”며 “게다가 최근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명목 아래 ‘건설안전특별법’까지 도입을 추진하는데 만약 법이 통과된다면 사실상 5중 처벌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고 하소연했다.
건설안전특별법은 지난해 9월 김교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산재사망사고와 산재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건설현장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법률안으로 건설현장에 특화된 법안이다.
전문가들은 각종 산업현장 내의 사고를 방지해 근로자의 안전을 보장해야하는 법 취지엔 십분 공감하지만 지금의 법 내용은 지나치게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법을 이행하기 위한 일선 산업현장의 여건이 턱없이 부족한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사고가 나면 CEO가 아닌 현장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국토부 장관이나 도로공사사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벌금·행정처분·형사처벌로 책임을 묻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방법이다. 지킬 것 다 지켰는데 근로자가 주의태만으로 불가피하게 사고 나면 그 땐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미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것은 기업 활동을 처벌로 막겠다는 처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중대재해법은 근로자의 안전을 빌미로 사실상 기업을 견제하겠다는 수단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말로 근로자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일선 산업현장에 안전관리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협조·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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