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 결제가 확산되면서 일상 생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유독 동전과 지폐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액면가(적힌 액수)보다 높은 가치를 갖는 희귀한 동전·지폐를 통해 자신의 수집 욕구와 재테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쫒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주가 폭락이 개인 투자자 중심의 증시 활황에 불을 댕겼듯 화폐 발행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이들의 수집욕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1998년 동전 500원, 200만원에 즉시 삽니다”
17일 한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1998년에 발행된 500원 동전을 200만원에 사겠다는 글이 게시돼 이목을 끌었다. 글쓴이는 “매우 비싸게 한 개만 구하고 바로 글을 내리도록 하겠다”며 “사용된 동전으로 구하고 상태에 따라 추가금도 생각한다”고 적었다.
해당 구매글을 작성한 김현준(34)씨는 “(1998년 발행 500원 주화) 시세는 천차만별이다. 최고 800만원에 거래 완료된 것도 봤고, 매매상에 문의하면 상태에 따라 100만~200만원 정도에 매입하겠다고 했다”면서 “200만원이 적정한 수준이라 판단했고, 물가상승률을 감안해도 향후 그 이상이 되리라 예상하고 (구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아직까지 팔겠다는 사람보다 ‘그 이전에 찍은 500원은 더 비싸냐’, ‘1998년 발행 100원은 필요 없냐’, ‘돼지 저금통을 깨보겠다’ 등의 문의가 더 많다”면서 “1998년 500원은 미사용품, 소위 ‘민트급’이 거의 없다고 봐야하고 만약 있다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수집가들은 동전보다는 ‘주화’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1998년에 발행된 500원 주화는 예전부터 비싼 가격에 거래돼왔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특히 1998년 500원 주화가 관심을 끄는 이유가 있다. 1997년 일어난 ‘IMF 사태’로 인해 이듬해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량을 크게 줄이면서 500원 주화는 그 해 단 8000개만 제작됐다. 그마저도 외국 선물용 세트로만 제작돼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소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밖에도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화로는 1966년 발행된 10원과 50원 주화, 1970년 발행된 100원 주화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30만원대와 1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특히 1970년 발행된 10원 주화 가운데 적동으로 제작된 것은 80만원대를 호가한다.
특이 번호 화폐도 고가에 거래돼
이러한 화폐 투자 열풍은 주화에만 멈추지 않는다. 지폐도 훌륭한 투자 대상이다. 지폐의 경우 고유의 일련번호(기번호)가 특이하면 몸값이 뛴다. 7자리의 일련번호가 모두 같은 ‘솔리드 노트(solid note)’, 맨 앞 자리를 제외한 6자리가 모두 ‘0’인 ‘밀리언 노트(million note)’, 연속 배열이 반복되는 ‘리피터 노트(repeater note)’, 앞·뒤 어디부터 읽어도 배열이 같은 ‘레이더 노트(radar note)' 등이 지폐 가치를 높이는 기번호다. 행운의 숫자로 알려진 7로 구성된 솔리드 노트 5만원권은 150만~200만원 선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가치가 높은 지폐로는 이른바 ‘좌이박 황색지’가 꼽힌다. 이는 지폐 왼쪽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인쇄된 황색 종이의 100환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화폐 단위로 일본의 ‘원(圓·약자 円)’을 광복 이후까지 쓰다가 1953년 ‘환(圜)’을 되찾은 뒤 1962년 한글 ‘원’을 채택했다. 황색지는 1953년 12월부터 한 달 남짓, 1~5번 판만 발행돼 수량 자체가 적고, 보존 상태가 좋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 덕분에 ‘좌이박 황색지’는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특정한 행사·인물 등을 기념하는 화폐도 가치를 인정받는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기념한 2000원권은 대한민국 최초의 기념지폐(기념은행권)로, 총 230만장(117만 세트)이 불과 9일 만에 품절됐다. 낱장형 8000원, 24장 전지형 16만8000원으로 판매된 이 기념지폐는 중고시장 시세로 각각 2만5000원, 25만원으로 훌쩍 뛴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조폐공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한국의 화폐’ 역시 판매가 11만5000원을 크게 넘는 24만~26만원대에 거래된다.
지폐와 주화 거래는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중고 거래의 특성 상 객관적 집계 자료가 없어 시장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 45년 경력의 화폐 수집가 ‘차르’(필명·64)는 “주로 북미권에서 희귀한 기번호에 가치를 부여하다가 (이러한 수집 풍조가) 우리나라에는 2000년대 초 들어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며 “이제는 많이 늘어서 애호가 또는 동호인만 3만명 정도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은이) 현금 찍는 걸 차츰 줄여가고 있으니 희귀성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강조했다.
화폐 전문기업 풍산화동양행 관계자는 “희귀 화폐나 고가의 화폐를 구입할 때, 진위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 책임지고 감정해 줄 수 있는 화폐상 협회나 공인 기관이 없는 실정이다”면서 “최근 중국에서 유입되는 모조 화폐가 상당한 만큼 불확실한 정보에 현혹되지 않도록 고가의 화폐를 구입할 때는 믿을 만한 화폐상이나 전문가와 상의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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